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가 그래도 돼?

애엄마는 어때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더냐

by 달하
[애엄마]
아이가 있는 여성


한 부부 슬하에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을 두고 '애엄마'라고들 한다. 보통은 남편이 자신의 주변인에게 와이프를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 사전적 의미와 같이 애엄마는 아이가 있는 여성일 뿐이다.


한 여성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애엄마는 마치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애엄마의 '상(Example)'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은 무시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걱정인 양 조심스럽게 기분을 더럽히는 그 한마디.


애엄마가 그래도 돼?


아이가 있는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한마디 던져본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을 대한민국이 나에게 마련해줬는데, 자 그럼 애엄마가 어때야 한다는 법률은 몇 조, 몇 항에 있나?


애엄마는 왜 특정 행동이나 모습에 대해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대체 누가! 애엄마는 그러면 안된다고 정해두었단 말인가.




집을 하루 이상 비우는 것


나는 20대가 되면서부터 혼자 여행을 즐겨왔다. 그 누구도 없이 홀로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많았기에 내 주변에도 홀로 여행을 추천하는 편이다. 미혼일 때는 너무 좋은 취미라며 칭찬일색이었던 이 행위가 애엄마가 되고 나니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잘못된 자세로 여겨진다.


회사에서 개처럼 구르는 워킹맘이든 집에서 온종일 미치기 직전까지 육아를 하는 전업맘이든 하루쯤 휴식을 취하고 싶은 날이 있다. 이럴 때는 가끔 머나먼 여행까지는 힘들어도 하루정도 호캉스 정도는 즐기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자격, 충분하지 않은가?


친구들과의 여행도 그렇다. 주로 애엄마는 아이의 시야를 넓혀주고 즐거운 추억을 쌓아주기 위해 아이 중심의 여행 계획을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끔은 엄마도 지루한 삶에 활력을 넣어주기 위해 익숙한 가족보다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 여행으로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여기에는 회사에서 가는 친목 워크샵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렇게 가정으로부터 잠시 분리되어 여행이나 워크샵을 떠나게 되면 어김없이 누군가에게 듣게 되는 한 마디.


"애엄마가 그렇게 자리 비워도 돼?"


나의 가정에서, 내 남편이 허락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애엄마 없어도 집 잘 굴러간다. 아니 그리고, 애엄마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안 굴러가는 집이라면 오히려 그 집안을 걱정해야 될 것이 아닌가?




애엄마의 외모에 대한 편견


애엄마라는 단어가 붙으면 연상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주워 들어본바, 희망하는 애엄마의 이미지를 정리해보면 참하고 차분하며 조신하게 남편과 아이를 위해 늘 희생하고 살아가는 이미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사상이 기저에 깔려있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내 모습은 상당히 불편함을 초래한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인데, 내가 좀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게 되면 애엄마가 점잖지 못하다고 혼이 나곤 한다. 애엄마가 살 다 보이게 무슨 그렇게 짧은 것을 입고 다니냐고. 내가 무슨 핫팬츠를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허벅지 반 정도만 보이더라도 보시기에 그렇게 불편하신가 보다. 어르신한테 들으면 그나마 양반, 비슷한 또래에게 들은 적도 있다. 그쪽이 지금 남 지적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화장도 그렇다. 사실 나는 화장을 하게 된 이력이 그리 길지 않다. 평소에 관심도 없었고 귀찮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생기는 주름과 잡티는 아무래도 그냥 다니기엔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라 가면(?)이라도 쓰고 다니려 화장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 맛을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진하게 한 날이면 누군가에게 듣는다. 애엄마가 뭔 화장을 그렇게 진하게 하고 다니냐고. 애엄마 화장법이 따로 있기라도 한다니?


애엄마는 여성에게 추가되는 단어일 뿐, 여성을 대체하는 단어가 아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또는 내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옷 한 벌, 화장품 하나 사는데 망설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고 자격도 있다. 내 외모 가꾸는데 단 돈 십원도 투자한 적 없는 인간들이 말 많다.




가장 큰 논란거리, 술


술을 즐기는 여성의 경우 애엄마가 되면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주제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즐긴다. 여자가 술을 먹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뭔 자랑거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나의 기호일 뿐이다. 내가 내 인생의 기호로 정해둔 것인데 참 그렇게들 남의 인생에 관심도 많다.


회식을 하던 어느 날, 평소 맘에 안 들었던 상사로부터 자기 애엄마가 나처럼 술 먹고 다녔으면 가만 안 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술 먹자고 부를 땐 언제고 이 자식이...? 회식이란 자고로 업무의 연장이기 때문에 상사의 말에 그저 웃고 넘길 뿐이었지만 속으로는 육두문자를 날려줬다. 이 빌어먹... 삐(자체 음소거)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그렇다. 친구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친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는데 친구를 위한 자리니 모두가 함께 원래 잘 알았던 사람들처럼 즐겁게 보냈다. 모두가 얼큰하게 취했고 즐겁게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누군가 그랬다더라. 애엄마가 그렇게 신나게 술 먹고 놀아도 되냐고. 애엄마는 신도 나면 안 되는 거였나.


술 먹고 실수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지만 술 먹는 행위 자체를 가지고 애엄마와 아닌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명백한 편견이다. 미혼일 때는 그렇게 같이 먹자고 거머리처럼 들러붙더니, 애엄마가 되고 나니 그렇게 술 먹어도 되냐고 쯧쯧거린다. 내 할 일 다 하고 술 좀 먹겠다는데, 왜 난리야?




애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둥 저래야 한다는 둥,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제에 말들 참 많다. 생각은 자유지만 그 말을 당사자에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에 대해서는 행실에 주의를 바란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상당히 불쾌하게 하는 언행이다.


애엄마도 사람이고 여성이다. 물론 미혼만큼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연의 성격이나 취향조차 버리면서 살아가야 할 의무는 없다. 집안의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에서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즐기고 살겠다는데 왜들 그렇게 오지랖. 내가 뭐 집안을 팔아먹기라도 했다니?


애엄마라고 위축되고 늘 희생하며 살아갈 필요도 의무도 없다. 당당하게 살아도 된다. 애아빠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바뀌면서 애아빠에 대한 희생을 강조하는 집안이 많지만 아빠도 휴식이 필요할 때는 좀 쉬자. 가정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애엄마든 애아빠든 아이가 있는 것뿐, 한 명의 여성이고 남성이며 사람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행복추구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애엄마가 그래도 되냐고? 된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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