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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Dec 01. 2016

날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어렸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가 정말 거짓말처럼 도쿄에 왔다.



니이가타에 남아서 복구 작업을 하던 그가 복구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 온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직접적인 연락은 그저 도쿄에 오겠다는 말 외엔 없었다. 그는 복구 작업을 마치고 잠을 자지도 않은 상태에서 날 보겠다며 그 먼 길을 오고 있었다.



늦게 출발한 그는 휴게소에서 잠깐씩 눈을 붙여가며 도쿄에 도착했고 하루카의 집인 치바에 왔다.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카에게 그가 웃어주는 여자들이 다 싫어라고 말할만큼 그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나는 그가 치바까지 오자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걸까.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하다.

그는 날 좋아했으니까 이별하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내 곁에 있고싶었던 것 뿐이다.

마지막의 이별의 순간에 날 웃으며 보내주려고.

하지만 그 때까지의 난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따뜻한 진심을, 깊고 깊은 그 사랑을 나는 거짓이라 여겼고 의심했다.


그의 마음이 부담스러워 도망치고만싶었다.



그와 난 하루카와 함께 며칠을 보냈다.

당시에 일본어가 서툴렀던 나는 뉴스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관련된 뉴스는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그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해들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내 걱정에 몇 날 며칠동안 잠도 자질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비행기 티켓은 구할 수가 없었다.

비행기 티켓을 구할 없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돌아오라는 가족들의 연락. 나는 간간히 가족들에게 오는 재촉의 전화가 버겁게만 느껴졌다.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나는 여러군데의 여행사에 전화를 넣었으나 터무니 없는 비행기 티켓 값에 몇 번이나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루카에게 내가 혹시 몰라 갖고 있던 비상식량들과 전기 장판을 건네주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3월 16일 하네다로 항했다.

그 때 당시에는 재입국 심사를 하려면 여러가지 절차가 필요했으나, 입국관리국에 전화를 해서 문의해보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공항에서 바로 재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 함께 하네다 공항 주차장에서 티켓을 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차에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그 날 밤은 차에서 그와 함께 그의 차에서 보냈다. 그는 내 짐으로 가득한 좁은 뒷쪽 좌석에서 말 그대로 쪽잠을 잤다. 그리고 나에게는 운전석과 조수석 전부를 사용하게하여 편하게 잘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침, 우연히 걸었던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행 티켓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곧장 나리타로 향했다.

나리타에 도착해 티켓을 사고, 그와 함께 탑승 수속전까지 함께 차에서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나리타 공항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미 짐을 다 넣어버려 갈아입을 옷이 없던 나는 그에게 받은 그의 큰 사이즈의 셔츠를 입고 추워 후드티를 그 위에 껴입어 이상한 차림새였다.

잘하지 못한 일본어, 누가봐도 괴상한 옷차림의 짧은 머리의 외국 여자아이.

그는 그런 날 헤어지는 순간까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봐주었다.



헤어짐이 다가오고 우리는 어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헤어지기 싫어 서로를 가만히 안았다.

타인의 시선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렇게 다시 4월에 내가 나가노로 돌아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후 2년 동안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 두 달 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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