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외벌이가 뭐가 어때서?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니 왜 이리 호들갑이야

by 달하
마누, 나 잘렸어


2019년 7월, 남편이 잘렸다. IT업계 회사원이라면 잘리는 거야 종종 겪는 일이지만 그게 우리 집 가장에게 올 줄이야. 심지어 당시 나는 중국 출장 중. 집으로 오는 비행기, 머리도 마음도 복잡했다. 주변에 들킬까 괜찮은 척했지만 심장박동수는 눈치 없이 빨리 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화롭기만 했던 가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퇴사까지 이제 한 달, 계획이 필요하다.


집에 돌아와 남편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생각보다 평온하다. 멘탈이 이미 나간 건가? 가출한 멘탈을 다잡고 저녁에 맥주를 한 잔 하며 앞으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회사가 딱히 질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다니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하긴, 누가 이렇게 된 마당에 회사를 다시 가고 싶겠어. 남편이 잠시 주저하더니 용기를 내어 얘기를 꺼낸다.


"제대로 고민해서 진로를 결정하고 싶어"


'진로? 진로는 소주 아니던가?' 그 단어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잘 참아내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남편은 숫자만 놓고 보면 아직 젊다. 새로운 길을 간다고 해도 아직은 시도해볼 만하다.


그래, 인생 거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빡빡하게 살고 그르나. 내가 밥 굶지 않을 정도는 버니까 쿨하게 시행해보자 했다. 그렇게 2019년 8월, 엄마 외벌이가 됐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걱정 반, 두려움 반, 무서움 반... 아니 대체 뭐가 쿨하다는 거여?



뭐든 야박한 외벌이


외벌이가 되니까 뭐든 야박해진다. 우선 매 달 찍히는 통장의 금액이 야박하다. 그렇게 호화롭게 살았던 것도 아닌데 남편 급여의 공백은 왜 이리도 크게 느껴지는지. 정말 야속하게도 남편의 급여는 단칼에 통장과 이별했다. 잘 가..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언젠가 외벌이가 실패하면 그때 꼭 다시 만나자.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 점수도 야박해졌다. 외벌이도 혼자 버느라 힘든데 왜 맞벌이 가정만 특혜를 주는 거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나도 그동안 열심히 누렸으니 할 말 없다. 보내고 싶었던 어린이집 대기번호가 저 세상 끝에 가있다. 저 번호가 다가올 때면 아마 아들은 초글링이 되어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찌 야박하기만 하겠는가! 많은 것을 잃은만큼 확실하게 얻은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워킹맘의 집과 회사의 균형이다. 워킹맘이라 마음만 쓰던 것들이 조금씩 해소가 됐다. 몇 가지 소개해본다.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맞벌이 워킹맘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하루하루가 전투라는 거다. 서로 피곤하기 때문에 늘 예민 모드, 퇴근 후 육아 전투를 끝내면 전우애를 다진 전사들처럼 바로 곯아떨어졌다. 퇴근 후 모든 육아 분담을 반반 했기에 누구 하나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외벌이가 되면서 남편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평일은 남편이, 주말은 내가 육아를 분담했다. 그러다 보니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했고 불만도 덜했다. 육아를 끝낸 뒤 대화의 시간도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사실 여기까지는 아빠든 엄마든 외벌이에게 생기는 공통적인 이점이다.



균형이 잡힌다.

지금부터는 엄마라 생긴 이점이다. 먼저 맞벌이 때는 기본적으로 육아든 회사일이든 그저 둘 다 지치고 힘들기만 했다. 회사는 회사에서 시간을 더 쓰길 바라는 눈치였고 집은 집대로 제 역할을 하길 바랬다. 눈치 살피다 겨우 퇴근하면 아이를 그저 재우기 바빴을 뿐,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외벌이가 되면서 남편의 도움으로 평일은 회사에 집중하고 주말은 집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게 됐다.


주말이 되면 내가 알아서 아이의 모닝케어를 책임지고 가족의 밥을 챙긴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아빠보다는 엄마가 가족을 보살핀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주말에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남편은 평일에 고생한 아내를 위해 주말에도 함께 집안일에 힘쓰고, 아내는 평일에 못 돌봐준 남편과 아이를 위해 힘쓴다. 이제야 비로소 아이의 커가는 것을 느끼고 고민하며 육아를 할 수 있게 됐다. 회사도 집안도 균형이 잡혔다.



