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Y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증발’했다. 불과 한 달 전, 굳이 다른 지역에 있는 캠퍼스까지 내려가 수업을 듣던 내가 밥을 먹자고 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때나 괜찮다고 답장을 보냈던 그였다. 수소문 끝에 Y가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그의 동기에게 그 내용을 물었을 때 들은 문자의 요지는 의외로 단순했다. “돌아갈게.”시시껄렁한 농담들을 나누게 된 이후에도 내가 알지 못했던 Y는 끝끝내 이방인이었던 모양이다. 이젠 보이지 않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계나의 왠지 쓸쓸한 뒷모습을, 겹쳐본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인 동시에 한국과 호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경계인이자 이방인이다. 인 서울 대학을 나와 적당한 회사를 다니며 기자 준비를 하는 다소 여유 있는 집안의 남자와 연애를 계속하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다. 달라지지 않는 삶,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소위 ‘주류’ 세력에 편입될 수 없는 현실. 예나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p. 11)”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그가 택한 선택지는 모든 것을 다 저버린 채 이국의 땅으로 떠나는 것이다. 비록 그 땅에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치 않은 데다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며 손해를 입을지라도, 그는 환상이 깨질지언정 호주에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영주권을 얻는 우회로로서 얻은 회계사 석사 자격증을 써먹지도 못한 채 알바를 한동안 거듭하고, 옐로우 피버에 빠진 남자들의 시선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면서도, 끝끝내 한국에서의 삶을 택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신과 사귀었던 남자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줄 때에도 계나는 그 삶의 이면에 놓인 한국 사회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계나가 호주에서 돌아온 뒤 ‘이방인’의 눈으로 마주한 한국 사회에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무엇을’대신 ‘어떻게’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나는 두 번째 이별을 감수한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그렇게 그는 끝끝내 한국과 화해하지 못한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렀던 Y의 언변이 제법 늘은 이후에도 어쩌면 자신이 살아왔던 삶과는 너무도 달랐던 이 땅의 삶을 끝내 적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책을 덮고 난 뒤였다. 집을 떠난 지 한참 후에야 방학 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Y는 돌아와서는 자신이 했던 타일 알바에 대한 얘기를 제법 길게 늘어놓곤 했다. 어렵고 피곤하지만 돈이 꽤 된다던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건, 그래도 그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때 더 ‘괜찮은 삶’을 살아갈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머리 한 귀퉁이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공계 생이었던 Y가 졸업한 뒤에는 보장받는 안정적인 삶이 가능할 것이라 가정했기에, 그가 속에 품었을지도 모를 고민들에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했다. 그저 괜찮을 거라고, 조금 서툴러 보이지만 지금처럼 적응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다. 괜찮다고 말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는 정말로 괜찮았던 것일까.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나로선 고향으로 돌아간 Y나 계나의 삶 속에 투영된 실제 ‘호주의 이방인’들의 삶을 제대로 상상해볼 길이 없다. 스스로를 비주류로 여겼지만 언제나 은연 중 ‘한국에서의 삶’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나로선 “한국이 싫어서”떠나려는 이들의 마음을 알 도리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휘발되듯 모든 걸 놓아버린 채 떠나버릴 수 있을 만큼 미련이 남지 않을 이 땅을, 나는 떠날 수가 없다. 뭔가가 잘못되고, 뒤틀리고, 이지러져 있기에 떠났을 수많은 카나리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알지 못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삶. 그저 진부한 소설 속 이야기 수준으로 치부하게 되는 삶. 그 삶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당장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걸, 책에서 빠져나와 다시 현실을 마주하는 지금에 와서도 잘 실감할 수가 없다.
Y와 계나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사회의 이지러진 굴곡이 이미 눈에 익어버린 나로선 무엇이 잘못 됐는지 볼 수가 없다. 고정된 시선 앞에서 일렁이는 불꽃 아래 그림자가 익숙한 나로선, 불현 듯 마주한 태양빛 아래 눈이 멀어버리는 듯 했다던 이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식은 땀이 흐른다. 다만 비겁하게, 속절없이 물들어갈 뿐이다. 무엇이 잘 못 돼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 호주를 가게 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 Y를 만나보고 싶다. 평생 한국 땅에선 먹어볼 일 없을 음식을 나눠먹으며, 쌓아 온 모든 걸 다시 놓고 집으로 돌아간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고. 무엇을 견딜 수 없었냐고. 무엇이, 너를 다시 모든 걸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거냐고. 이 사회가, 이 국가가 네게 주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그 무엇이, 너를 다시금 떠나게 만들었냐고.
말이 느리고 조심스런 그의 답은 어쩌면 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는 계나가 아니고, 그의 땅에서는 다시 ‘호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와 계나로 상징됐던 사람을 밀어냈던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꼭 들어보고 싶다.
떠날 수 없는 예나들마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땅의‘공기’에 취해 쓰러지기 전에.
* 사진 출처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