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자왕 형제의 모험
낭길리마로 떠난 사자왕 형제의 새로운 모험은 아마도 지구에서의, 또는 낭기열라에서의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과는 다를 것이다. 도깨비와 요정들이 있는 곳.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곳. 이상향을 찾아 떠나왔던 형제는 그렇게 하나둘 자신의 짐을 벗어던지고 희망을 찾아, 미래로 떠났다. 그러니 남겨진 우리가 돌아봐야 할 이야기는, 낭기열라에서 잊혀질 존재들, 즉 요시스와 텡일, 그리고 캬틀라에 대한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일반 동화책들의 내용과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씁쓸한 현실의 메타포인데 있다. ‘과거의 산’과 ‘과거의 강’이 있는 낭기열라는, 꿈과 희망을 가진 피안의 세계이지만 여전히 죽음이 있다. 그렇기에 부를 추구하는 배신자가 있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려 하는 독재자가 있으며,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요시스와 텡일, 캬틀라는 그렇게 단순하지만 무거운 상징으로써 우리에게 다가온다.
‘황금 수탉’ 요시스. 친절하고 사려 깊은 것처럼 보이는 그는 그 이미지 덕에 의심을 받지 않아 ‘스코르빤’ 사자왕 카알로 하여금 휘베트를 배신자로 오해하게끔 만든다. 소피아 아주머니를 싫어하는 티를 확 내고, 거만해보이는 휘베트를 넘어 요시스를 악당으로 오해하는 건 어린 아이에게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동굴 속의 대화는, 그러한 표면 이면의 숨겨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요시스의 민낯을 보여준다. 가식 뒤의 숨겨진 진실은 추악한 것이기에, 어린 카알이 받은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이다.
텡일. 너무나도 뻔한 독재자로 묘사되는 그는 굉장히 평면적인 캐릭터지만 그럼으로써 상징성이 한층 더 깊어진다.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손가락질로 사람을 제물로 만들며, 나팔을 불어 ‘캬틀라’를 제어하는 그는, 침묵을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수많은 독재자들처럼, 힘을 가진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억누른다. 소통할 수 없는 악마는 그 자체로 공포가 된다. 힘을 가진 ‘경멸’은 사람들을 서서히 옥죈다. 영웅이 오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진공의 악몽으로 환원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캬틀라. 거대한 용. 악마. 그는 그저 존재하는 악으로써, 실체를 가진 파괴자로써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본성과 욕망에 충실한, 통제되지 않는 힘. 내뿜는 불길에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파멸로 이끄는 괴물.
동화 속의 이 단순한 캐릭터들이 더 이상 단순히 동화 속 이야기로 읽히지만은 않는 것은, 그들로 비유되는 현실의 조각들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배신자들은 웃는 얼굴로 자신의 동료들을 찌르고, 독재자는 공포와 억압으로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며,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은 좌절감을 안긴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배신자들과 ‘악마’들에 의해 삶을 잃었다. 광주에서, 용산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삶들은 망가지고 배신당했다. 그 시대엔 결국 요나탄과 카알들이 돌아왔지만, 그들 역시 요나탄과 카알과 마찬가지로 스러져갔다. 그렇게 비극은 반복됐다. 낭기열라에까지도 미치지 못한 지난한 지구의 삶은, 그토록 아픈 것이었다.
낭길리마에는 과거의 산과, 과거의 강과 같은 악몽들이 과연 없을까. 우리의 삶에서도, 그러한 과거의 산과 과거의 강들을 지워낼 수 있을까. 신화의 시대를 끝낸 인간들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삶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낭기열라도 요원한 시대에, 낭길리마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도 멀다. 그럼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면, 해야만 한다면, 우리 안의 요시스를, 텡일을, 캬틀라를 제거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 사진 출처 : 창비 홈페이지(http://www.changbi.com/books/11191?board_id=4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