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 사라지는 것들

[르포] 2017, 2월.

by 디아키

“몰라, 아는 거 없어.”

화투를 치던 세 노인의 대답은 같았다. 표정이 굳어진 채 눈길을 피했다.


2017년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공원 건너편, 지하철 2번 출구 옆 골목길 틈새의 광성 방앗간. 한참 공사 중인 무악2주택재개발 지구에서 불과 오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그곳의 주민들은 바로 옆에서 지어지고 있는 경희궁 롯데캐슬의 옛 이름을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전부 잊은 듯 했다. 대지 10,088㎡, 건축면적 2,505㎡, 195세대를 위한 아파트가 2018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는 도시 공간은, 한 때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렸다.


건설현장 주변엔 더 이상 그 공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없다.’ 경희궁 롯데캐슬 분양을 전문으로 하는 ㅇㅇ 공인중개사의 ㅇㅇㅇ씨.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 주변으로 이사를 나온 원주민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옥바라지 골목이 한참 사회적 이슈가 됐던 시기, 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지역에 남아있던 세대는 3세대뿐이었다. 지역엔 더 이상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직접 증언해줄 수 있는 기억을 가진 이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겨진 골목의 기억은 공사장 바로 옆 골목길에서 독립문 모텔까지 이어지는 낡고 오래된 한옥 건물들뿐이다. 주민들은 더 이상 옥바라지 골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기억을 외면하는 듯했다.


“한참 시끄러웠죠. 세 집 정도 남겨두고 거의 다 철거 중이었는데, 갑자기 재개발을 반대하기 시작하더니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막 길을 점거하고, 시위하고. 정작 동네 주민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잘 몰라요. (재개발 관련해서) 내용을 들은 적도 없고요.” 옥바라지 골목 옆길의 ㅇㅇ슈퍼 주인이 비교적 담담하게 상황 설명을 하는 동안, 누워있던 노인은 신경질을 내려다 툴툴대며 도로 돌아누웠다. 그 표정은 순간 방앗간 지하에서 화투를 치던 남자들의 표정과 오버랩됐다.


주민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을 기억하고 있는 건 역설적으로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외부인’들이었다. 2월 1일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있었던 “옥바라지 골목 사건을 통해 바라본 도시문제”에서 발제를 맡았던 아이들을 지도한 성미산학교 ㅇㅇㅇ 교사. 그는 “공동체의 삶을 고민하는 공동체의 특성상 (옥바라지 골목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철거의 순간을 직접 목격하진 못한 아이들이, 흙만 남은 건설 토지 위에 남겨져 있던 경성 학생 항일 운동과 서대문 형무소와 맞물린 역사와 여관의 기억을 찾아내 발제를 맡았다고 그는 전했다.


“물리적 충돌이 있긴 했어요. 아무래도 조합원과 인근 지역주민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부분들도 있었죠. 실제로도 주민감사청구 서명을 받을 때에도 옥바라지 골목 주변에서 서명한 분들이 제일 적었어요.” 녹색당 ㅇㅇㅇ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마도 일상의 피로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천막 농성을 100일 넘게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갔거든요. 하지만 도시 개발 과정에 있어 부동산 자산 증식이나 산업의 욕망만이 반영되는 대신, 도시를 직접 살아가는 세입자들과 동네 주민들의 의견도 들어가야 된다고 봤어요. 도시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선, 궁극적으론 제도적으로 개발 욕망의 한계를 일깨워져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옥바라지 골목 사업은 2016년 8월 26일 서울시가 발표한 내용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 없습니다. 기념공간의 경우는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설치될 겁니다. 조사용역도 진행 중이고요.” 서울시 ㅇㅇㅇ 주무관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지역주민들이 겪은 갈등에 대한 균형 있는 해결책은 빠져있었다. 개발 과정에서 골목은 공간이 가진 기억과 지역의 특색, 지역민 사이의 유대감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가치에 의해 갈등이 이뤄질 가능성 역시 잔존하고 있다. 앞으로도 확대될 수 있을 문제들에 대해 서울시가 보여준 구체적인 응답은 아직까진 지난 1월에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와 “이러려고 시장했다”라며 서울시장이 자신의 SNS에 올린 옥바라지 골목 원주민의 감사 편지뿐이다.


* 방향성을 잃었던 글만큼이나, 삶도 방향성을 잃었더랬다. 이후로 한동인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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