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러지 맙시다.
이민생활, 3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나갔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미국에서도 몇십 년 만의 내리는 폭설이란다. 핸드폰에는 요란스럽게 폭설주의보 알람이 계속 울렸다. 솔직히 믿지 않았다. 이민 오고 첫해 겨울에도 똑 같이 눈 주의보가 떴었다. 다시 한 해가 지나고 둘째 해에도 역시 눈 주의보가 떴다. 사람들은 눈 주의보가 뜨면 모든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운행하지 않는다. 재택근무를 한다.
눈 주의보가 뜰 때마다 직장인들은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출근 여부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정부기관에서 내리는 결정에 따라 다음날 출근할지 말지를 회사에서 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상청의 오보는 직장인들에게는 큰 행운이다. 재택근무하며 컴퓨터 앞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진눈깨비가 내릴 때도 어떤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출근시키지 않을 때도 있다. 한국 회사랑 많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나야 뭐... 이민생활부터 백수라 늘 재택근무(?) 중이다만 아내는 가장으로서 백수 삶을 선택할 수 없다. 출퇴근을 하는 아내는 폭설주의보니, 폭우 주의보가 뜰 때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에 기뻐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접속 후 '재택근무'라는 말이 없으면 실망한 채 뭉그적뭉그적 거리며 침대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이럴 때면 백수라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유난히 많았던 올해는 미국의 직장인들 중 대부분이 팬데믹으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아내의 건강을 위해 요리를 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가 걷기 운동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한번 밖에 나갈 때면 아내와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꼭 싸매고 나간다. 근데 우리 부부와 달리 마을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 뒤로 강아지가 졸졸 따라가며 눈 속에 코를 처박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수놈인지 한쪽 다리를 들고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추위를 안 타나 봐? 지방이 많아서 그런가?"
"저기요. 여기서는 자기가 외국인인데요?"
아뿔싸! 그렇다. 여기서는 내가 외국인이었다.
"그러게? 내가 외국인이었네?"
"하하하하. 우리 이러지 맙시다."
아내가 호탕하게 웃는다.
"웃음을 줬으니 억지로 끌고 나왔다고 삐치기 없기. 알았지?"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가 있는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기도 하다. 어디서 왔던, 어디로 가던, 환경이 바뀌어도 생각과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바뀐다면 아마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겠지? 어쩌면 바뀌지 않을 수 도 있다. 만약 바뀐다면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후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