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기민하게 행동해야 한다.
아들의 낮잠 타임이 흐르고 있다.
5살의 에너지 풀파워 아들이 낮잠을 안 잔다는 것을 겪은 엄마 아빠는 알겠지만 이 사실은 한 영혼의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이다. 그 결과가 아주 좋거나 미치게 힘들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 '아주 좋을 때'는 동지애로 가득 찬 남편과의 맥주타임이 기다리고 '미치게 힘들 때'는 자정이 되도록 침대 위에서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아들의 낮잠과 엄마 멘탈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논문이라도 써야 할 판.
얼마 전의 사건(?)이다. 아침 7시 반 기상한 아들이 오후 5시가 되도록 한 시도 쉬지 않고 뛰어놀았다. 기상하자마자 배가 고프다며 떡(뜻: 핫도그)과 딸기우유를 대령하라는 말에 졸린 눈을 비비며 냉장고로 향한다. 졸고 있으면 엄마 뭐하는거냐며 빨리 도둑을 잡아야 한단다. 경찰차는 내 손에 쥐어져 있고 자기는 소방차를 들고 있다. 도둑을 잡아야 하는데 소방차는 왜 있고 존재도 없는 도둑을 나는 잡으러 다녀야 한다. 지루해질 때쯤 헬로카봇 직소퍼즐을 가져와 맞추자고 조른다. 그것도 질리면 그림도 그리다가 결국 "엄마 우리 숨바꼬찔 하까?"의 무서운 멘트로 침대로 돌진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들 찾기에 열을 내고 있노라면 옆에서 자고 있던 아빠가 깬다. 이렇게 아침에 누군가 아들을 케어하는 것을 '모닝케어'라 부른다. 주말 모닝케어는 언제나 고되다. 늦잠 자고 싶은데...
모닝케어를 얼추 마치고 오후에는 조카 생일파티 스케줄이 잡혀있어 친정엄마네로 이동했다. 조카는 3살 꼬맹이인데 이제 막 뛰는 법을 배운 초짜 아들이라 뛰는 것이 아직 산뜻하다. 꼬맹이랑 신나게 같이 뛰어놀던 중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되었다. 아들의 눈은 이미 풀려있고, 이유 없이 웃는 걸로 봐서 분명히 졸린 거 같은데.. 왜 도대체 왜 안 자는 거야! 안 되겠다 싶어 온갖 재롱을 떨며 - 대체 왜 재롱을 엄마가 떨어야 하니 - 집으로 가자고 겨우 설득을 했다. 겨우 차에 태웠더니 헬로카봇 오프닝 ost을 틀어달란다. 지아빠 닮아서 노래 선곡 확실하다. 신명 나게 한곡 부르더니 잠들었다. 근데 차에서 잔다. 오후 여섯 시. 지금부터의 행동이 미래를 결정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지금부터 2개의 가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보자.
지금 그대로 다음날까지 12시간 FULL잠
집에 도착해서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카시트 안전벨트를 분리하고 잠바의 자크를 내린다. 얇은 유리잔을 옮기듯 조심스레 아들을 든다. 들자마자 무릎으로 바운스를 주며 손으로 등을 토닥인다. 아직 그대로 잔다. 살짝 몸을 비틀었지만 본인이 편한 자세를 잡기 위해 그런 것 같다. 깊은 호흡을 하는 것으로 봐서 딥슬립 중.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신발을 살며시 벗기고 신중하게 잠바를 벗긴다. 그리고 침대로 같이 눕듯이 눕힌 뒤 바로 옆에 누워 가슴팍을 적당한 터치감으로 토닥인다. 아직 잔다. 일단 눕히기까지 성공했다.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잔잔한 자장가를 튼 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쉬는 듯 안 쉬는 듯 조금씩 조금씩 내뱉는다. 후우우 - 성공이다.
까치발로 거실로 나가서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신나게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저렇게 2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그때부터 헬게이트 오픈. 그래, 우선 각자 할 일들을 하고 거실에서 2시간 뒤 다시 접선하자. 남편은 손가락이 근질근질, 유일한 취미인 게임을 즐기고 나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웹서핑을 시작된다. 흘러가는 대로 글을 보고 SNS도 염탐한다. 단, 유튜브는 금지다. 아들이 자고 있는 공간에서는 블루투스와 연결된 웅장한 자장가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잔잔한 감동을 깨서는 안 된다.
