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우리들
자정을 넘긴 시간,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 아버님 장례식,
자정을 넘기고 나는 가볍게 목례를 드리곤 나와,
챙겨 온 소금을 몰래 여기저기 뿌리곤 한산한 거리를 돌아본다.
'이런 게 무슨 소용 있을까?'
건물 앞의 택시를 잡아타곤
달리는 차창 밖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작은 바이러스가 바꿔버린 세상.
백신이란 이물질을 몸에 주사하고,
마스크로 겹겹이 몸을 감고 다니는 것이
이제는 당연해져 버린 세상.
상주였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로 지쳐버린 그의 모습.
고집스럽게 사업을 벌이던 선배는
장갑차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육중한 할리데이비슨?
하지만,
나는 오늘 처음으로 가솔린이 떨어저버리고 너덜해져 버린 장갑차를 본 것만 같다.(선배는 이제 가족이 필요하신 시기가 된 건 아닐까?)
택시 안에는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말 저녁에도 한산한 거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네..."
그런 나를 보던 기사님이 말을 하셨다.
"코로나 때문이죠, 다들 힘든 시기 아닌가요."
이전 글들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글을 써도 몇 번을 보고 고쳐야하는 나에게,
말할 주제를 생각하고, 예쁜 말투로, 재미있게 말하는, 세 가지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나는 천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눈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말하는 사람의 역할이 맞는 것 같다.
"사장님, 요즘에도 진상 손님들 있나요?"
기사님에게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물어본다.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는 기사님들에게
진상질 하는 손님들의 기사를 보면서,
'힘들겠다.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작으니
뉴스거리가 되는 거겠지'
라고 위안 삼다가도,
'혹시 너무나 저런 사례가 많아서,
고르고 골라 나오는게 저정도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복잡한 가설들을 굽어보셨는지,
기사님은 본인께서 만난 '진상 오브 진상' 들을 이야기해 주신다.
괜한 시비를 걸어 돈을 안 내려는 아주머니,
술에 취한척하며 괴롭히는 아저씨...
자세히 들어보니 결국은 '술'과 '돈' 이 주요 원인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제가 얼마 전 대학로에서 사람들을 태웠어요."
아저씨의 말씀이 이어졌다.
두 분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타셨는데, 한참을 달리며 들어보니 대학교수님들이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교수님 중, 서열이 높아 보이는 분이 대뜸 기사님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기사님 희한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
택시 안을 가득 채우던 클래식 음악 때문이었다.
뒤이어 기사님에게 그분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알아요?"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손님이 왕'인 나라.
무슨 의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쾌한 그들의 태도를 꾹꾹 참아가며, 아무 대답도 못하고 달리던 기사님은 목적지에 이르러서, 내리는 두 분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손님, 이 곡은 아무나 치기 힘든 피아노곡이에요.
댁에 가시면 꼭 들어보세요."
그런 기사님의 응수가 기분이 나빴는지,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들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택시 안을 보더니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 기사님은 한참을 생각했다고 한다.
클래식이 좋아서 듣는 택시기사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왜 '희한한 사람'인 걸까? 본인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 보았던 한 기사가 생각났다.
15억이 되어버린 집값을 자랑하며 택시기사님에게 폭행을 가했던 20대의 이야기였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택시를 몰아도 볼 수 없는 돈들을, 몇 달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번것 같은 기분이 드는 현실이면, 들떠서 폭주할 강아지들은 많을 것 같다.
내가 정작 놀랐던 부분은
피해를 당한 택시 기사님의 인터뷰 기사였다.
인터뷰 내용 중에, 기사님은 '택시기사가 떳떳한 직업은 아니지만'이라고 언급했던 부분이 있었다. 나는 친구와 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네 사회에선 그들이 클래식을 들을 자격마저 허락되지 않는걸까?
예전에 독일에 파견된 우리나라 광부들이 여가시간에 괴테의 소설을 읽는것을 보고 그들이 놀라워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때 노동도 선택받은 사람들이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돌아돌아 노동은 업신여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장님,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있으세요?"
