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이한열 기념관 방문기
*15년 초겨울 무렵에 쓴 글. 18년 1월, <1987>이 개봉한 뒤에도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
“이한열 피 묻은 87년 연세대 화공과 깃발 ‘구사일생’(연합뉴스, 2015.9.13.)”
기념관을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 망각의 심연에서 끌어올린 이름 이한열. ‘깃발’이 철거 예정된 건물의 캐비닛 안에서 잊힐 때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만큼 현재 우리의 상황을 잘 표현하는 상징이 또 어디 있을까. 민주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되고, ‘민주화’란 단어가 한낱 커뮤니티의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시대.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인 시위마저 불법, 폭력이란 딱지부터 붙이고 비웃는 시대에 걸맞은 일이 아닌가. 비록 부끄럽게도 잊어버린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깃발만큼은 보고 싶었다.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신촌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치고는 거리가 무거웠다. 현대백화점 뒤편, 대학가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강북 서민 시장 분위기의 거리는 쌀쌀하고 적막했다. 이한열 기념관은, 그런 상점들과 오피스텔 사이에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는 데다 큼지막한 간판이나 이정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념관은 상시 개방이라고 써 있었지만 문이 닫혀있었고(나중에 알고 보니 기념관은 예약제였다), 2층엔 뜬금없게도 군인권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에는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이한열 만화상 포스터(이한열 열사가 대학에 다닐 당시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한다)와 이한열 문학상 안내문을 보며 두리번거리다 1층의 사무실을 찾아 노크를 했다. 관리하시는 분들이 열쇠로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기념관은 작았다. 복층 오피스텔과 같은 느낌의 공간의 3-1층엔 그마저도 ‘보고 싶은 얼굴’이란 이름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실제로 이한열 열사와 관련된 상설전시는 그보다도 작은 3-2층에 있었다. 뭔가 이한열 열사가 대학을 다녔다면 머물렀을지도 모를 그런 옥탑방과 같은 느낌으로. 올라가는 길에 깃발에 대해 물었을 때, 아직 깃발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영구보존처리를 위한 과정 중에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기념관의 열사의 유품은 모두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그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항구적인 ‘기억’으로 남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잠깐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재방문의 동기가 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벽면 한쪽에는 왠지 익숙한 열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3-2층에는 유품과 기념 영상이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들의 약간의 조작 후 유리로 된 스크린에서는 이한열 열사에 대한 소개와 87년 시위의 의미를 설명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스크린 반대편에는 광주에 있던 것을 가져온 열사 생전의 책상 위에는 사회과학도서와 생전에 쓰던 펜과 필통,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그 작은 방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최루탄에 맞아 스러진 그 순간에 입었던 옷과 신발, 허리띠 등을 보존해 전시해 놓은 유리벽이었다.
문익환 목사의 비통 어린 추모사가 반복돼 왕왕 대는 공간에서 가장 절절히 느꼈던 감정은 그가 불과 22살이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죽음을 맞았던 나이는, 그렇게 지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었다. 87년의 거리는 뜨거웠고, 그의 피도 그와 같이 끓어올랐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은 그렇게 산화되기에는 너무 꽃다운 나이었다. 스물둘은 연애를 꿈꿀 나이다. 친구들과의 소소한 만남이 있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그만큼 청춘이란 자신감에서만 피어오를 수 있는 많은 꿈들도 있을 나이다. 비록 최루탄 연기보다 심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을 떨쳐버리지 못할지라도, 그가 살았을 시대가 적어도 지금과만 같았더라면, 그의 가장 화려했을 젊음이 지금처럼 박제돼 기념되는 비극도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가 살아가는 삶의 토대는, 이와 같은 과거의 빚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그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민주화는 조금 더 요원했을 것이었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너무 젊었다는 생각을, 거기서 비롯된 부채의식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뭔가 먹먹했다. 죽음을 말하기엔, 열사는 내 생각보다도 너무 어렸다. 불과 스물둘에게, 시대의 무게를 짊어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80년대는 너무 잔인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젊음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갈 만큼의 가치는 눈곱만큼도 없던 정권이 비루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서 뺏어간 것은 너무 큰 것이었다. 그렇게 이한열과 같이 쓰러지고, 다치고, 고문당했던 수많은 청춘들의 의미는 이렇게 쉽게 잊힐 할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걸 사회는 너무나도 쉽게 잊었다. 불과 한 세대(3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완성된 의미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기엔 아직도 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한데도, 슬픔을 모두가 수면 아래로 감추어버린 듯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피 묻은 채 흔들리던 깃발은 잊혀지고,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추억이 되고, 강렬했던 죽음은 쓸쓸한 유산만 남긴 채 역사의 베일 뒤로 가리어진다.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그를 모두의 기억 속에 남겨줄 교과서조차 안심할 수 없는 시대에, 나보다도 어렸던 그가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기치는 정말 굳건한 것일까. 이한열 기념관의 의미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민주주의란 토대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의 젊은 피에 부끄럽지 않는가를 끊임없이 되물어주는 데 있다. 사람들이 그를 잠시 잊는다 해도 그는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3-1층의 전시물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현실은 이한열이 꿈꿨던 시대가 되기에는 요원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전시회였다. 재능교육 사태, 시위 중 행방불명, 인혁당, YH, 화재를 피하지 못한 장애인 인권운동가. 이한열처럼 시대에 희생했던 사람들, 시대의 아픔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기린 전시회는 아직도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대다수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간간에 이름이 적힌 방명록에는 아직도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쓸쓸한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판화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민주주의’란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민주화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은 것일까. 이젠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지만, 과연 그 가치는 보전되고 점차 발전해나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미 역사적으로 합의한 쿠데타조차 쿠데타라고 말하기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대신 사람들을 비웃고 헐뜯으며 중상모략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넓은 가슴은 이들을 내치는 대신 항상 끌어안는다. 5.18 광주를 폭동이라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의 말조차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끌어안는데, 이들은 그 관용 안에서 송곳을 들고 이곳저곳을 쿡쿡 찌르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수많은 희생과 고통과 아픔으로 얻어낸 성과물을 나누면서도, 수혜 받는 이들은 그것의 가치조차 모른 채 희생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사람들을 찬양하며 희생자들을 조롱한다. 놀러 가다 죽은 애들한테 8억씩이나 주는데, 왜 아직도 시위를 하냐며 희생자들의 부모를 마치 악마처럼 몰아가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란 이름 아래서 발언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이한열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이 사회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의 죽음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일까.
수많은 회의와 미안함 속에서 그래도 작은 희망을 쏘아 올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 깃발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란 믿음을 굳건히 세우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비록 세기가 지나 이름마저 잊힌대도, 그의 정신만이라도 살아 숨 쉴 수 있게 계승해나갈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한 그의 품 안에서 이한열이 지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한열의 죽음을 기억하고 계승하며 애쓰는 이한열 기념관처럼, 민주주의란 가치도 변증을 거쳐 진정한 의미의 퇴장의 길로 사라질 그 순간까지는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만이, 아직 굳건하지 못한 채 때로 사방으로부터 깃대를 흔드는 수많은 태풍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한열의 불꽃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빗줄기에 흔들리던 버스 안에서, 자꾸 되뇔 수밖에 없었다.
믿음에서 씨가 나 뿌리를 내려 큰 나무가 자랄 것이라 믿고서.
** 이한열 기념관 : 서울 마포구 신촌로 12나길 26(노고산동 54-38 이한열 기념관)
평일 10 - 17시, 홈페이지 예약 후 방문. 주말 휴무. http://www.leememoria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