2시간이 지나고 거실에서 조심스럽게 접선하여 아들의 숨소리를 확인한다. 아주 깊고 느지막한 숨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딥슬립이다. 성공한 것 같지? 그런 것 같아! 감격스러움과 함께 조금은 과감한 움직임을 취해본다. 약간은 부산스럽게 자신이 먹고 싶은 안주를 하나씩 선택해 준비하고 시원하다 못해 얼얼한 맥주를 두 캔 들고 와 자장가가 조금 웅장 해지는 시기에 맞춰 살며시 캔을 딴다. 치익-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볼륨조절을 신경쓰며 티비를 시청한다. 티비를 아무리 아무리 봐도 10시가 안됐다. 이토록 행복한 시나리오가 또 있을까.
오후 9시 눈이 말똥말똥, 헬게이트가 열린다.
집에 도착해서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카시트 안전벨트를 분리하고 잠바의 자크를 내린다. 조심스레 아들을 꺼내어 들자마자 무릎으로 바운스를 주며 토닥인다. 그대로 잔다. 집에 조심히 들어가 침대에 눕히는 것 까지는 성공한다. 숨소리가 약간 불안불안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여유를 즐기기로 한다. 빠르게 흩어져 제 할 일을 한 지 1시간이 지날 때 불안한 아들의 뒤집힘이 시작됐다. 굴러다닌다. "으에엥 저리 가~"하는 소리를 내지만 눈을 감고 내는 것을 보니 꿈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악몽을 꾸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꿈속에 있는 것을 보니 승산이 있다. 낙심하지 말자. 그렇게 총 2시간이 지나고 접선 장소인 거실에서 만난다. 아들의 숨소리를 들으려 닌자와도 같은 걸음으로 살며시 걷다가 자동차 장난감을 발로 찬다. 툭- 등이 오싹해지고 흐르는 식은땀을 뒤로하고 살며시 아들을 쳐다본다. 엎치락뒤치락거리더니 이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어? 엄마아빠집에 도착했네?" 아- 오늘 하루는 종 쳤다. 정말이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렇게 2시간의 선잠을 잔 아들은 깨어나자마자 "엄마 아빠 일루와봐아~" 잠에서 덜 깬 귀여운 아들이 부르니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오늘따라 무겁고 신이 나지 않는다. 그러게 왜 장난감 하나 발견하지 못했냐며 서로의 보이지 않는 레이저를 쏘는 찰나 아들은 내 손에 구급차를, 남편에게 소방차를 쥐어주더니 "엄마, 아빠 경찰차랑 구급차랑 소방차랑 도둑을 잡아야 해~ 어서!" 모닝케어에 이어 존재도 없는 도둑잡기 상황극이 또 시작됐다. 어느새 슈퍼윙스 호기 - 비행기 장난감 - 가 나타나 엄마 괴물을 물리친단다. 아들은 신이 난 나머지 소파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한다. 나와 남편은 동시에 "안돼에...!!!" 말이 끝나기도 전 쿵. 아랫집 할머니의 찌푸린 얼굴이 떠오른다. 죄송합니다 정말... 갑자기 어디선가 악어 장난감 - 이빨을 누르면 입이 닫히는 무서운 장난감. 심지어 매우 아픔 - 이 나타나서는 이 세상을 재패할 것 같이 웃는다. "하하하 나는 악어 괴물이다!" 그렇게 당최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상황극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막을 내렸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지치는 거야.
자, 둘 중에 어떤 미래를 갖고 싶은가? 당연히 핑크빛 미래를 떠올리시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대동 단결하여 마이크로 액션을 구사해야 한다. 아래 3가지를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기민하게 행동해야 한다.
첫 번째 주의할 것은 장난감 지뢰밭. 자고 있는 아들을 안고 있는 사람은 우선 바운스와 토닥임을 유지해주고 서있는다. 남은 사람이 주변의 장난감 지뢰밭을 가능한 빠르게 파악한다. 지뢰는 건드리면 터진다! 터지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아들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앞선 지뢰밭을 잘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장난감을 조심스럽게 다 치웠다는 사인을 보내면 이제 아들을 안고 있는 사람의 몫이다. 눈알만 살짝 아래로 째려보고 장난감이 없다는 것이 확실히 인지될 때만 움직인다. 잘못 툭 건드렸다가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그 장난감이 건드리기만 해도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이라면? 하- 헬게이트 오픈이다.
