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꿈치로 얼굴을 어택 당한 뒤 쓰는 글
먼저,
혹시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분 또는 주변에 아동 전문의가 있다면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대체 아이들은 왜 이 넓은 공간에서 가로로 자는 것입니까!
아들이 여섯 살이 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약 29개월 만에 '아빠'라는 단어만 할 줄 알았던 아이는 이제 '아빠, 거기 앞에 핸드폰 좀 줄래' 라며 무심하게 얘기를 한다던가 나른한 주말, 간식을 빠르게 먹으라는 말에 '오늘 유치원가? 안 가는데 왜 빨리 먹으래'라는 말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집 밖을 나서려고 하면 '엄마? 마스크 챙겨야지'라고 나를 챙겨주기까지 한다. 기특한 녀석.
밤마다 잠들기 전에 꼭 하는 대화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노래를 불러주며 재우거나 대화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티키타카를 하다 잠이 들었는데, 이제 매일 묻는다. '엄마 내일 회사가?'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회사를 다니다 보니 간혹 출근이 잡히는 순간들이 있는데 아이의 눈에서는 재택이 기본이다. 늘 묻는다. 출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 아쉬움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휴... 난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좋겠어'
솔직하고 바보 같은 나는 또 거기서 잔소리를 시작한다.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아들 장난감 살 돈을 구할 수가 없고..' 이내 아들이 한숨을 깊게 내쉬며 등을 돌리면 아차 하는 순간이 온다. 공감을 먼저 해줄걸. 그제야 뒤늦게 건네본다. '엄마도 회사 가기 싫어~' 이미 입이 저 앞까지 마중 나와있다. 엄마가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선택의 대화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약간 꾀를 써서 아들의 눈높이에서 혹할만한 선택을 던지면 알아서 관심을 갖고 선택에 동참하는 의지를 비췄는데, 이제 뭔가 제안하면 호불호가 확실하다. 태권도를 해서 에너지를 좀 빼고 왔으면 하는 마음에 설득해서 보냈었는데 '엄마, 태권도 재미없어'라고 여러 번 말하는 바람에 관두게 됐다.
최근에 아이돌 노래만 나오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아마도 그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엄지와 검지를 펴고 춤을 진지하게 추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여기저기를 찌르며 열심히 춤을 춘다. 차를 타면 항상 자신이 선호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선곡이 시작된 것. '엄마, 찐이야 틀어달라도 했잖아!!' 이 노래를 전수해준 할머니를 탓하며 눈물을 머금고 틀어준다. 이 맑고 청아한 하늘 아래 찐이야를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니...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를 건넨다. 댄스학원을 보내달란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동네 댄스학원을 남편과 열심히 찾아본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엄마가 알아보겠다는 말을 건네 안심하게 했지만 내심 비싼 돈 주고 댄스학원을 보내려니 좀 석연치 않더라. 거리도 제법 있어서 더 망설여졌다.
그렇게 시간이 유야무야 흐른 뒤 어느 날, 유치원에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2분기 방과 후 학습 신청 목록에 어린이 댄스가 있더라! 보이는 즉시 바로 신청했다. 수업을 최근 하루 했는데 롤린, 덤덤과 같은 핫이슈가 되는 방송댄스를 가르쳐주나 보다. 집에 오더니 양팔을 벌리고 엉덩이인지 허리인지 모르는 작은 몸을 열심히 돌린다.(브레이브걸스 롤린 춤) 손가락으로 조그만 머리를 군데군데 콕콕 찌르며 손을 토끼처럼 접었다 편다.(전소미 덤덤 춤) '엄마 나 잘하지!' 그래... 아이고 귀엽기도 하지.
그런데 여섯 살이 되어도 바뀔 기미가 거의 안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잠버릇이다. 왜 이렇게 침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잠드는지 모르겠다. 마치 부루마블의 말처럼 침대를 지도삼아 세계여행을 하며 잠을 잔다.
