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긍정편
2020년은 국가적으로 암흑의 시기였지만, 나한테는 약간의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도 종종 언급이 되고 있는, 코로나가 터진 바로 그 연도였다.
당시 나는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분명 이 직무에 필요한 일인 건 맞지만,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단순 사무보조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나 전편에 있던 진상과의 통화로 인해 더 이상 운영-특히 CS-을 하고 싶지 않단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뭔가 할 일이 생겨버렸다.
내가 속해있던 운영팀의 인원 중 한 분은 마케팅 쪽을 담당하던 분이셨는데, 브랜딩과 KPI를 위해 나에게 제안을 주셨다.
?
저 만화가 아닌데요;
그분의 목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널리 쓰이는 고전짤방과 같이,
그런 이미지들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짤을 사용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도 "이게 어디서 나온 거지?"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상사들에게 컨펌도 다 받아 놓은 상태셨다(물론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미술이나 디자인과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단순 취미로만 그리는 거라 잘 그리는 편도 아니었는데,
그냥 직원들 중에서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본 사람이 나뿐이었던지라 내가 하게 되었다.
웃긴 건 또 회사에 타블렛도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제 하나를 선정하여 하나의 짤로만 만들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코로나가 터진 시기였어서, 직원들 중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집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했던 주제는 바로 재택근무.
이것이 전설 아닌 레전드 아닌 그냥 컷툰의 시작이었다.
반응은 미미했다.
사실 당연했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그림도 별로고 별로 재밌지는 않았다. (ㅋ)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게시글은 안 올려도 틈날 때마다 SNS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자.
우리끼리 머리 싸매서 노잼 주제 선정하지 말고, 유행에 편승하기로 하였다.
MBTI가 유행하니 MBTI를 활용하고,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 속 임팩트 있는 장면을 활용하여 짤을 만들었다.
성실함이 결과로 나타난 걸까.
꾸준히 업로드를 하면서 (나름)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니 점차 봐주는 사람도 늘고 인기도 나름 높아져 갔다.
사내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한 켠에도 컷툰을 싣기 시작하면서, 관련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면 언급해 주는 사람도 많았었다.
그땐 뿌듯함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하신 분은 건간상의 이유로 당일 그 해인가 아니면 다음 해 초에 퇴사를 하셨지만,
그 뒤로도 나는 혼자서 작업하였고, 2020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업로드를 진행했다.
사실 더 할 수는 있었는데, 이런저런그런 사정들로 인해 중단하게 되었다.
나름 인기가 많아져 컷툰만 모아놓았던 게시판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가 보니 게시판은 사라져 있었다.(ㅠ)
나에게 이 제안을 주신 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업무를 내려주신 덕분에 나름의 콘텐츠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