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됨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아들은 12월 생이다. 예정일은 12월 30일이었는데 지독했던 야근 크리에 내 몸이 못 견뎠는지 출산휴가를 들어간 지 3일 만에 나와버렸다. 때문에 12월 초, 한 달이나 빠르게 36주 만에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워낙 빠르게 나오기도 했고 황달도 심한 탓에 나오자마자 잠시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다 나올 정도로 작게 나왔다.
출산 후에는 워낙 작고 귀여워서 12월 생이라 힘들겠다는 소리에 크게 공감을 못하고 살았다. 늦을 수도 있지, 우리 친오빠도 12월에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산다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그런데 6살이 되니 주변의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아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6살이지만 12월생이야"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6살들에게 점점 치이고 무시당하는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제는 날이 좋아 놀이터에 나갔다. 집 앞 단지 놀이터는 우레탄으로 산 봉우리처럼 여러 언덕들이 있는데 그 언덕들을 거미줄 같은 형태로 끈을 연결해두어 아이들이 매달리거나 거미처럼 손과 발을 이용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있다. 놀이터의 느낌보다는 체력단련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아이들 보다는 주로 초등학생 저학년 친구들이 주 타겟층이다.
어김없이 형누나들 사이에서 치이며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놀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의 형제가 놀이터에 진입했다. 아들은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남자인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의 친구들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 접근 방법이 서툰 탓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형제가 진입하자마자 아들은 그들에게 달려갔고 다행히 형제들은 아들과 같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히 저녁밥 메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이 갑자기 냅다 소리를 지른다. "나 여섯 살 헝아거든?"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봤는데 아마도 형제 중 동생이 아들에게 야 너 와 같은 발언을 했는가 보다.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잠시 지켜봤는데 동생은 소리 지른 형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아들은 따라가며 다시 놀이가 재개됐다. 놀이라기보다는 구애.. 에 가까워 보였지만 아들이 해결할 일이라는 생각에 지켜만 봤다. 혹시 높은 데서 밀치거나 때리는 공격적인 행동이 나오지만 않는다면 두고 볼 일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부부의 대화에 귀가 커진다.
"쟤 6살이래. 진호가 엄청 큰데?"
"진호가 큰 게 아니라 쟤가 6살치고 작은 거야"
"6살이 뭐 저렇게 애기야. 밥 잘 안 먹나"
"그냥 작은 거지 뭐, 많이 늦되나 보다 애가"
음. 그 작은 아이, 밥은 매우 잘 먹고 조금 늦은 행동들이 있긴 해도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충분히 제 역할을 하며 열심히 자라고 있다. 당신들이 그렇게 쓸데없이 걱정할 만큼 작지도 늦되지도 않다. 사실 부부의 대화에서 화날 만큼 나쁘게 이야기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운 어투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속이 상했다. 12월 생의 설움이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부모가 된 입장으로서 그저 저마다의 성장 속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가벼이 넘겨도 괜찮다. 그러나 아이가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또래의 빠른 생일자를 지닌 친구들과 속도 차이가 나는 것에 스스로 버거워할까 봐, 조금 작다는 이유로 주변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거나 시선이 따가울까 봐 걱정이 되더라. 12월생이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라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그 부부의 주변 시선 신경 안 쓴 진솔한 대화(?)가 큰 자극이 됐다.
그 대화가 끝난 지 한 2분 정도 지났을까. 바로 그 작고 늦된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들은 나의 부름에 모터 단 듯 뛰어왔고 옆에 있던 부부는 나를 바라봤다. 당황한듯한 눈빛이었고 난 그저 그 동공을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보고 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뱉은 내 아이에 대한 가벼운 대화가 내게 상처가 됐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으니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쳐다봤겠지만...
부모라는 존재가 그런가 보다. 내게 일어나는 부당한 행위는 참아내고 견디고 때로는 무시하며 지낼 수 있다. 그런데 내 아이에게 일어나는 무시, 곱지 않은 시선은 유연하게 넘겨버리는 게 쉽지 않다.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부당한 행위(작다고 놀리거나 때리거나 하는 행동)를 겪게 되면 그 분노 게이지가 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아이를 내 아들의 속도와 비교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성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쏟아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데 에너지를 쓴다. 그것이 '비교'가 되는 것은 부모들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비교하며 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아이들이 동등한 시선을 가지고 함께 서로를 배워가며 지낼 수 있도록, 부모가 힘쓰자. 나부터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시선을 버리도록 하자.
지금의 우리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부모님께 물어보면 제각기 너는 걷는 게 느렸어, 말이 느렸어 등 하나같이 하나의 늦됨은 있게 살아왔다. 성인이 되면 뭐가 다른가. 너는 이해력이 좀 부족해, 너는 판단력이 부족해 등 다른 동료보다 늦은 부분들이 생긴다. 서로 다른 분야들이 조금씩 특화되어 발달될 뿐이다. 그런데 유독 아이를 바라보는 늦됨의 시각이 '안타깝다'로 귀결되는 게 속상하다.
누군가는 비교가 있기에 아이가 제대로 자라는지 알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아주 어린 성장기에는 그게 필요한 게 맞다. 혹시 모를 아이의 선천적 이상 징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을 했고 급격히 퇴행하는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지켜봐 줘야 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며 "쟤는 너보다 작네?"라던지 "쟤처럼 키가 커지려면 밥 잘 먹어야 돼"와 같이 비교가 아이들의 인식에 자리잡지 않도록 우리 부모들부터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아이들이 비교가 아닌 자신들의 사고 안에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얘는 나보다 못하다'의 인식이 아닌, '얘는 이런 걸 잘하네? 멋지다!'와 같이 서로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늘 성숙하고 생각이 깊다. 비교가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한 평생 경쟁하며 힘겹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나 역시 맘처럼 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 주말에도 "밥 안 먹으면 키 안 큰다"를 몇 번이고 내뱉었던가.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려 노력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자유롭게 사고하는 과정에서 위계와 예절을 배워갈 수 있도록, 나와 생각의 결이 같은 부모들님들이 계시다면 함께 힘써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