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정주하는 ‘우물’: 가압장 혹은 윤동주문학관에서

[응모작]

by 디아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경복궁역 뒤편, 좋아하는 술집과 통인시장이 마주보고 있는 도로를 지나 청와대와 경복고 옆을 스쳐가는 7022번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산과 동네의 경계선에 놓인 ‘우물’에 닿곤 합니다. 부암동. 주말만 되면 사람들로 복작이는 동네지만 평일 저녁 무렵 부유하듯 떠다니다 보면 고즈넉해서 아름다운 동네. 일찍이 스무살 무렵에 우연히 마주하고는 푹 빠져들게 된 그 동네를 이제 스스로는 “마음의 고향”이라 여기곤 합니다. 부암동을 그토록 애정하게 된 까닭은 따지고 보면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우물’이 그토록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죠.


부암동 동네 언저리에 걸쳐 앉듯 눌러앉은 윤동주문학관은 지금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 원래는 가압장으로 쓰였던 곳입니다. 오랜 시간 물을 머금었던 거대한 ‘우물’의 흔적은 그 시간의 무게만큼 켜켜이 쌓인 채 건물을 채운 채 잊혀질 줄을 모릅니다. 벽을 뒤덮은 얼룩덜룩한 흔적들과 크고 무거운 철문이 끼익거리며 열어젖혀질 때 밀려오는 투미한 물비린내는 1년에 한 두 번꼴로 방문할 때에도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질 줄을 모릅니다. 그 캄캄한 우물 속에서 마주하는 윤동주의 삶과 글과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더 아련해서 마음 한 켠에 남아 사람의 마음을 시큰거리게 합니다. 생각 외로 작고 단순한 그 공간이 그토록 매력적이라고 항상 느끼는 것은, 윤동주문학관이 문학관이기 이전에 거대한 시대의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을 비춰보게 하는 무언가를 항상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졸업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자처하며 찾은 문학관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변할 줄을 몰랐답니다. 다른 봉사자와 앉아있다 서있기를 교대로 반복하며 보냈던 4시간 동안 작은 공간을 이리저리 쏘아 다니며 들여다 본 거대하고 작은 ‘우물’은 그때 그대로였죠. 전시된 나무 우물 아래로 물빛이 비칠 리가 없건만 문학관을 찾는 모든 이들은 여전히 동주의 기억이 머물렀을 그곳을 꼼꼼히 살피다 소곤거리며 ‘열린 우물’을 지나 ‘닫힌 우물’로 들어갑니다. 닫힌 벽에 갇힌 웅웅거리는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자갈밭과 작은 풀밭 사이로 난 길을 오가며 몇 년에 걸쳐 그 길들을 지쳐왔던 수많은 ‘나 자신’들을 그 공간에서 겹쳐봅니다. 사각형 액자에 끼인 듯한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무심했을 터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제 자신은 사진을 찍기에 바빠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했죠. 변하지 않는 같은 공간이건만 의미는 그렇게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새로운 의미들로 다시 태어나곤 했더랍니다.


평일 오후 뜨거운 햇볕마저 졸린 듯한 시간. 아무도 오가지 않는 그 시간을 거닐며 스스로를 증오하고 용서하는 시간들을 반복합니다. 영겁처럼 이어지는 회귀는 그칠 줄을 모르고, 역전(逆轉) 된 물빛은 스스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르게 비출 뿐입니다. 후회한다고 한들,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은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며칠에 걸친 봉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던 날. 인사를 하고 차용한 자원봉사증을 반납하고 내려가는 길. 평소 오갔던 산길이 아닌 세검정 방면으로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갑니다. 흘끗 문학관을 돌아보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어보려 하지만 손재주도 눈대중도 영 떨어지는 어리숙한 사내는 옛 가압장의 모습을 기기로는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그저 마음으로 공간을 기억할 뿐입니다. 길을 나서기에 앞서 어둑해질 즈음이면 문을 닫기에 볼 수 없는 작은 우물 사이로 비출 하늘을 상상해봅니다. 소년의 얼굴을 담쟁이 덩쿨마냥 거뭇거뭇한 수염들이 뒤덮게 됐어도 스스로를 늙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내의 마음처럼 변하지 않을 윤동주문학관의 의미를 상상해봅니다. 여타 문학관들처럼 크고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곳을 스쳐지나간 모든 이들의 마음이 정주할 수 있는 고향으로서의 옛 가압장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물을 세차게 뿌리듯 마음에서 마음으로 기억들을 힘차게 뿌려왔던 우물은 언제나 그렇듯 말이 없고, 언덕을 스치는 버스는 조용히 사람들을 실어 나릅니다. 마치 윤동주의 삶처럼 우물은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의 마음을 비춰주는 고향으로서, 어디에 맘 둘 곳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주케 하는 마음 속 우물로서 오래오래 머물러 줄 것입니다.


다만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사내는 우물 속에서 쪼개졌던 수많은 삶들을 깨어진 사금파리를 이어 붙여 청자를 만들 듯 기억의 골짜기들을 기어가듯 굽이쳐갑니다.


다시 ‘고향’에 돌아올 그날까지, 계속.



작가의 이전글이태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