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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다비 Sep 19. 2022

파리의 일생



파리 한 마리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입구를 찾지 못하겠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저쪽 방에서 이쪽 방으로, 나를 희롱한다. 점점 대범해지더니 나를 향해 돌진하며 나의 오른쪽 귀를 스쳐 지나간다. 애-앵-쉬-익. 잡아야겠다.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자. 들어왔던 곳으로 알아서 다시 나가겠지. 휴먼의 배려심이다. 나, 인간이 너를 용서해주리라, 라며 무시하고 나의 일을 계속해 나간다. 살생을 금하고자, 하찮은 구더기의 성장 벌레 따위를 배려해줬지만 이놈의 똥 파리는 휴먼의 온정을 농락하며 머리 위로 애-앵 거리며 맴돈다. 


히틀러의 콧수염을 단 트럼프 사진이 있는 두꺼운 잡지를 둘둘 말아 오른손에 꽉 잡았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나의 오른쪽은 왼쪽보다 강하다. 나의 몇백 배, 몇천 배도 되지 않은 하찮은 구더기의 완성체인 파리를 잡으로 결심을 하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등을 벽에 붙이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지나가거나 혹은 아무 데나 안착하여 가만히 있기를 기다렸다. 몇십 초 기다리다 보니 파리가 내 앞을 쉭 하고 지나간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내리쳤다. 온 우주의 힘을 담아 오른손을 높이 쳐들고 내리쳤다. 이미 파리는 사라졌다. 내가 늦었다. 힘을 너무 담은 듯싶었다.


휴먼의 살기를 느낀 파리는 더 이상 나의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조용해져서 불안했던 나는 부엌으로 가보았다. 아침 먹고 깨끗이 설거지되어 있는 숟가락 등에 파리가 눌러앉아 앞발을 비비며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잘 연마된 투명한 은색 숟가락에 자신의 모습을 비취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파리를 보니 더 이상 균을 옮기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어릴 적 잠자리를 좀 잡아 본 경험을 갖고 있던 나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살짝 포개며 그 안으로 파리를 잡아 가두려 했다.  바람을 가르며 숟가락 등에 앉아 있는 파리를 향해 내 포개진 손은 날아갔다. 수저통에 잘 서 있던 숟가락이 나의 포개진 손에 맞아 우당탕탕 거리며 여기저기 내팽개쳤다. 파리도 사라졌다. 더욱 놀란 건  바닥에 바짝 엎드려 낮잠을 자던 우리 집 강아지다.  놀란 강아지를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괜찮아, 괜찮아, 라며 답도 못할 강아지를 향해 말을 걸어 본다.


기어코 잡고야 말리라! 창문을 반 정도 열어놓고 파리를 창문 쪽으로 몰기를 몇십 분이 흘렀다. 몇십 분을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던 파리는 자기도 지쳤는지 앉을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 바람이 통하는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열려 있던 창문을 나는 잽싸게 닫아버렸다. 파리는 갇혔다. 나가려는 곳에는 방충망이 가려져 있다. 뒤에는 휴먼들을 빤히 구경할 수 있는 투명 유리로 닫혀 있다. 진퇴양난이다. 그 공간에는 오직 햇빛과 바람과 공기만 있을 뿐이다. 햇빛을 잃었다. 공기만 남았다.


24시간 지나고, 반나절이 지날 때 방충망 사이를 거닐며 산책하던 파리는 걸음이 차츰 시들시들거리더니 문틈으로 뚝 하고 떨어졌다. 휴먼의 서식지에 침범한 대가는 파리에게는 좋지 못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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