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고양이
아...어떡하지?
이 생명체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한참을 녀석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세상 가장 요물스런 녀석이 고양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평생을 강아지와 살아갈 운명이라 생각했었다.
왜 고양이가 아니냐고?
아마 그 이유의 반은 '애드가 앨런 포우' 때문일 거다.
어린 시절 소설 <검은 고양이> 에서 보았던, 표독스런 고양이는 노래 속의 검은 고양이 '네로' 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을 안주면 나에게 보복할 것 같은 무서운 이미지였다고 할까?
그리고,
나머지 반은 아마도 냥이들의 DNA 때문일 거다.
항상 도도하게 나의 구애의 손길을 외면하던 녀석들!!!
고집 세고 거만한 이 생명체들에게
몇 번을 까인(?) 나역시 애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에 비해, 나만 보며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들은 얼마나 충성스러운가?)
그런 내가 한국도 아닌 필리핀 땅에서,
덩치도 작지않은 수컷 길고양이를 덜컥 떠안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전 여자 친구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죽은 엄마 옆에서 울고 있던 어린 고양이가 눈에 밟힌 그녀는 냉큼 가방에 녀석을 넣어 왔더랬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레지던스에 고양이를 놓아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버스를 타고나서였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 거짓말을 믿어주었다).
어쩔 수 없이 난민 신세가 된 가련한(?) 고양이가 내 집까지 흘러 들어왔고, 나는 대략 난감한 이 털북숭이 녀석을 한참 쳐다봐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쵸코' 라는 이름을
이 수고양이에게 남기곤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나는 이 괴기스러운 생명체의 등장에 정신이 팔려,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야 여기에서도 고양이 집사는 금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황스러운 나의 모습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이 녀석은 당당하게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자기 볼일을 다 보곤, 배가 고프다며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겐 모래가 필수이고,
참치캔을 주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나와 이 뻔뻔한 녀석과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기를 아직 키워보진 않았지만
육아라는 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날부터 나는 고양이에 관련된 블로그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의 행동들을 하나씩 관찰하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출신답게 녀석은 거침이 없었다.
이어폰 전선을 물어뜯고,
내가 아끼는 옷에는 구멍을 내놓곤 심지어
베이컨을 올려놓으면 귀신같이 훔쳐가버렸다,
(하지만 남자 혼자 사는 원룸에서 도망가봤자 얼마나 가겠는가?)
나한테 잡혀 혼나면서도,
고개를 돌려 창 밖만 바라보는 정직하게 건방진 고양이.
사람이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은 없다고 믿던 나에게, 이 녀석의 도도한 행동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운석 부스러기만큼이나 신선했다.
아니,
어떻게 사료 주는 주인을 무시할 수 있지?
6개월의 동거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겪기도 힘들 필리핀의 지진도 같이 겪어보면서,
나는 고양이가 소문처럼 굉장한 예지력이 있진 않다는 것도 알았다.
(지진이 난다면 한참 자고 있는 이 녀석을 내가 들고 도망가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구운 베이컨을 탐내면서도,
문 밖의 세상을 항상 꿈꾸던 이 낭만 고양이.
파피용(내가 붙인 별명이다)은 결국,
레지던스의 우락부락한 경비 아저씨한테 잡혀 버렸다.
그리고 레지던스 게시판에는 얼마 뒤에
'집사 금지' 공고가 다시금 크게 붙었다.
체포된 녀석은 호송차에 실린 범인처럼,
원 주인의 손에 인도되어, 어느 필리핀의 시골 농장 맘 좋은 주인님들에게 입양을 가야 했다.
진짜 파피용(나비)이 날아가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쵸코는 덩치 큰 소들이 가득한 농장을 평정하고,
바람기 뿜 뿜 하는 동네 고양이가 되어,
아홉 고양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녀석을 떠나보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에는 고양이 간식을 하나 사들곤.
"나 왔다." 라고 말하며 들어가다가,
익숙한 '도도독' 거리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알고는 멈칫했다.
'아..... 이젠 없구나'
텅 빈 방안과 간식을 든 나의 손을 보다가,
헛웃음이 났다.
'정이 들었나보다'
빈자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익숙한 존재들과 우리는 언젠가는 헤어진다.
당연하게도 그 소중함을 나중에 느끼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첫 번째 털이 복슬복슬하던 말 안 듣는 고양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새로운 존재들과 만남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존재들과 살아가려면 공부가 조금은 필요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들 뒤에는, 사라져버린 익숙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어야 하지만...
나는 안다.
미련하게도 나는 다시 또 떠나보내고
조금 늦게 깨닫게 될 거란 걸.
그래서 쵸코를 만나고 나서,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 하나하나에 더 충실하게 된 것 같다.
평범해서 소중한 내 주변의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나비처럼 사라져 버렸을때,
그네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만큼은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더해서 남들의 시선 앞에서 조금은 당당하게 되었다
한없이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한 냥이.
적어도 갑을 관계가 우리에겐 없었다.
복종이 없으니 신뢰만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적당히 공간을 나누며 배려해준다.
내 속을 썩이던 녀석이 어느 천둥 치는 날 저녁,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선 스윽 안길 때,
나는 묘묘한 인연의 기쁨을 느꼈다.
이 털냥이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사랑을 비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고,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해 주면서,
고양이처럼 살아가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길을 가다 가끔씩 여러 얼굴의 쵸코를 마주친다.
흔하디 흔한 길고양이들.
그 아이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첫 고양이가 마음속에 남긴 발자국이 너무나 크고,
그 묘묘한 인연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였을거다
* 오늘 길가에 작은 고양이와 마주치고 나서.
(PS : 그런데.... 아홉 마리 아이들의 아빠가 된 녀석은 내가 그리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