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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림 Oct 03. 2020

방구석에서 미국 현지처럼 영어 공부하기

욕심 대신 호기심을 장착하면 영어가 재밌어진다. 

작년 말,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미드 쉐도잉만으로 원어민 같은 경지에 오른 분의 체험기 유튜브를 보고 나서였는데,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글은 쉐도잉에 대한 글은 아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영어공부를 하고도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뻥긋 못하는 나 자신에게 '이번 생에 영어는 이미 글렀어. 어차피 배워봤자 쓸데도 없잖아' 라며 심심한 위로를 해왔건만, 그 영상을 보자 갑자기 '이번 생에도 어쩌면 가능하겠는데?' 하는 마음이 생겼다. 처음으로 영어를 공부의 관점이 아닌 의사소통의 관점으로 접근해서 습득하듯이 익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유학을 가지 않고도 영어 회화가 가능한 거였다니! 


그 후 매일 2시간 이상 미드 프렌즈를 보며 대본을 공부하고 대사를 똑같이 따라 하기 위해 수십 번씩 같은 장면을 반복하면서 쉐도잉을 했다. 쉐도잉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일주일도 안돼서 영어로 꿈을 꾸었으며 입에서 영어가 나올랑 말랑 맴도는 현상이 생겼다. 이대로 쭉 하면 정말 영어로 입이 터질 것 같은 환상이 생기려 할 무렵, 동시에 지치는 순간이 왔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건 알겠는데 정말 1년, 2년 지속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방법도 꾸준히 하지 못하면 결국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닐까? 쉐도잉은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힘든 방법이기도 했다. 운동선수가 힘든 훈련을 참아내듯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과정이었다. 그저 취미 정도로 영어를 좀 잘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나에게 일주일 내내 미드 한편을 가지고 같은 장면을 수십 번 돌려보며 끙끙대는 과정은 분명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영어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부분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못 알아듣는 영어 소리에 대해 일종의 공포심이 있었던 내가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게 됐다. 비로소 영어 인풋이라는 게 뭔지 깨닫고 내가 꾸준히 재밌게 할 수 있는, 영어공부가 아닌 '영어 놀기' 방법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동안 수많은 영어공부 유튜브와 블로그들을 보면서 그들 각자가 말하는 영어공부 방법을 경험해보고 이론을 통해 비교 분석해본 결과 그들이 말한 방법들 모두 일부분 맞긴 하지만, 영어공부에는 효율적인 순서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지속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듣기 -> 읽기 -> 쓰기 -> 말하기

내가 그동안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왔나 돌아봤더니 이런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하다 보면 모든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듣기가 되면 읽기에 속도가 붙고, 듣기와 읽기가 익숙해지면 쓰기가 쉬워진다. 듣고 읽고 쓰는 게 가능한 사람은 결국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읽기부터 배웠고, 듣고 쓰는 게 안 되는 상태에서 말하기부터 배우려 한다. 문장을 외우고 연습해서 말을 한들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1. Listening 

나는 쉐도잉 경험 이후 듣기에 모든 힘을 쏟았다. 무려 8~9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미드를 보기만 했다. 그것도 무자막으로. 처음엔 대사를 하나하나 못 알아듣는 게 답답하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졌고, 몰입감 있는 미드를 볼 때는 내가 영어로 듣는지 한글로 듣는지 까먹을 정도로 내용에 빠져드는 경험도 했다. 

2. reading

그 후 영어 원서를 읽을 일이 있었는데 예전과 다르게 영어가 술술 읽혔고, 읽는 순서대로 바로바로 의미가 와 닿는 경험을 했다. 간단한 영어문장도 읽는 걸 싫어했던 나는 그 후 영어 스릴러 소설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3. writing 

그렇게 듣기와 읽기를 함께 하자 어느 날인가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영어문장으로 표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단어와 문장 구조부터도 생각이 안 나 머릿속이 백지장 같았는데 이제는 문법적으로 정확하지 않을지언정 바로바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간단한 영어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4. speaking

리스닝, 리딩, 라이팅이 쌓여갈수록 입에서 바로바로 나오는 말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자유자재로 말이 나오기엔 인풋이 부족한 시기이고 발음도 구리다. 하고 싶은 말을 혼자 영어로 중얼거려보고 문법이 맞는지 번역 앱으로 문장을 검색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스피킹은 언젠가 될 것이다. 내 실력이 나아지는 걸 보면서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 공부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어공부에 도전 후 9개월 만에 스스로 놀랄 만큼 영어가 늘었다. 객관적으로 잘한다고 하기엔 부족한 수준이지만 이전의 나와 비교한다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사실 공부라고 칭할 만한 행위는 거의 하지도 않은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할 땐 무조건 무자막으로 미드를 봤고, 심심할 땐 핸드폰으로 해외기사를 봤다. 재미없는 정치, 경제 뉴스가 아닌 내가 봤던 미드 관련기사나 출연한 배우들의 가십 기사, Apple 신제품, 고양이, 식물, 새로 나온 책에 관한 이야기 등 관심 가는 주제만 골라서 봤다. 자기 전에는 누워서 킨들로 영어 스릴러 소설을 읽었는데 글자만 다를 뿐 머릿속 상상 장면은 한글책을 읽을 때와 똑같았다. 사용하는 Todo앱의 task를 어느 순간 모두 영어로 쓰기 시작했으며, 특별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날엔 개인 블로그에 짧은 영어일기를 남겼다. 스스로 내켜서 한 일이고 영어공부 때문에 억지로 한적은 거의 없다. 힘들었던 집콕 시기, 현실은 방구석이었지만 내 생활환경은 거의 미국 현지와 같았다. 미국 현지에서도 어차피 방구석에만 있어야 했을 테니까ㅋ    




곳곳에서 영어공부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만큼 눈길을 확 끄는 한 가지 특별한 방법을 내놓으며 이것만 하면 무조건 영어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수만큼 방법도 다양한데, 중요한 건 지금 내 수준에서 '해당 방법이 어떤 프로세스에 도움을 주는가', '내가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인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 아닐까? 


영어에는 어차피 끝이 없다. 영어를 마스터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국어사전에 있는 모든 표현을 알고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영어는 잘하고 싶다면 어차피 친구처럼 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존재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좀 더 재밌는 게 낫지 않을까? 또한 지금의 내 수준과 최종 목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영어공부를 지속하는 게 필요하다. 세상에 한 가지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꾸준함'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꾸준하기 위해 오로지 재미만 추구했다. 욕심 대신 호기심을 장착했더니 영어가 재밌어졌다. 자, 일단 팝콘을 준비하고 재밌게 영어로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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