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ure 시리즈 두 번째, 웹툰 [와이키키 뱀파이어]
브런치에는 아직 없는, 예전에 타 플랫폼에서 작성했던 글들을 다시 보니 평소 자랑거리도 아닌 걸로 서문으로 작성하는 버릇이 있더라고요. 좀 그만둬야 될 텐데 쉽지가 않네요. 아직도 자신감이 부족하고 잘한 게 없는 것 같아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시작해볼게요.
대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시 모든 새내기가 진행했던 인성 검사에서 우울증 점수가 높게 나와 상담센터를 방문하라는 내용이었어요. 평균이 40? 60? 점인가 그랬는데 제가 90점대 나왔던 것 같습니다. 평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긴 하지만, 앞날에 대한 고민·걱정의 한 부류라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점수가 파격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안 좋았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쩌면 검사 당시에 좀 우울했던 일이 있었던걸 지도 모르고요.
그게 벌써 7-8년 전 일이라 상담사 분과 명확히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잊어버렸는데, 옛날이야기를 꺼내면서 좀 울먹거리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은 상태다- 하고 상담실을 나섰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좀 털어놨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어차피 가까운 주변인도 아니고 상담해주시는 선생님인데 그땐 왜 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약점이라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라 판단이 흐렸었나 봐요.
Eature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혹시 지금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요니요니 작가의 <와이키키 뱀파이어> 웹툰을 살짝 추천해봅니다.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야식 배달원 뱀파이어 김군. 어느 날 그는 잘못된 주소로 배달을 갔다가 그곳에서 뱀파이어로 추정되는 한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김군, 본명 '김샛별'군은 뱀파이어입니다. 무슨 뜬금없이 뱀파이어냐고 하냐면, 진짜예요. 뾰족한 송곳니, 낮에는 햇빛에 닿으면 안 되는 피부, 십자가를 보면 기절, 주기적으로 피를 섭취해야 하는 뱀파이어입니다. 그래서 일도 야간 아르바이트만 찾아서 하고요. 미성년자이지만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만 했던 샛별은 야식 배달원으로 간신히 (임시) 취업하게 됩니다.
하루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샛별은 진상 손님 때문에 궂은 날씨임에도 배달을 가게 되는데 주문자가 주소를 잘 못 적어 옆집에 사는 여자와 마주칩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 입에 묻은 피.. 예사롭지 않은 첫 만남에 샛별은 여자가 명실상부 뱀파이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짜로 뱀파이어는 아니었고요. 사실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최행복'양입니다. 행복이는 너무나도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계속 임용 시험에서 떨어졌고, 그나마 겨우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서 공황장애·대인기피·우울증을 삼박자로 앓게 돼요.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고요.
그런데 이 동네에 아주 끔찍하고, 흉포하고, 잔인한 연쇄살묘사건이 일어납니다. 두 사람이 이 사건을 같이 해결하게 되면서 행복이는 샛별의 과외 선생님이 되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샛별은 행복이를 뱀파이어로 알고 있지만 어떻게 밝혀질 것인가..(두둥)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믿을 수 있는 주변인들과 함께 극복해내는 이야기입니다.
<와이키키 뱀파이어> 작품은 (위 스토리에서 살짝만 언급한) 우울증의 묘사와 표현이 대단한 작품이에요. 조금 실례되는 말이지만 작가가 우울증을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요. 다행히 후기에서 이토록 심하게 겪진 않았다고 하네요. 웹툰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히고, 주인공들에게 이입되어 그 감정이 느껴져서 눈물 쏟아낸 게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쉽게 걸리지만, 나을 수도 있는 병이니까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면 조금이라도 그 증세가 호전된다고 해요. 또 햇볕 쬐기, 운동하기, 좋은 생각 하기 등도 극복 방법에 도움이 되고요. 사실, 이미 수많은 미디어와 매체 등에서 관련 지식들이 쏟아져 나와 대부분 어느 정도 다 알고는 있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작가는 웹툰 1부 후기에서 우울증은 감기가 아닌 마음의 암이라고 표현했어요. 왜, 대부분 감기라고 하면 어차피 금방 나을 거라 생각해 약국 가서 종합 감기약 하나 먹고 집에서 며칠 쉬면 낫는다고 생각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만약 이 병이 암이라고 한다면 그냥 둘 수 있을까요?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든 입원을 하든 해야죠. 우울증도 똑같아요. 감기보다는 좀 많이 지독하고 아픈 병이에요. 빨리 병원에 가는 게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을 겪은/겪는 사람들, 정신과 선생님들 모두 그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작중 행복이처럼, 도저히 그 첫발을 내디딜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는 거죠.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다 알면서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울증이 참 어려운 병이에요. 아직도 우울증을 멘탈이 약해서 그렇다고, 정신상태가 빠져서 걸리는 거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멀어지시는 걸 추천드릴게요. 그렇게 쉽게 얘기할 단어가 아니에요.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우울증의 큰 원인으로 만약 가족이 있다면, 놓으세요. 돈 잘 버는 회사 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행복이의 동생 슬기가 아주 악질이에요. (슬기 팬 분들 죄송..) 못난 누나 돌봐주고 뒷바라지 열심히 해주는 착한 동생처럼 보이지만 사실 코스프레일 뿐, 지 누나가 어떤 상태인지 사실은 관심도 없어요. 오히려 정신상태가 그 모양이니까 계속 시험도 떨어지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내가 너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니 맘대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요. '착한' 동생 모습에 심취한, 그저 전형적인 어린애입니다. 몸만 큰 거죠.
