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이 되어서야 아빠를 불렀다

말이 느린 우리 아이, 괜찮을까?

by 달하

부모가 처음인 경우, 아이의 발달 상황을 대부분 검색에 의존하게 된다. '26개월 아기발달'을 검색하면 나오는 표준 발달상황에 우리 아이를 대입한다. 표준 발달에 두어 개만 못 미쳐도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그게 조부모에게서 조급함이 느껴지는 언어발달인 경우, 그 조급함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된다.


24~36개월, 이 시기에는 언어능력이 월등하게 발달하여 하루에도 수십 개의 단어를 배우고,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듣습니다. (중략) 한 달에 새로운 단어를 100개 이상 배울 정도로 언어가 폭발하는 시기예요. [네이버 검색 - 앙쥬 매거진]


나의 아들은 두 돌이 지나도록 말을 못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말을 시작하려는가 싶더니 감탄사인지 뭔지 소리만 냅다 질러댔다. 병원만 가면 그 데시벨이 극한에 이르렀고 유난스러운 고음에 대부분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돌고래라 칭하며 그 많은 아이들 중 아들을 기억할 정도였다.


아들이 두 돌이 지나서까지 말을 못 하다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조리원 동기를 만들어 두었기에 동기들 대화창에 물어봤더니 아들만 빼고 적어도 엄마, 아빠는 하는 것이었다. 혹시 정말 내 아들만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조금씩 말을 시작한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게 뭐라고 부끄러웠을까. 일반적인 아이들과 비슷하게 자라고 있다고 둘러대곤 했다.



혹시, 나 때문인가?

내 아들은 평균보다 이른 36주에 조기 출산을 했다. 출산 휴직계를 낸 지 3일 만이었다. 태어났을 당시 몸무게도 2.52킬로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왜소했고 황달기도 심해서 작은 안경을 끼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황달 치료를 받았다. 핏덩이 같이 작은 아이가 치료를 받는 모습에서 내가 뭘 잘못했기에 아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느냐며 안타까움에 눈물의 나날을 보냈었다. 많은 아이들이 받는 치료인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여서 그게 그렇게 속상했다.


혹시 내가 아들을 배에 품었을 때 뭔가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줄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닐까. 내가 임신상태에서 너무 일만 했어서 스트레스받았나. 내가 음식을 너무 가려먹지 못해나. 내가 음악을 큰소리로 들어서 문제가 생긴 걸까. 운동을 너무 안 했나. 전혀 연관도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뿌리를 뻗어나가 하루하루 반성하고 아들의 발달에만 집중해서 살았더랬다.



검색의 끝, 자폐 스펙트럼

26개월이면 100개 이상의 단어를 해야 한다는데 단 한마디도, 아니 그 흔히 한다는 엄마 아빠도 못하다니.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행동도 다른 아이들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자동차를 일렬로 배치하는 습관, 바퀴를 끊임없이 굴려대는 행동, 반복적으로 문 열고 닫기, 스위치 온오프는 한 20번 정도는 해야 끝이 난다. 호명 반응은 당연히 잘 안됐고(이건 지금도 뭐, 잘 안된다.) 하고 싶은 게 맘처럼 안되면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스스로 화를 못 이겨 그 장소가 어디든 소리를 빽- 질렀다.


또한 검색 결과에 해당 개월 수에 엄마 질문에 대답이나 행동하기보다 앵무새처럼 엄마 말을 따라 하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라고 적혀있다. 아들은 정말이지 앵무새 같았다. "자~ 이건 뭘까?" 하면 "머까"라고 따라 하고, 물어보는 것에 대한 대답의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 행동에 대한 검색의 끝은 항상 '자폐 스펙트럼'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또는 자폐범주성장애(ASD)란 자폐증에서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 증후군 등의 증상이다. 지적장애가 수반되지 않는 자폐성 장애이다. 전반적 발달 장애를 구성한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 뜻이 알려주듯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은 자폐의 '범위'다. 정해진 기준에서 어느 수준이 되면 자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맘카페나 검색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의 기준이라고 되는 것들을 보면 대부분 내 아들의 이야기만 같았다. 아들은 정말 자폐성향이 있는 것일까. 고민 끝에 아동발달센터에 27개월이 다가올 때쯤, 상담예약을 했다. 이번에 가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으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모든 고민이 끝날 것만 같았다.


괜찮다고 조기에 발견하면 바꿀 수 있다는 카페 글을 보며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다독였다. 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보며 아들이 앞으로 받아야 될 치료가 무언인지 미리 습득을 했다. 아직 아무런 결과도 없는데, 마치 어떤 진단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아이의 성장에 관심 기울이지 않았나 자책하다가도 자폐가 뭐 어때서, 사랑스러운 내 아들일 뿐이라며 응원하고를 반복했다. 약간은 미친 사람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변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어릴 때였는데 당시에는 무엇이 나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이제 26개월밖에 안됐는데 점점 '발달에 문제가 있다'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알아봤던 것이다.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설령 그 어떤 문제로 인지되는 상황이 됐다고 해도 문제로 인식하는 건 남일 뿐, 엄마인 내가 가질 마음은 아니었다.



짜릿한 한 마디, 아빠!

그러던 어느 날, 발달검사가 있기 1주일 전쯤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달려가 사랑스럽게 쳐다보더니 '아빠' 하는 것이었다. 온몸에 털이 서고 기분이 반짝했다! 아빠라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남편도 탱탱볼 튕기듯 온 몸을 통통 튀기며 동공을 확장시킨 뒤 아들에게 차분히 다시 물었다.


"아들, 이 사람(남편) 누구야?"
"아~빠"
"아악! 어떡해. 그럼 나는 누구야?"
"..."