두 번째, 지뢰밭을 무사히 건넜다면 가능한 아들 옆에서 같이 자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등센서가 아직 미세하게 남아있는 5살의 아들은 내려놓는 순간 센서가 작동할 수도 있다. 그때는 같이 여기는 우리 집이고 함께 잠들었다는 안도감 만으로도 다시 재울 수 있다. 엄마, 아빠가 같이 시체놀이를 하는 거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특히 바스락거리는 인형이나 베개 쪽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대화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문명인이 아니던가! 카톡을 이용하자. 지금 아들의 상태에 대한 공유와 갑자기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에 당황하지 않도록 다음 전략에 대해서 미리 짜두자. 단, 혹시나 알림 켜 둔 것을 잊었다면? 그때부터 전쟁 선포다.
세 번째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울려퍼지는 자장가에 말이 묻히는 수준의 대화와 움직임을 유지하자. 제발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흥분하지 말자! 그것은 다 쌓아둔 모래성에 물을 한 바가지 끼얹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심호흡을 크게 두세 번 하고 난 뒤 행동하자. 만약 원하는 것이 조금 시끄러운 행동, 예를 들어 만두를 전자레인지에 쪄먹고 싶은 경우 원하는 물건을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어 그릇과 함께 문이 있는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그릇에 담아내자.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도 주의사항이 있다. 전자레인지 종료 1초 전에 취소를 누르는 것. 1초가 0이 되는 순간 제조사마다 흥겨운 노랫소리가 흐르며 악몽은 바로 현실이 된다.
그렇다면, 혹시 조금이라도 공감하셨나요? 조금 오버스럽긴 해도 아들이라는 존재의 에너지를 글로 한 번 담아내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데 어쩔 땐 뭐 이런 게 태어났나 싶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또 너무 예쁘고. 오늘 하루에만 수십 번 감정이 왔다 갔다, 혹시 내가 미친 건 아닐까 나만 이렇게 힘든가, 우리 아들만 이런가 싶으신가요? 아닐 거예요. 많은 엄마들이 같아요. 우리는 우리 아들의 엄마이고 친구이고 연인이라서 그래요. 연애를 해도 웃다가도 울고 밉고 그러다가 또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렇잖아요? 연애 잘 끝내고 결혼에 성공했는데 웬 꼬맹이랑 연애를 다시 하는 기분. 이게 힘든 건지 좋은 건지 구분도 잘 안 되는 이 말도 안 되는 기분.
아빠들보다 엄마들이 더 혼란스러울 거예요. 아빠는 사실, 과거에 아들이었잖아요. 지금 얘가 왜 이러는지 머리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마음이 그냥 알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힘듦이 조금 덜 할 거예요.(안 힘들다는 게 아닙니다!) 엄마는 워낙 세심해서 그래요. 섬세한 그 감성이 있어서 아들을 더 잘 키우고 싶은 욕심도 생기는 거죠. 근데, 저는 욕심 과하게 부리지 않기로 했어요. 나를 믿고 이 세상에 와줬잖아요. 지금처럼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주면 분명 사랑스러운 아들로 바르게 자랄 거라고 믿어요. 육체적으로는 솔직히 힘들지만 그만큼 제가 체력을 키우기로 했어요. 그냥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면 그걸로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 아들이 말을 너무 안 듣고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게 혹시 내가 회사를 다녀서 신경을 많이 못써서 얘가 이러나 생각하지 맙시다.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잖아요. 엄마인 우리도 감당할 수 있는 경중의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어찌 컨트롤하겠어요. 지켜봐 주는 게 어떨까요? 아들은 그 존재만으로 너무 멋지잖아요. 딸처럼 애교 많고 깜찍한 느낌은 덜해도 넘치는 에너지만 잘 소진해주면 오히려 본능에 충실해서(?) 편할 때가 많아요. 좀 더 크면 든든하기까지 하겠죠.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건 절대 엄마 탓이 아니에요! 그냥 그럴 때라서 안 듣는 거예요. 엄마 스스로 내가 부족한가 느끼는 것이 발전하는 엄마의 가장 좋은 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