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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n 09. 2022

리더를 찾아서

잃어버린 동기여!

이직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일에 익숙해지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었고, 다음은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렇게 내 손에 잡히는 나의 일이 생겼고 마음을 조금은 터놓고 이야기를 할 동료도 생겼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분명 내 곁에 일도, 사람도 생겼는데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든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려다가도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건네려던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 결국 삼켜버리고 만다. 그렇게 약간은 소심한 사람처럼 비치곤 한다.


지난 7년 간 지내왔던 삶과 너무도 다른 삶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렇다고, 이제 곧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지내다가도 그토록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곤 한다. 내가 필요한 곳에서 빛을 내며 일을 하고 싶다가도 다시 번복되는 갈증을 돌이키고 싶지 않아서 끝내 웃어넘겨버린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이 삶이 적응이 아직 안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쉬어도 항상 머릿속에는 일 생각만 가득했던 지난 삶과 달리, 월요일이 되면 일하기 싫고 주말 되면 월요일이 싫고 쉬는 날이 생기면 환호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직업인이 되겠노라, 그냥 그저 그렇게 노예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거늘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편은 내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토록 일이 즐겁고 재밌었던 과거가 그립기도 하다. 물론, 지금처럼 여유를 가지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주 5일, 지금처럼 근무하는 시간 동안 매일이 갑갑하고 퇴근하고 싶고 겨우겨우 일을 해야 하는 미래를 내다보면 앞으로 직장생활을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퇴사가 꿈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때문에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동기(motive)가 생겨야 한다. 대체 왜 안 생길까. 뭐가 문제일까? 시키지 않아도 일을 벌여서 오히려 고민스러웠던 지난날과 너무도 상반된 일상, 도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바꿔놨을까?


한참의 고민 끝에 떠오른 것, 그랬다.

그것은 '리더의 부재'다.



리더 없이 일한 지난 시간

나는 지난 회사에서 꽤 괜찮은 리더와 일을 했다. 그는 충분히 총명했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고, 나에게 항상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밑그림을 그려주곤 했다. 상상력이 워낙 풍부해서 때로는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에 한숨이 나고 꽤 자주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했었지만, 가끔 초딩인가 싶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도 조금씩 실현해나가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는 목표가 명확한 사람이었고 그의 디렉션은 늘 합리성이 존재했기에 나는 그를 따라 즐겁게 일을 했었다. 가끔 정말 하기 싫은 일이어도 해야 되는 거면 힘을 내서 해냈다. 특히나 외부에 강연을 하거나 회사대 회사로 마주하는 업무는 내 리더 얼굴에 먹칠하기 싫어서 그 어떤 일보다 집중해서 해냈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가 함께 어렵사리 이뤄낸 것들에 대해 함께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충분한 격려를 주었다. 늘 자신의 곁에 내가 있을 거라 믿으며 항상 함께 일하자고, 회사의 미래를 같이 그리자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 그토록 멋진 리더를 뒤로하고 내 갈길 떠날 때는 나도 대단한 각오가 있었겠지.


물론 그랬다. 내 손에 잡히는 나의 일을 갖고 싶었던 것, 해야 될 것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갈망, 리더의 믿음으로 '팀장'을 맡으며 책임져야 할 많은 식구들에 대한 부담감 등 떠나야 할 내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은 맞다. 떠날 땐 그 이유들만 생각했지 그런 리더의 부재가 내게서 동기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놓쳤다.


누군가 자신은 '리더를 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게 주어진 할 일을 해내면 되지, 리더가 뭐가 중요해? 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사실 과거 회사에서는 나 또한 누군가의 리더였기 때문에 나의 팀원들이 내가 없어도 자생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에만 집중해왔다. 집중해야 될 대상이 팀원이었기에 나의 상위 리더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리더는 으레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문에 나는 나에게 '리더'가 없다는 것이 나의 회사생활에 이토록 큰 영향일 끼치는 대목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직 후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내 동기부여는 나의 리더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그랬다. 남들은 리더 없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도록 만들려고 그토록 애써놓고, 정작 나는 못 그랬다. 난 여전히,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가 없다면, 내가 리더 아니냐고?

아니다. 사실은 내게도 상위 리더가 있다. 내가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것뿐.


