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프로젝트

2013. 9. 27

by 디아키

* 이태원 **기획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한 달 내내 다니던 거리에 대한 기억. 그 후 갈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 낯설어졌다. 이걸 시작으로 나름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만들려던 궁리도 시들해졌다. 어찌됐든 이 빈곤한 기억은 말하자면 낮의 이태원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기억 속 저장 공간 중에서 가장 정교했던 것은 ‘1974년의 기억의 서울’이었어. 그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5가까지의 거리를 통째로 머릿속에 넣은 거야. 그건 일 년에 걸쳐서 아주 공들여서 만든 가상의 거리였어. 건물의 2층과 3층까지 포함해서 상점들과 집들과 나무들과 횡당보도와 노점상들까지, 거기에다가 늘 볼 수 있는 상인들까지 모두 머릿속에 넣은 것이니까. (...) ‘1974년 기억의 서울’에 이미지를 만들어서 모두 때려 넣은 뒤, 언제라도 ‘1974년의 기억의 서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김연수, 원더보이 中



#1.


모든 도시의 구조를 자신의 머리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보통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다만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남길 수 있을 뿐. 그마저도 기록이 없다면 모든것은 자연스레 휘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편린적 기억들에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인다. 기억은 왜곡되고 한정적이어서 그려낼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즉, 언젠가는 다시 재구성될 '도시'를 위한 가우디적 설계도를 구성하려는 시도.


#2.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원칙적으로 이태원은 녹사평에서 이태원까지의 동네를 포괄하지만, 조금 옆의 한강진을 포함하는 한남동도 이태원권의 일부로도 볼 수 있음.


#3.


이태원이라는 포괄적 개념의 이미지는 녹사평에서 한강진에 이르는 긴 길 가운데의 유리로 된, 다소 고압적으로 보이는 제일기획 본사 건물을 기점으로 나뉘어진다. 제일기획 건물에서 녹사평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엔 이국의 향이 난다. 스페인 식당 위에 퓨전 재패니스 클럽 라운지가 있고, 후무스란 이름을 가진 세련된 중동식당을 지나 내려가다보면 압생트를 파는 조그만 술집이 나온다. 길을 내려갈수록 그곳은 한국이라고 정의하기엔 낯선 풍경들이 쏟아진다. 수많은 케밥집들의 화덕에선 보기도 힘든 양고기가 익어가고, 길 건너에는 영국식 과자들을 파는 조그만 빨간 가게에서 버터냄새를 풍긴다. 세련된 양복을 잘 차려입은 아프리칸 아메리칸과 조금 껄렁해보이는 동유럽권 백인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소방서에서 길을 틀어 언덕을 올라 헤매다보면 이슬람사원에 닿앗던 기억이 있다. 그곳은 쓸쓸했고, 주변엔 중국인들이 많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와 이태원 역으로 쏟아지듯 내려오면 거기엔 커다란 갈색 건물이 성주와 같이 서있다. 그 앞 보광동 입구 주변의 케밥집의 터키인은 시덥잖은 농담을 건내며 터키식 아이스크림을 팔고, 그 길을 더 지나다보면 홍콩식 면가를 지나 큰 옷 전문이라는 간판들이 쏟아지는 길을 지나게 된다.


이국의 향은, 살갗의 냄새다. 미묘하게 배어있는 냄새들은 그 사람이 어디로부터 온 사람임을 가장 확실히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이국어를 쓰는 어린아이들은 유모차에서 웅얼거리고, 외국의 음식을 파는 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서툰 한국어를 쓴다. 자본이 침식해 들어와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기고 식당들이 생기지만, 육중한 갈색 벽돌로 지어진 해밀턴 호텔이 있는한, 그곳은 서민적 취향을 가진 타향이다.



#4.


이와 반대 방향으로 이태원에서 한강진으로 이어져내려가는 길에도 이국은 펼쳐지지만, 그것은 마치 이국적이라는 선을 대고 찍어낸 데칼코마니마냥 다른 모양새를 띤다. 높은 언덕 위로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올려다보이는 구불구불한 곡선 길에는 알록달록한 부띠끄 호텔과, 외제차 가게들,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지키는 비밀클럽과, 수많은 고급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지나가듯 들은 엘본 더 테이블밖에 모르지만, 기억이 닿지 않는 많은 곳에는 다른 가게들이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눈으로 봤던 부자피자가 기억나고, 건너편 길가 뒷편으로 있던 리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을 쭉따라가다 맞닥들이는 삼성스퀘어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다시 도시는 우리가 아는 서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4-1.


길을 건너면 갈 수 있는 한남동 유엔빌리지 근방은 반(半) 이태원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4-2.


그러나 그 길목 아래로부터 한강까지 닿는 그 무수한 언덕의 이태원은 기존의 가지고 있던 이태원적 모습에서 완전히 빗겨난다. 사람이 사는 터전으로써의 이태원은 무수히 맞닥들였던 강북적 생활의 터전으로써의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가엔 아직도 조그만 동네 구멍가게들이 있고, 아기들을 끌고 돌아다니는 할머니가 있다. 폴스바겐과 새로 고친듯 말끔한 가게들 사이에 놓인 2평 남짓해보이는 조그만 포장마차에는 아직도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인들이 있다.


#5


이국의 그림자와 자본주의적 키치가 덮힌 거리에도 삶은 존재한다. 그것은 뒤죽박죽 얽히되 섞이지 않아서 모두가 제 갈 길을 간다. 도시의 언덕에는 서로의 질서가 있어서, 불금을 즐기는 사람과 자신의 삶의 부유함을 느끼려는 사람과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충돌도 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그저 그 모든것을 끌어안으려는 이방인만 어지럼증을 느낄 뿐이다.



#6


기억은 정교하지 않은 무딘 나무칼날로 과일을 서는 것과 같은 일이다.


칼에는 과즙이 배어들고, 날은 갈수록 뭉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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