동생인지 원수인지 남 자존감 깎아먹고 금전으로 나를 협박하는 가족이 있다면, 피붙이라고 연연하지 말고 거리를 두시길 권해요. 육체가 힘든 것보다 멘탈이 힘든 게 더 안 좋아요. 그 사람들이 제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들이 보기에 다소 유치할 수도 있지만, 이 웹툰에는 권선징악이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착하게 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요즘 사회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남 등 처먹으면서 나쁘게 살 순 없잖아요? 선한 행동을 하면, 언젠간 작게라도 보답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와키뱀 웹툰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러하고요.
샛별이의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간다는 말만 남기고 어린 아들을 버리고 가요. 아직 누군가 지탱해주고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한 미성년자인데요. 조금의 돈을 쥐어주고,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끼니를 때우라 하고, 아빠 찾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납니다. 멀어지는 뒷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처연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워 보이지만, 버린 건 버린 거죠. 차라리 원치 않은 임신 등으로 인해 아이였다면 차라리 이해가 돼요. 근데 그건 또 아닌 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소중한 자식이고 그렇게 아껴주고 예뻐했어요. 그런데도 떠나선 연락 한 번 주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센터로 옮기게 된 샛별이는 괴롭힘을 받습니다. 엄마한테 버려진 것도 서러운데, 받은 돈도 몽땅 다 날려버리고, 뱀파이어에게 필요한 피를 먹다 들켜서 괴물이라고 멸시받고.. 그 후로 샛별이 엄마의 이야기는 후기에서조차 나오지 않고, 샛별이를 괴롭힌 사람들은 나중에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해 모두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행복이나 성윤(샛별의 친한 형), 할머니, 치킨집 사장님 부부와 같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죠.
착한 사람은 후에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모두 처벌받는다- 다소 전형적이죠? 그래도 저는 이러한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도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게 보기 좋았고,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샛별이나 행복이 누구 한 명 흑화해 저 사람들을 모두 즉결 처형(!)한다면 사이다로 보이기야 하겠지만.. 작가는 그걸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요.
와키뱀의 두 주인공 샛별과 행복이의 과거는 참담하기 그지없어요. 그저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 둘 다 아픔을 겪고 있던 거였죠. 뱀파이어라는 컨셉만 제외한다면 샛별이와 행복이 모두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좀 유치하지만,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하긴 해요..? 처음에 행복이는 샛별이 과외를 해주면서 성윤과 트러블이 자주 일어나요. 그런데 이게 붙어 다니다 보면 미운 정이 든다고, 어느샌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요. 그리고 썸을 타다 결국 연인이 됩니다. 샛별이는 안타깝게도 미성년자라.. 남녀가 있으면 뭐든 어디서든 커플로 엮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둘은 커플이 된 게 참 보기 좋아요. 심지어 행복이가 연상이야! 츤데레* 성윤이 우울증을 이겨내고 점차 웃음을 찾아가는 행복이에게 꽉 잡혀 사는 모습이 또 다른 킬링 포인트니까 다들 보시길 바라요.
* 겉으로는 차가운 척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
이 웹툰은 옛날에 "볼 거 있나?"하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보기 시작한 웹툰이었습니다. 첫 화부터 재밌더라고요. 근데 거의 완결 임박이어서 앉은자리에서 정주행 했어요. 주말이라 다행이었지 뭐예요. 처음엔 뱀파이어와 인간의 기묘한 일상 개그물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내용이 심오해지더라고요. 그림도 예쁜데 스토리와 표현 묘사가 너무 탄탄해서 보는 내내 재밌고, 먹먹했어요.
그리고 혹시 웹툰 출판 관계자분께서 와키뱀 웹툰을 알게 되셨다면 부디 보시고 단행본으로 제작하게끔 도와주십사... 그리고 각 학교 및 도서관에 본 책을 구비해놓도록... 그만큼 이 웹툰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요. 병원을 갈 만큼은 아니었던 저이지만 이 웹툰으로 큰 위로를 받았어요. 다른 분들도 그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