정말 여러 번 리더로 인정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검증의 시간을 거쳤다. 일반 기업에서 3개월은 매우 짧은 시간이겠지만 스타트업의 3개월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애자일 방식을 추구하는 회사에서는 더욱이 많은 일들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수 번의 협의 과정에서 리더와 나는 많이 부딪혔고 그와 나의 가치관의 차이나 성향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주로 리더와의 충돌은 더 큰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장해서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곤 했었다. 때문에 난 지난 회사에서 리더와 충돌에 대해 두렵거나 불만을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리더와의 충돌은 그런 건강한 의견 충돌이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도 방향도 없이 ' 그냥 이게 하기 싫고 책임지기 싫어' 가까운 발언들이었다. 어떻게든 리더를 설득하고 맞춰보려 노력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지내봐야지 여러  마음을 비우며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해왔다. 가까워지려 노력할수록 상대는 그저 함께 일하는 불만 많은 그냥 같은팀 일원 , 리더의 모습은 찾아볼  없었다.


점점 그를 겪어갈수록 차라리 리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일하는데 수월했고, 실제로 속도도 훨씬 좋았다. 그의 의견을 묻기보다 일단 부딪히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쳐가는 게 빨랐고, 바라보는 미래를 함께 그리고자 논의를 요청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와 함께 미래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하면 대답은 항상 '글쎄요'였다. 힘이 빠진다.


그런 리더와 함께 일하다 보니 점점 동기부여는 되지 않았고, 믿는 동료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이 안 통하는 것 같다는 안 좋은 발언을 하거나 그와 식사 시간을 피하거나 하는 행동 등 나의 회사생활이 점점 힘들고 고된 것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그와 '안 맞는다'를 결국 인정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회사 내에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만 했다.



새로운 리더는 어때야 할까?

가장 먼저 시야가 넓고 협업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면 좋겠다.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팀이 동시 다발적으로 움직이며 메이킹하는 스타트업은 모든 팀이 서로 상호 의존성이 가득하다. 특히나 이커머스를 만들어가는 회사는 회원, 상품, 주문, 물류까지 서로 엮여있지 않은 체인이 없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완전하게 독립성을 가진 하나의 도메인에서만 일을 자유롭게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일하지 않으면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리더의 성향으로 친분이 곧 우선순위고 성과로 비추기 좋은 일(소위 돈 잘 버는 일)들이 항상 높은 우선순위를 판단하게 되면 일을 하는 내내 도살장에 끌려가듯 억지로 해야 한다. 새로운 리더는 친분이나 신사업이 아닌 일의 우선순위가 방향성을 가지고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두 번째로 당근과 채찍을 잘 다루는 사람이면 좋겠다. 당근만 줘도 안되고 채찍만 줘도 안된다. 균형감 있게 이끌어야 하고 동기부여와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믿고 권한을 위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가 성장을 독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리더가 필요하다.


정말 소위 개처럼 일한 것은 팀원들인데 간혹 모든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성과에 미친 리더들이 있다. 이런 미친(..) 리더는 책임은 모두 팀원 탓, 잘 풀리면 그 성과는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새로운 리더는 부디 팀원들에게 충분한 격려와 응원을 해주되, 필요할 때는 날카롭게 피드백을 주어 성장을 도모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끝으로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최근 큰 장애가 있었는데 까고 까다 보니 결국 초기 설계가 잘못되어 예상하지 못한 사이드 이펙트가 났던 장애였다.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초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이슈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다만, 이런 장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보여야 하는 태도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도 사람인데, 당연히 초기 설계에 대한 판단 미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 외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잘못을 무마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견딜 수가 없다. 잘못에 대해 인정하되, 앞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도록 이끌어주는 리더와 함께 일하고 싶다.



다시, 리더를 찾아서

아직 희망은 있다. 다행히도 회사에는 현재 나의 상사 외에도 많은 리더가 있고, 아직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팀의 이동이나 업무의 변경에 꽤 자유로운 편이다. 상대적으로 판단하지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더 이상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 즐겁게, 신나게 일하며 찐으로 보람을 느끼고 싶다.


지금의 내 모습


나와 같이 리더의 부재(실제로는 있지만 엉망인)로 고민하는 워커홀릭이 있다면, 새로운 리더를 찾아 떠나는 것을 시도해보자. 새로운 리더를 맞이하는 것은 성공적일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면 뭐, 별 수 없지. 어차피 치매 걸리기 전까지 다닐 회사, 나를 꼭 필요로 하는 리더에게 다시 가서 빛을 내며 쓰이거나 아님 맘 속에 항상 퇴사를 꿈꾸며 살아가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하게 될 것 일 뿐, 별거 있나? 시도해보는 거다.


밥값 채우기까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고리타분하게 세월이 흐르게 두지 말자. 움직이자.


나의 다음 글에서는 부디 리더를 찾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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