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를 닫으며

초라한 메타포-세계의 끝

by 디아키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아는 누나한테 인사하러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더니 다짜고짜 여행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막연히 어디라도 갈까 하고 집에서 컴퓨터로 삿포로와 도쿄와 오키나와의 표값을 찾아봤지만 빠듯했습니다. 적금을 깨서 간만에 돈은 있었는데 시간이 없더군요. 전부 다 귀찮아져서 하던 대로 글이라도 하나 쓰려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떠났죠.


목적지도 목적도 없는 익명의 여행. 가방엔 티와 책 두 권만 억지로 욱여넣었을 뿐인데 느낌이 군장 같더군요. 기차표를 끊으면서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자고만 생각했습니다. 승강장에 내려가는 길엔 해바라기나 보러 갈까란 생각을 했죠. 그래서 목포로 갔습니다. 나주와 함평을 거쳐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끝까지.




목포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퍽 고단합니다. 계획이 없는 데다 무조건 걷거든요. 이번처럼 아무 생각도 안 해놓았을 땐 정도가 더합니다. 내린다고 딱히 뭘 보는 것도 아니어서 거의 하루 종일 기차에 타거나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나주는 국밥 한 그릇 먹겠다고 내려서 땡볕에 6km를 걸었죠. 함평엔 내렸더니 나비도 해바라기도 이미 없어져 역에서 한 시간만 허비했구요. 목포는 갔더니 항구와 스산한 시장 밖에 없어 숙소를 잡으러 다시 광주로 올라갔습니다. 마땅한 곳이 없어 송정역 시장에서 주전부리만 잔뜩 사 먹고 다시 나주로 돌아가고. 암튼 그렇게 많이 걷고 많이 탔습니다.


하루에 많아야 두 끼를 먹고 잠은 두세 시간밖에 못 자는 상태에서 대부분을 걸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부족한 잠은 끝이 없어 보이는 기차에서 대부분 새우잠으로 때웠죠. 보성에서 경주까지 간 날은 이래저래 다 합해서 20km는 걸었을 겝니다. 녹차밭까지 걸었죠. 길에선 고래고래 악쓰면서 노래 부르고, 산에선 목이 쉴 때까지 산에다 대고 욕을 섞어가며 소리 지르고. 경주 가는 중간엔 부산에 내려 보수동 책방골목도 쏘다니고 한약 맛 나는 밀면도 먹고, 뭐 다소 멀쩡하게 다녔지만.




광주, 1913 송정역 시장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생각 중에 무엇이 진짜 나인지를 모르겠더군요. 멀쩡할 때는 아침에 끊은 10분에 8400원짜리 KTX 표를 아까워하면서도, 아닐 때는 하루 온종일 밥을 안 먹고도 맥주를 들이켜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김밥 두 줄 사겠다고 10km를 걸은 날은 오히려 정상이었던 걸까요. 그렇게 힘들게 스스로를 굴려도 나오는 대답이 죄다 제각각이어서 나중에는 나는 나에 대해서도 몰랐구나란 생각마저 듭디다.


그렇게 3일 동안에 수원에서 목포를 찍고 보성, 부산, 경주를 거쳐서 정동진까지 갔습니다. 올여름 최초이자 최후였던, 모든 끝이 담겨 있는 검푸른 바다. 그래요, 그렇게 전국을 다 돌았어요. 내게 주어진 국경과 경계 내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끝들을. 그러면서 기차 밖 창문으로 참으로 많은 것도 보았습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내가 밟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산과 강과 바다와 나무들. 벗어나지 못할 빌어먹게 아름다운 강산을.




보성

정동진으로 가는 날엔 기차만 여섯 시간을 탑니다. 김일두의 노래 한 곡만 무한반복으로 들으면서 무거운 짐이기만 했던 오뒷세이아를 드디어 읽어요. 길고 먼 여행은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기차는 덜컹거리고 독서는 고통스럽습니다. 첫날엔 읽다가 울화가 터져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 읽다가 힘들면 책을 덮고 창 밖을 봅니다. 오뒷세우스는 생각보다 재밌지만 영 무거운 책입니다. 창밖 풍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음,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색깔마저 달라지는 느낌?


책장을 덮으며 느낍니다. 처음으로 나의 이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말이죠. 비록 호메로스의 서사 이후의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는 각각 불운과 (뭔가 확 깨는) 부정 속에서 슬프게 이야기 속에서 퇴장하지만, 오뒷세이아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아 성공했던 귀향에 관한 이야깁니다. 모든 믿음이 거의 무너져 있는 가운데서도 실낱의 희망으로 버텨가는 이야기구요. 거기에는 아테네의 축복과 아비의 얼굴도 몰랐던 어린 텔레마코스의 분투와 오뒷세우스의 복수의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나는 의지가 들어있죠. 페넬로페의 108명의 구혼자는, 사실은 번뇌였을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망상도 덧붙여봅니다. 물론 오뒷세우스도 키르케와 칼륍소와 관련해선 떳떳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텔레고노스한테 죽음으로 대가를 치루죠. 어찌 됐든 내가 좋아했던 오뒷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던 겁니다. 설명과는 달리.