경제체계가 잡힌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한 집안의 자금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빠 외벌이는 급여의 전부를 집에 헌납하고 그 안에서 아내는 집안의 상황에 맞게 소비해야 한다. 아내가 돈을 받기만 하는 입장이면 양쪽 모두 약간 불편함이 생긴다. 엄마는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또는 육아를 조금 더 편히 하기 위한 일명 '육아템'과 같은 물건을 산다. 어디 가서 기죽이지 않으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있는 교구, 장난감, 옷 등 남편 눈치가 조금 보여도 사게 된다. 남편 입장에서는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내가 피땀 흘려 벌어온 돈이 허투루 쓰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반면 엄마가 외벌이를 피땀 흘려 버는 것도 엄마, 지출 여부의 결정도 엄마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고심해서 지출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 집과 같이 남편이 물욕이 없는 집안이면 중앙집권(?) 경제체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금관리에 편리하다.



집안일의 고됨을 이해한다.

집안일은 그냥 기본적으로 힘들다. 평생을 나의 부모님과 살다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꾸리면 제일 많이 싸우는 부분이 이놈의 집안일이다. 누군가가 좀 더 더러운걸 못 참는 사람이 치우게 되어 있다는데 맞벌이가 되면 세상 너그럽게 둘 다 그냥 둔다. 우리 집은 그래도 남편이 집안일 참여형 인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아내가 챙기는 집안일이 훨씬 많다. 기본 장착 레이더가 다르다.


엄마가 외벌이가 되면 남편에게 점차 거시적인 시야가 트인다. 예전 같았으면 "그거 어디 있지?"를 밥먹듯이 물어보면 대답해줘야 했던 내비게이션 역할도 줄어든다. 맞벌이라 느끼지 못했던 평일 집안의 쾌적함도 느낄 수 있다. 집안일이 남편에게 많은 지분을 차지하면서 스스로 많이 돕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집안일의 진정한 고됨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당신은 집에서 놀기만 하잖아!"라는 말이 얼마나 몰상식한 발언인지 집안일을 온전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외벌이가 가진 공통적인 문제

엄마든 아빠든 외벌이를 하면 발생하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회식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이를 깨운다. 그렇게 겨우 힘들게 재운 아이를 꼭 귀찮게 한다. 그냥 봐도 사랑스러운 이 아이는 술이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귀여운 볼따구에 입을 쪽쪽거리고 꼭 껴안고 옆에 눕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씻고 잔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빠가 회식하고 들어와서 내 얼굴을 비비는 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왜 그러는지 알 거 같다. 맞벌이 때는 대체로 같이 재우고 함께 잠이 들었기에 많지 않았던 일인데 회식이 잦아지면서 횟수가 늘었다. "아휴 깨우겠네 깨우겠어"라며 가서 씻으라고 잔소리를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생소한 장면이 연출된다.






갈길이 먼 사회적 시선

엄마 외벌이는 단순히 돈을 버는 주체가 바뀌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회사의 만족을 추구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제도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엄마 외벌이에 대한 시선이 불편하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조언이 쏟아진다.


어떻게 엄마 외벌이가 됐다 해도 회식 참여나 워크숍 같은 회사의 활동에 참여하면 '애엄마가 저래도 돼?..'와 같은 시선이 따갑다. 실제 저 말을 들었을 때는 적잖게 상심하기도 했다. 남자가 돈을 벌어야 가정이 편하다, 남자는 자고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지속적인 불편한 발언과 만류를 견뎌야 한다. 물리적인 재정상황의 어려움보다 차가운 시선과 가벼운 발언이 심리적으로 더 아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도했고 견디고 버티며 지내온 엄마 외벌이 생활이 1년 가까이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혹시나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가정이 있다면 나는 이 체제를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시대는 바뀌었고 더 이상 남편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 한 가정의 체제는 그 집안에서 잡는 것이다. 주변의 불편한 잡음도 1년이 지나니 조금씩 잊히고 그 무게도 가벼워진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걱정해서 하는 말들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사회가 '돈은 남자가 벌고, 아이는 여자가 키우는 것'의 사고를 만연하게 배양시켰고 그런 태도에 기계같이 순응하여 나오는 발언과 시선일 뿐. 원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도 말이 많다. 가볍게 무시하자. 엄마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에 그 누구도 손가락질할 자격은 없다.


맞벌이를 하면서 가정과 일의 양립이 가능하다면 그게 베스트다. 사회가 아직은 맞벌이로 아이까지 잘 키워내기 힘드니 어쩔 수 없이 외벌이를 택하는 것이다. 엄마든 아빠든 외벌이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고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신중한 결정 앞에 어떤 충고나 조언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주면 그걸로 됐다.



이 세상의 모든 외벌이 가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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