두 번째 질문에 기사님은 주저 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 전 태운 한 손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똑같이 대학로 근처에서 탄 여대생 손님.
피아노 선율이 가득한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가라앉은 목소리로 기사님에게 말했다고 한다.
"기사님, 조금만 천천히 가주시면 안 돼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며 속도를 줄이고 가는 기사님의 뒤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서러운 듯 '끄윽, 끄윽' 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우는 손님을, 기사님은 당황해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참을 울던 손님이 진정되고, 자초지종을 묻는 기사님에게 손님이 대답했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던 그녀는, 오랫동안 준비한 시나리오를 들고 다니며 배우들을 모으고, 투자를 받고 꿈에 그리던 크랭크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
시절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그녀의 영화는 묻혀버렸고, 상냥하던 투자자들은 갑자기 무서운 채무자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가 법원의 '압류통지서'를 받은 날이라고 했다.
브런치에 글 하나 올리기에도 수년의 시간을 보내버린 나인데, 어린 나이지만 용감한 그녀는 이미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용기에 그리 친절하진 않은 것 같다.
압류통지서를 받아 들곤, 부모님께 알려질 생각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그녀를 기사님은 진정시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손님,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만,
이제 손님 20대잖아요.
제일 빛날 나이에 그런 생각 절대 말아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세요,
말씀 드리셔야해요.
그리고, 손님은 잘 될 거예요.
거짓말이라도 내 말을 믿어봐요.
힘들어도 살아요.
다시 영화도 만들고 유명해져야죠!."
그녀의 뒷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나는 알 방법이 없었다. 다만 조금은 진정된 그녀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택시를 내려 집으로 걸어갔다는 것 뿐.
기사님은 지금도 그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며,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손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아무나 칠 수 없
어요. 시간이 되시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계산을 끝내고 카드를 받아 드는 나에게 기사님은 고개를 숙이며 말씀하셨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목례하면서 '고맙습니다' 란 말을 붙였다.
차 안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새벽,
나는 조용히 헤드셋을 끼곤 음악을 들어본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이 곡은 4년의 시간을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그가, 슬럼프를 극복하고 발표한 재기의 연주곡이라고 한다.
음악을 듣다가 나는 이야기 속의 그녀가
어느 부분에서 울음을 터뜨렸을지 짐작이 갔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피아노 연주 부분,
끝없이 밀려오는 격렬한 음들을 두 귀로 받아내다가, 소리 하나하나에 마치 내 몸이 날려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삶이란 파도가 우리를 숨도 쉬지 못할정도로 몰아갈 때... 우리에겐 어떤 선택지가 남아있을까?
초연에 실패한 '라흐마니노프' 가 깊은 절망으로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그의 곁을 지켜 주었던 것은 '니콜라이 달' 이라는 정신과 의사였다고 한다.
상심에 빠진 그의 환자를 위해
니콜라이가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변하지 않는 격려'.
'당신은 그동안 잘 해왔고,
앞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될 것이고,
멋진 곡을 꼭 쓰게 될 것이다.'
최면치료를 받으러 온, 구부정한 거구의 '라흐마니노프' 에게, '니콜라이 달' 은 4년의 시간 동안 곁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 문구를 되뇌어주며 그를 격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음악 '제2번 연주곡' 이 세상에 나와 공연되고 박수갈채를 받던 날,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을 위해 이 곡을 헌정하였다고 한다.
헤드셋을 벗으며 나는,
그녀가 곡의 마지막 장까지를 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전 앞에는 실패가 따라올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말하면서도, 정작 실패 앞에 좌절하는 이들에겐 우리 사회는 상냥하지 않은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모두가 오만한 어른들의 소리다.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건, 변함없는 지지와 격려가 아닐까.
음악을 다시 들으며,
오늘도 피아노 소리가 가득할 그 택시가,
상처받은 어린 영화감독에게 잠시나마,
작은 치료의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슬픔에 빠진 '라흐마니노프' 가
‘니콜라이 달’ 의 한마디에 위로 받았던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