우리 집은 이사를 오면서 큰맘 먹고 패밀리 침대를 들였다. 널찍한 게 성인 네 명도 거뜬할 만큼 크다. 때문에 아이가 아래로 떨어지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양쪽 끝에 남편과 내가 각각 떨어져 자고 아들이 가운데 잠들도록 한다. 듣기만 하면 단란하고 예쁘게 잘 것만 같지만 잠들 때뿐이다. 깊은 숙면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전쟁이 선포된다.
삼국통일이라도 이뤄야 할 것 마냥 여기저기 공격을 하며 다닌다. 특히 화나게 하는 지점은 뒤꿈치로 얼굴 내려찍기인데 오늘은 뒤꿈치로 목을 심하게 가격 당했다. 자다가 편히 죽는 것을 호상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게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 정말이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살짝 나왔다. 너무 예상치 못할 때 치고 들어오니까 방어할 겨를이 없다. 권투나 K1 선수면 바로 KO로 상대를 쓰러뜨릴 만큼 세차고 힘찬 발길질이었다.
나는 술을 먹지 않는 이상 평상시 잠귀가 꽤 밝은 편에 속한다. 바시락 거리는 소리에도 잘 깨는 편이고, 남편이 일을 마치고 새벽에 잠들기 위해 조용히 침대 끝에 잘 때도 늘 깬 상태로 '늦게 자네' 생각하고 잠이 들곤 한다. 그렇기에 아들의 침대 속 세계일주 욕구가 강한 날에는 무조건 선잠을 잔다고 봐야 한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자는 편인데, 깊은 잠이 1시간 내외로 찍히는 걸로 봐서 확실히 수면 질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수면 질을 망치는 아들이지만, 나를 KO 시키기 위해 그렇게 거친 발길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등을 돌려 차라리 등이나 뒤통수를 맞도록 조용히 몸을 돌리는 편이다. 남편도 생각은 같지만 나보다 상대적으로 잠이 깊게 드는 남편은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서 자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땐 괜스레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미안하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 그런가.
그뿐만이 아니다. 새벽에 깨어 화장실을 갈 때 아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거의 10중에 6 이상은 정가운데 위치한다. 그리고 패밀리 침대의 긴 가로면을 따라 가로로! 누워있다. 그러니까 드론을 날려 위에서 우리 가족을 찍으면 H 모양을 하고 있는 거다. 남편과 내가 I형태로 잠들고 아들이 ㅡ 형태로 자는 게 된다. 넓게 편히 자자고 패밀리 침대를 산 건데 아침이 되면 남편이나 나나 너무 불쌍할 정도로 양 끝에서 쭈그려 자고 있는걸 서로 목격한다. 이래서 부부는 전우애로 살아가나 보다 싶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아진(?) 것은 9시 반쯤 잠드는 아이는 요즘 거의 9시가 다되어 일어난다는 것. 6살이 되기 전에는 거의 7시면 일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나 둘 중 하나가 겨우 일어나서 모닝케어를 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좀 더 오래 잔다. 그래서 유치원을 허겁지겁 준비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도 가능하면 억지로 깨우지 않으려고 한다. 세계일주 하는 아이도 나름 고된 잠을 잤으리라. 푹 자고 일어나야 유치원 등원 컨디션도 좋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고되고 힘들면서 재밌고 신기하다. 직장인의 삶에 대한 글을 많이 쓰지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글로 쓰면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걸로 봐서 애 키우는 게 정말 비슷비슷하구나, 신기할 만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삶이 달라졌고 생활이 달라졌지만, 지금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이제 아들은 삶의 존재가 됐다. 더 잘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됐다. 아들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도 감히 할 수 없게 됐다.
가로로 자고 발로 가격하는 아이를 맞이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은 분명하지만 오늘도 잘 인내해본다. 아니 글로나마 이 고된 마음을 해갈해본다. 잠버릇이 고약한 아이를 둔 부모님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