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무게

[서평]손원평, <아몬드>

by 디아키
먼저 아몬드 봉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든 아몬드의 촉감을 느껴 본다. 포장지 아래로 만져지는 단단한 알맹이들이 고집스럽다. 봉지 윗부분을 가만히 뜯고 이중 처리된 지퍼를 연다. 눈을 감은 상태여야 한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봉투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얕게, 숨을 끊어서 들이쉰다. 향이 몸속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아몬드 향이 깊이 들어찼을 때 반 줌 정도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혀로 아몬드의 결을 느끼며 한동안 입 안에서 굴린다. 뾰족한 곳을 찔러도 보고 아모든 표면의 홈을 혀로 흝어도 본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아몬드가 침에 불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클라이맥스를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짧으면 시시하고, 길면 임팩트가 사라진다. 적당한 타이밍은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 때는 아몬드가 점차 커지는 상상을 한다. 손톱만 한 아몬드가 포도알만큼, 키위만큼, 오렌지만큼, 수박만큼 점점 커진다. 이제 아몬드가 럭비공만큼 부풀었다. 바로 이때다. 와드득, 깨문다. 그러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햇빛이 입 안으로 퍼져 나간다.

굳이 이런 의식을 치르는 이유는 내가 아몬드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식탁 위엔 삼시 세끼 아몬드가 올랐다. 피할 길은 없었다. 그러므로 먹는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 손원평, <아몬드>. p. 27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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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는 어떤 면에선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면에서는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연상케 한다. (굳이 따지자면 종의 기원보다는 위저드 베이커리 쪽?) 초반부의 극도의 건조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문체의 힘 때문에 중, 후반의 피어오르는 듯한 감정선에 올라타기가 어려웠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중, 후반부의 흡입력이 초, 중반부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책은 끝까지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굳이 따지자면, 초반부에 탄탄하게 쌓아 올린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랄까. 조금 더 이야기의 건조함을 오래 끌고 갈 수 있었다면 그에 대비될 중후반의 이야기가 좀 더 탄력을 받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지만, 이 책을 성장소설의 흐름에서 놓고 읽는다면 사실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기도.


문장이 엄청 취향은 아니지만, 적당히 건조하면서도 간질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재밌다. 생각보다 '특이한' 17세 남자 청소년이 말하는 듯한 말투의 문체랄까. 작가 개인의 색보다는 주인공의 색채가 묻어나는 듯한 문체여서 더 몰입감을 갖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매우 개인적으로는 문장 색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겨울과 여름, 가을을 오가는 문장 사이에서 좀 더 뚜렷한 계절감을 잡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와 같은, 매우 사소한 개인적인 감상 수준이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참아가며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을 만난 것이 굉장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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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한국 소설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매우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불타오를 것 없이 그저 잔불처럼 조금 일렁이고 말 뿐이라고 치부하며 책 자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책을 추천받은 뒤에 여러 권을 사고도 책을 한 동안 멀리했다.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읽을 힘이 없어서란 핑계로 외면했다. 그 사이 삶은 더 점점 지루해졌고, 삶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탁해졌다. 스스로를 정제하려는 움직임마저 그만뒀으니 생각이 맑아질 리가. 덕분에 생각과 문장도 얄팍해졌고, 상상력은 고갈됐다. 모니터링을 한답시고 영상만 꾸역꾸역 보고 유xx를 보며 낄낄대니, 삶마저 무미건조해졌다. 생각해보면 송충이가 솔잎을 안 먹고는 외도만 하며 재미없게 살았으니, 재미가 생길 리가.


사람은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 손을 뗀 사이 좋은 책들이 많이 쌓여 있으니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 사진 출처 : 창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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