아, 아쉽다. 엄마는 아직인가 보다. 그리고 다시 남편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빠'란다. 그래, 아직 엄마라는 단어를 잘 모를 뿐이다. 아빠를 인지하고 대답을 했다. 발달 검사 예약이 1주일 남았는데 기적처럼 아들이 아빠를 불렀다. 감격스러웠다. 그 날의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할 만큼 생생하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연애를 시작했을 때보다 결혼을 승낙받았을 때보다 더 짜릿했다. (아마도, 그때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럴 거야)


아들은 아빠를 부르고 난 뒤 물, 맘마, 까까 정도의 어휘 단위의 말을 단기간 내 내뱉기 시작했다. 2-3개월 정도 후에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짧은 단어들을 붙여 말하게 됐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엄마'를 불러줬다. 처음에는 '어멈'이라고 하길래 나를 부르는 줄 몰랐는데 좀 지나면서 엄마라는 단어가 완성됐다. 그렇게 29개월, 처음으로 아들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여전히 아들의 많은 행동은 다른 아이들보다 느린 부분이 많다. 기저귀를 떼는 시기라던가 말을 알아듣는 시기라던가 조금씩은 늦었다. 키도 평균보다 작고 몸무게도 그렇다. 그래도 이제 마음을 조금 편히 먹기로 했다.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리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들과 나에게 생겼다. 아들과 엄마는 그렇게 더 끈끈해졌다.



말 못 하던 그 아이는 지금,

아이의 속도를 믿고 지켜봐 주세요. ⓒPixabay


아들은 이제 43개월이 됐다. 12월 생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직 아기 같은 느낌의 5살 형아다. 지금의 아들은 걱정이나 우려와 달리 말이 청산유수다. 저녁에 아파트 광장에 켜진 알록달록한 분수를 보며 '와~ 근사한데?'라는 표현을 쓰고 나와 함께 그 모습을 즐길 줄 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너무나 잘한다. 가령 모든 부모가 한 번씩은 해본다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에 아들은 "음.. 엄마도 아빠도 좋아"라고 대답을 한다. 현명하다 짜식.


그렇게 엄마, 아빠를 기다렸던 우리는 이제 제발 그만 좀 불렀으면 좋겠다고 할 지경이다. 엄마 일루와 봐~ 엄마 이거 뭐야? 엄마 물, 엄마 쉬 마려요 등 무조건 엄마든 아빠든 호칭을 붙여야 문장이 완성되는 것만 같다. 가끔은 이유 없이 엄마만 연속으로 열 번씩 부르기도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가져와서 엄마, 엄마 이거 엄마 이거는 엄마 엄마..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다. 그래도 그때로 돌이켜보면 흐뭇해진다. 그 엄마라는 단어 하나를 위해 맘 졸이던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컸구나 생각하면 뿌듯하다.


말도 느렸는데 언어 습득도 느리겠지 싶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도 남편도 그리 언어 학습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오죽하면 하기 싫어서 도 썼겠나!) 아들은 영어에 흥미를 가졌다. 지금은 알파벳도 곧 잘 읽고 영어 노래도 따라 한다. 객관적으로 천재다 싶은 건 아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26개월에 엄마, 아빠도 못했던 이 아이는 크면서 언어문제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언어뿐 아니라 신체발달, 생활습관 등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빠르거나 느리거나 엎치락뒤치락한다. 아직도 밥을 먹여주긴 하지만 언젠가 흥미를 다시 갖게 되면 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안아달라 업어달라를 시전 하지만 내 허리가 온전하면 그 부탁을 들어준다. 대신 따끔하게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을 때릴 때 안 된다고 하면 행동을 멈춘다. 인지 발달에도 아무런 이상은 없다. 그냥, 반항기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저 자신이 원하는 속도대로 열심히 크고 있다.



부모님 마음이 중요해요.

아이의 발달이 늦으면 나처럼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검색도 해보고 주변인들의 말도 들어보지만 명쾌하지 않아 상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나쁜 것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부모는 걱정을 배로 할 수밖에 없다. 너무 다양한 사례들이 한두 번의 검색으로 줄줄이 나오고,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내 아이와 비슷한 상황이 보이면 그 상황에 몰두하고 집착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부모니까.


다만 걱정이 아이에게 강요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아들이 말을 계속 못 한다고 엄마, 아빠를 입모양을 크게 하며 가르치곤 했었다. 알려주지 말라는 게 아니다.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고 아빠를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반응한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한다. 전혀 듣지 못하는 것 같거나 엄마가 앞에 있어도 못 보거나(무시하는 거 말고!) 전혀 놀라지도 않거나 하는 인지적 신체 발달의 문제가 아니면 언어가 조금 느리다고 해도 강요하지 말고 천천히 알려줘도 괜찮다는 것.


그럼에도 너무 걱정이 된다면 조바심 내지 말고 발달 센터를 이용해 보는 것을 권한다. 검색을 조금 해보면 발달 센터에서 치료 중인 26~34개월 아이들이 참 많다. 그 모든 아이들이 문제가 있어서 받는 걸까? 아니다. 발달센터는 아이의 성장을 잘 지켜봐 주고 더 좋은 방향으로 지도해줄 수 있는 현시대의 좋은 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치료라는 방법을 통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면 그것이 맞다. 단,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센터도 많으니 가능하면 검증이 된 곳으로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이가 말을 못 해서 걱정인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는 속 좋은 소리를 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 그 걱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만, 나처럼 내 탓 같다고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어디, 부모 니들 맛 좀 봐라' 하고 말을 느리게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아이는 충분한 사랑 속에서 잘 크고 있고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할 것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오히려 귀에 피나기 전에, 지금의 그 귀여운 옹알거림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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