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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02. 2022

이직 후 3개월, 회고

이직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감정들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은 참 의미가 있다. 제도상 마련된 '수습사원'이 종료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수습사원에서 이제 정규직원이 되었고 밥값은 해야 되는 시기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 이제 밥 값을 해야 한다.


지난 3개월, 매일매일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어느 날은 정말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다가도 어느 날은 치사하게 딱 받는 만큼만 하려고 하기도 했다. 나대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 부분에는 날카롭게 굴며 나대기도 했다. 3개월은 회사가 나를 평가한 시간이겠지만 나 역시 회사를 평가한 시기이기도 했다. 평가 결과가 기대 이하면 당연하게 떠날 의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직한 이 회사에 계속 남기로 결정을 했다. 이유는 우선 하고 있는 일 중에 마음에 드는 일이 있고, 잘 해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리더를 위해 일하는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나를 위해 일하는 기분을 갖게 됐고 내 손에 쥐어지는 나의 것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좋은 동료도 얻었다. 물론, 나의 리더는 아직 확실하게 리더로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비전을 그리고 싶은 다른 동료들이 생겼다. 누구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른 직원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새롭게 들어온 직원이기도 하다. 이런 걸로 보면 역시 '좋은 동료'는 입사 시기와는 무관한 것 같다. 얼마나 손발이 잘 맞는가에 달린 것이지.


사실 가장 걱정이 됐던 부분이 '동료'였다. 이전 회사가 너무 말도 안 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최고의 동료들이었고 여전히 그 안에서 즐겁고 치열하게 일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직 후 동료에 대한 애정이 안 생기면 어쩌지, 이전 동료들이 너무 그리우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이제 제법 괜찮은 것 같다. 과거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고 그리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다행히도 여기서도 새롭게 서로를 이끌어주는 동료들과 합을 잘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물론, 여전히 그런 생각이 안 드는 동료들도 있다. 이 회사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최근 급격히 규모가 커졌는데 그러면서 스타트업 초기 시절부터 남아있던 '히스토리가 빽빽한' 동료들의 괜한 텃새나 비효율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동료들이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할 때는 '네가 감히?'라는 생각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위계 조직에서의 습관 같은 것 때문에 늘 '컨펌'받아가며 일하려던 나의 나쁜 습관이 스스로 그런 사람의 모습을 만든 것 같다.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판단하고 하는 일들이, 내가 결정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됐는데 이런 모습들이 '욕심 없고 주도적이지 못한'사람처럼 비쳤을 것 같다.


리더와 1:1이 유독 많은 회사인데(아마도 해외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도구들을 시도해보는 것 같다) 이런 미팅에서 늘 오는 피드백은 '좀 더 주도적으로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일을 그딴 식으로 주면서 뭘 주도적으로 하라는 건지 불만스러웠는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의 위계 조직 습관으로 발생한 것 같았다. 때문에 이제, 조금 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나를 '주도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동료들은 여전히 합을 맞춰가며 일하는 게 힘들다. 그러나 이제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결과로 보여주면 될 일, 크게 에너지 쓰며 일하지 않기로 했다.(물론 그래도 계속 쓰긴 할 것 같다.)


또 하나 회고에 잠기며 든 생각이, 찬란했던 과거가 오히려 나를 더 성장하지 못하게 발목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돌아보니 아닌척하면서 은근하게 '나 과거에 대접받던 사람이야!'라는 내면을 갖고 있었다. 그걸 스스로 발견했을 때 참 부끄러웠다. 찬란했던 과거야 어찌 됐든,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이고 다시 나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야 한다.


어찌 보면 내가 힘들게 느끼는 동료들도 이런 부끄러운 내면이 만들어낸 나쁜 마음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계속 흘려보내며, 지금 해야 될 일을 하며 묵묵하게 일을 해보려고 한다. 3개월의 시간 동안, 들쭉날쭉했던 감정선을 다시 다잡고 여유를 갖고 일을 해보려고 한다.


계속해서 겸손함을 가져야만 한다. 나는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딪히는 동료는 늘 생기기 마련이고 좋든 싫든 이런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좋은 면을 많이 보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좋은 면들이 많은 동료들인데, 나의 부끄러운 과거 부심이 나쁘게 마음먹게 했던 것 같아서 반성중이다.


이직 3개월 차의 회고를 쓰고 싶었는데 반성문이 되어버렸지만.. 입사 3개월 차, 수습이 해제되고 정직원이 되면서 초기 적응을 완료했다. 찬란한 과거는 내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돕는 데 사용하도록 하고, 당분간 잊고 지내기로 한다. 그리고 나쁜 면이 계속 보이던 동료의 좋은 면들만 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마음들이 또 새록새록 해질 것이다. 회사라는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는 게 아니라면(아닐 거야..) 눈치껏 상황을 파악해가며 아 이래서 그때 저 동료가 내게 이런 말을 했구나, 하며 이해하고 지내보자. 그렇게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소위 '짬바'가 좀 생기면 나도 언젠가 밥 값 하는 동료가 되어 있겠지.


얼마나 큰 결심으로 이뤄낸 이직인데. 잘해보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잘 흘려보내 보자. 그리고, 기한을 정하자. 다른 부수적인 감정은 잊고 딱 1년. 



올 해까지 밥 값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 것이 지난 3개월 회고의 결론이다.


+ 오래간만에 글 쓰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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