여행이란 설거지를 하는 것
머리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렬,
한참을 떠밀려 다니던 나는,
조금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건물벽 그늘에 기대어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물을 입에 대다가, 맞은편 어두운 가게 안을 바라보곤 순간 멈칫한다.
나의 눈에 등을 한껏 구부린 사람이 들어온다.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
이제야 작은 가게의 주인장에겐 식사를 할 여유가 생겼나 보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며,
더 멀찍이 떨어져 랜즈를 바꾸었다.
배가 고팠는지,
주인아주머니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정신없이 손님들과 일을 하다가,
문득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될 때면,
그때서야 무심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순간이, 일하느라 잊고 있던 '나' 라는 존재가 생각나는 때 일거다.
길 위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서도 무던하게 입에 밥덩이를 넣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야, '전문 장사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뻔치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던 나도,
지나가는 아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까 걱정되어 급하게 그릇을 비우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적어도 저 시간만큼은.
(나를 포함하여) 다른 어느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발치서 나는 벽에 기대어 남은 물들을 마시고 있었고, 그녀는 그렇게 음식들을 급히 삼키고 있었다.
경건한 의식이 끝이 났다.
나는 아직 생수병을 반도 비우지 못했는데,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그릇 위로 자신의 자취를 남기곤, 금세 물을 뿌리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일하고 먹고,
다시 일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런 간단한 과정들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만약 그녀를 위한 '식사'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어땠을까? 그러지 못하는 처지를 알기에 가슴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백사장님은 장사는 자존심을 파는 거라고 했는데,
만약 그 '자존심' 이 모두 팔려 바닥나 버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렌즈 사이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노래 부르고 웃으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렇구나.... 씻어내면 되는구나...!'
금방의 조급한 식사자리는 잊어버린 듯,
단순하게 그녀는 그릇들을 흥얼거리며 씻어내곤, 다시 일을 준비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쳤다.
그냥 씻어내고 홀가분해지면 되는 것...
또 한 가지 가르침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슬며시 자리를 빠져나와 다시 운하를 걸었다.
나의 눈에 배 한 척이 보였다.
난간에는 새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앉아 있었다.
'가마우지 낚시'
예전에 어디선가 화면으로 본 기억이 난다.
가마우지란 새들은 낚시를 곧잘 하곤 한다.
중국과 일본의 어부들은 저 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물속에 풀어놓으면, 저 녀석들이 열심히 자맥질을 하며 입에 물고기들을 물고 돌아온다.
도망가지 않을까?
발이 묶여있으니 도망가지 못할 수밖에...
물고기를 먹어버리면 어떡하냐고?
슬프게도 가마우지의 목도 줄로 묶여있다.
작아진 목구멍으로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니 입에 머금고 있으면, 악독한(?) 어부들이 나타나 입 속의 물고기들을 쏘옥 빼낸다.
감금 앵벌이잖아!
나는 이런 식의 낚시가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선전하는 정말로 '지혜로운' 인류의 유산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이런 마음을 당연히 알리 없는 가마우지들은
어부를 한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고프기 때문일 거다.
저녁엔 가마우지들은 또 일을 나가야 하고,
어부 할배는 만족할 때 까지 고기를 잡고,
그때서야 가마우지들은 다시 배가 부르게 될 거다.
저 관계가 슬픈지는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우려와는 달리, 가마우지들이 자기 일을 정말 좋아하고, 어부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심 그러기를 바랬다. 아니면 조금 많이 슬플것만 같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리가 묶여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가마우지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평화롭게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저우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좁은 골목길로 다시 들어섰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작은 기념품 엽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슬쩍 안으로 들어가 본다.
천장과 벽면 가득히 포스트잇에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있다. 나는 그 글귀들을 하나하나 읽어본다.
'건강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나는 이런 글귀들을 본 기억이 있다.
한국의 한적한 절간 나무에 묶인 소원들,
일본의 이름 모를 신사에 소원판들 위에 글귀들,
심지어 유럽 어느 성당 낡은 벽면 낙서에서도 이런 내용들을 본 기억이 난다.
똑같은 사람들의 소원들이
모양만 다른 글자들로 적혀있다.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와
소원을 적어 붙이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알아듣지 못한 척 손을 흔든다.
그녀를 돌려보내곤 찬찬히 글귀들을 읽어본다.
간간히 한글도 보이고, 영어도 보인다.
나는 다리 묶인 가마우지이지 않을까?
그게 싫다면 그럼 얄미운 어부가 되어야 할까?
아니야, 아니야.
그냥 고달프긴 하지만 설거지하며 노래 부르던
단순한 아주머니의 삶은 어떨까?
찬찬히 사방의 글귀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흥얼 노래가 나왔다.
힘들고 지친 영혼들은 이렇게 먼 곳을 떠나와선,
작은 종이 위에 희망을 적어 남기곤 마음의 안식을 얻어간다.
어쩌면 여행이란건
우리네 영혼을 설거지 하는 행동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낯선 땅에서 기를 쓰며 체력도 쏟아붓고, 돈까지 쓰면서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입을 삐죽이며 돌아갔던 주인아주머니를 다시 불렀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예상 못했던 중국말에 눈이 동그래진 아주머니의 손 위로, 5위안짜리 지폐를 얹어주곤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지금은 배고픈 가마우지 신세지만,
얄미운 어부로 살아가고픈 유혹을 항상 참아내기를,
노래 부르며 나만의 낚시를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종이를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주인아주머니가 벽에 글을 붙이면서 아는 척을 한다.
자기도 한국 드라마를 봐서 한글을 조금 안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척' 하고 치켜들어 드렸다.
저우좡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바람 따라 스쳐가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웃으면 어쩌지?
세상에, 인생이 겨우 '가마우지' 라니~~!
부끄럽다,
다시 가서 때어야 하나?
하지만 졸린 눈꺼풀은 내려오고,
여행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없다.
나는 차 창에 머리를 기대곤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로 한다.
설거지는 잘했으니
그릇의 이가 조금은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 보면 어때?
내 글로 또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
눈을 감고 있으니
내가 쓴 글이 다시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배 위의 가마우지,
하지만 언젠가는 날아오를 운 좋은 가마우지.
《 수저우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