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마음

눈이 내리는 밤엔 잠들기가 쉽지 않다

by 디아키

늦은 밤까지 눈이 내린다.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창밖을 울릴 때, 뇌리에선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이 반복 재생된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에 대한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게 되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공간으로서의 고향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대다수가 자신의 고향을 잃은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 더 이상 고향이 예전의 그리던 향수 속 고향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그때의 그 이미지만을 고향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예컨대 (당연하게도) 수익을 내기 위해 자동화가 이뤄지고, 기계를 통한 재배 - 수확 - 가공의 과정이 보편화되지만, 이는 '그림'의 측면에서 볼 때 재미없고 밋밋한 무엇으로 여겨질 뿐이다. 변화한 현실과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지 간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는 것이 자명한 현실에서,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까지 현실을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현실을 담아야지, 현실에 충실해야지란 원론적인 얘기만 하기엔 실제로 생산돼 평가받아 온 결과물들이 보여주는 결과들이 존재한다. 좋은 이야기는 현실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사람들의 내면을 드러내야 하지만,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다. 청년,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도 마찬가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혹은 1차원으로 치환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혹은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미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는 절대로 세간의 생각과는 달리 대충 그리고 관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재조립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고민을 했어도 이런 결과물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실패한 길을 다시 걷자고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맥락들 아래서, 분명 답이 정해져 있는 - 재밌는 이야기로 탄생하기 힘든 - 이야기를 어떻게든 나의 맥락에서 다시 얘기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 기획자의 마음에 스칠 때다. 경험이 많아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을 때는 헤맬 수밖에 없는 데, 설상가상 새로운 길을 다시 걸어야 하는 자는 많이 걸어본 적이 없는 이다. 시간은 한정적인데, 이야기엔 언제나 그렇듯 답이 없다. 서울은 고향이 될 수 있는가. 이미 고향인 서울이지만, '이미지' 속에선 한 번도 고향이었던 적이 없는 서울은, 고향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고향으로써의 서울을 담기 위해선 어떤 모습을 포착해야 하는가. 그때의 초점 맞추기는 어디에 초점을 둬야 하는가.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이을 것인가. 이를 통해, 무엇을 전할 것인가.


헝클어진 털 뭉치를 마주한다. 시간은 하염없이 가고, 눈도 하염없이 온다.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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