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도 가지도 않는 천불을 기다리듯

[서평] 김연수, 일곱해의 마지막

by 디아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 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는 잘 알고 있으니, 오로지 현재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기행에게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쇠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시대에 좌절하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다정한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록 다가갈 때 인간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우스가 불행과 병에게서 말하는 재주를 빼앗았다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 앞에서 시인의 문장이 속수무책이라고 할지라도. 앞선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이란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비를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 표정도 짓지 못하는 딸과 같은 처지라고 할지라도. 그럴지라도.

(...)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어는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 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 기행은 이불 속에서 나와 나무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어떻게 우리를 빠져나온 것인지 암양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기행은 쪼그리고 앉아 도망가지도, 다가오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양을 안았다. 양에게서는 똥 냄새와 비린내가 났다. 양을 들어보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기행은 사무실 옆 양사 쪽으로 양을 몰았다. 새로 쌓인 눈 위에 양의 발자국이 찍혔다. 어떻게 이토록 선명한가? 기행은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이 걷힌 밤 하늘로 달이 떠 있었다. 그때 문득, 언젠가 상허에게 들은 달빛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세상, 나도 없는 세상을 훤히 비추는 달빛에 대한 이야기. 그래, 쏟지 말자. 더이상 마음을 쏟지 말고 무심해지자. 기행은 환한 빛을 한참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본 뒤에야 그는 비로소 알게 됐다.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그 빛은 영원하리라라는 것을.

(...) 기행은 쓰고 또 썼다. 다행히도 밤은 길었으므로 기행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편의 시를 쓰고 쭉 읽은 뒤, 종이를 찢어 난로에 넣고 그 불꽃을 바라보는 일을 반복하다가 그는 노트에 '館坪의 羊'이라고 쓰게 됐다. 마찬가지로 그 왼쪽으로 글자들이 쭉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는 보이는 대로 받아 적었다. 다 적고 나니 마음에 흡족했다. 그리고 그는 종이를 찢어 난로에 넣었다.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쓴 그 시도 포르르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들었다.

(...) 그때 골짜기로 사이렌의 고고성이 울려퍼지며 잠든 마을이 깨어났다.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 김연수, 일곱해의 마지막 中


죽어가고 있다, 란 생각을 요 근래들어 점점 자주 하게 된다. 꼭 지켜내고 싶었던 개인적 자아도, 가꿔내고 싶은 사회적 자아도 뒤섞인채 시들어가고 있다. 그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였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되는 날들마저 계속된다. 그 무엇보다 자아가 중요했던 사람들이 너무나도 거친 바람에 자꾸 꺼질 듯 꺼질 듯 휘청이는 것을 보다 보면 나 자신조차 같이 꺼져가는 것만 같다. 도망갈 수 없는 삶. 스스로를 쇠사슬로 옭아맨 채 나아가지만 귀는 막지 않은 탓에 들리는 세상 시니컬한 세이렌의 노래는 강렬하다.


양을 키우고, 문장을 썼다 태우고, 자연 속에서 문장을 읽고, 그런 생활로 돌아가게 되면 괜찮아질까. 소설 속 기행에 나 자신을 자꾸만 비춰보게 됐던 건, 이 세상의 '겨울'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가혹한 탓일까.


그에게 찾아왔던 천불이 내게는 너무나도 요원하고, 아직 나어린 나는 그의 꿈결 속 구원을 기뻐하면서도 다시금 바위를 밀어 올리게 된다.


다만 감히 바라건대, 그 바위가 언젠가는 깨질 그 날의 실마리라도 보이기를. 미세한 균열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백발의 나라도 있기를.


신간은 이전보단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이전보단 따뜻했다.


- 사진 출처 : 문학동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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