보성 녹차밭

하지만 여기서 나의 귀향 이야기 역시 끝이 납니다. 베일을 쓴 이카리오스의 딸은 알고봤더니 튄다레우스의 딸이었고, 희망적이든 비극적이든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이 맞이해야 했던 결말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운명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사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스스로를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로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은 '노여워하는 자'도 아트레우스의 아들도 아닌 그저 이름 없는 그리스인 노잡이었다는 사실일 겁니다. 엘뤼시온 들판에도 갈 수 없고, 로토스를 먹고 고향을 잊을 수도 없는 신화에서 배제된 사람. 그래서 나는 목적을 잃고선 익명으로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진 스튁스를 볼 생각이 없지만, 쉽게 순항할 것 같지만도 않아요. 그렇게 정동진의 밤바다에서 뜬금없이 남신의주를 떠올립니다. 갈매는 여기에도 있을 테지만.


희로애락 중 희와 락을 잃고 노애만 넘치는 삶을 삽니다. 이성이 마비되면 슬픔을 넘어 분노 속에 휩싸인 나 자신을 봅니다. 화라도 냈어야 했냐고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믿음을 잃은 불신자는 그렇게 때늦은 분노를 엉뚱하게도 신에 대해서, 아니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 돌립니다. 밀양과 무엇이 다르냐고. 스스로의 마음도 모르면서 비겁하게 그림자 뒤로 숨기만 해서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느냐고.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결말에 의해 한 순간에 기만으로 바뀌기도 하는 거 아니냐고. 무슨 말을 믿었어야 하냐고, 왜 희망고문을 하느냐고, 내가 진짜 알고 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냐고 말이죠. 그렇게 혼자서 하르모니아의 황금목걸이만을 계속해서 떠올립니다. 남발했던 공수표 같던 그 모든 것들이 모두 한순간에 부도가 나버렸으니 말입니다. 이게 다 멍청하게도 사건이 터질 때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나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연극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습니다. 추수가 없는 검은 바다가 이미 모든 것을 삼켜버렸습니다.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 답은 이미 나와있었죠. 이제 불신자는 구원 없이 고래 배 속에서 꼼짝없이 녹기만을 기다려야 할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혼자만 애써 외면했으니 합당한 결말일지도 모르죠. 한심하고 둔한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는 사실 지금보다 더 큰 것이 당연한 걸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이 어려 미성숙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스스로 모든 '나'들이 답을 알려주는데도 듣지 않는 걸 보면 말이죠. 어쩔 수 없는 걸 겁니다. 그래도 한동안 잔상과 잔탄에 몸서리치더라도 외면하진 않으려 합니다. 그래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혹여나 미련을 다른 것과 착각하진 않기를, 그리고 그 모든 시련과 아픔까지도 기꺼이 감당할 값어치가 있는, 진심을 다해 모든 걸 쏟을 값어치가 있는 걸 찾길 바랍니다. 페넬로페는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였기에 20년을 눈물과 고난 속에서 기다릴 수 있었던 거니까요. 혹여나 폭풍 가운데 온다면 괴로워도 피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호메로스가 오뒷세우스의 귀향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는 신화가 됐습니다. 그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저 보통의 그리스인 장수들의 '귀향(Nostoi)'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았겠죠. 하지만 평범한 노잡이의 이야기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는, 평범하고 우연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음유시인들이 애를 써가며 암송할 필요가 없는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죠.


천성이 여행자인 나는 이제 스스로 붙인 라벨이 자연스레 떼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꽂아두려 합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의미를 잃을 때까지 애써 외면하면 적어도 고통스러운 일은 없겠죠. 다소 비겁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내게 있어 인생 역시 불공평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해가 불가능한 세상에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살아아죠.




경주, 첨성대 가는 길

밤을 꼴딱 패고 새벽 네시 사십이 분에 기차에서 차창 밖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정상인은 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이죠. 그렇게 아직까지는 스스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마음들을 일단은 인정하려 합니다. 그때가 되면 책장을 덮고 글을 쓰겠죠. 비록 평범한 재능이라 쓰는 글들 역시 필멸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지만 그래서 더 좋단 생각도 합니다. 필멸할 파피루스처럼 조용히 사는 것, 그건 무서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다 답답해지만 다시 기차를 타고 내 방황은 목포에, 분노는 보성에, 그리움은 부산에, 우울과 절망은 정동진에 던져놓고 올 겁니다. 그리고 내가 결국 찾지 못했던 해바라기 밭은 미래에 맡겨 둡니다. 홋카이도는 아직 내겐 먼 곳이니까.


이렇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며,

오뒷세이아를 덮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내 몫이 아니었던.




정동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