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모르는 데 어떻게 해결해요

사람들이 대체 왜 그렇게 못 됐을까

by 지은


첫 입사했을 당시에는 팀에 동기도 없고, 연차가 높은 상사들 밖에 없어서 솔직히 회사 다니는 재미는 딱히 없었다가, 다음 해에 비슷한 나이대의 팀원이 한 분 입사하셔서 조금은 회사 다니는 맛이 나기 시작할 참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는 없었다.

자리에 앉아 정리를 하고 데일리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CS도 내 업무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더니,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것이다.


???


뭔가 설명할 타이밍도 주지 않길래 그냥 열심히 화내는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니,

내가 입사하기도 한~~참 전에 있었던 일에 뭔가 문제가 생겨 전화를 건 것이다.


제대로 일을 해 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보니, 진상 처리에 대한 역치가 높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상대방이 언성을 높이게 되면 심박수가 빨라지고 입과 손이 떨리며, 식은땀이 조금씩 나는 것을 아마 다들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연신 죄송하다 사과하면서도 '제가 입사하기 전의 일이라 설명드리기가 어렵다',

'해당 업무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이 아직 출근 전이라 오시면 다시 연락드리겠다' 하고 더듬는 말로 필요한 말을 모두 전했다.



하지만 진상이 괜히 진상이겠는가?

내 입사 일이고 상사 출근 상태고 나발이고, 나에게 오만 성질을 다 부리는 것이다.

욕설만 없었지, 꽤나 인신공격도 했었다.

아묻따 나보고 해결하라고만 하는데, 아니 뭘 알아야 해결을 해주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요????

내가 하기 싫고 귀찮아서 안 해준답니까?

나 모르는 일이라니까???

(당시 회사에서는 슬랙이나 노션과 같이 기록이 남는 툴을 쓰지 않았던 터라,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까 전에 걸려온 전화가 끊기지 않고 계속 쩔쩔매고 있으니,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치로 내 곁으로 오기도 했다.



계속 상대방의 높은 언성을 들으면서도 앵무새마냥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던 와중에 드디어 상사A와 B가 출근을 하셨고,

상사분들이 컴퓨터를 켜시기도 전에 전화를 넘기며 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상사B랑 몇 마디 주고받더니 곧장 전화가 끊어지는 것이다.

나한테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온갖 성질과 짜증은 다 부리더니만, 상사의 답 몇 마디에는 금세 고분 해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만 30분을 넘게 욕을 먹고, 해결 가능한 상사분에게 내용이 전달되고 나서는 3분 만에 종료된 것이다.


나는 그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너무 역했고, 억울했다.



전화가 끊기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볼일을 보러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 이런 걸로 울고 싶지 않았는데 처음 겪는 일이어서 속으로는 많이 힘들었던 건지, 혼자 있게 되니 눈물샘이 터졌다.

화장실 안에는 파우더룸이 있어 문을 닫고 그 안에서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말한, 올해 1월에 입사한 직원 분께서 괜찮냐며 말을 걸어주셨다.

아마 혼자였다면 금방 정신 차리고 나갔을 텐데, 누군가의 걱정해 주는 말에 눈물샘이 더 터져버렸다.


그렇게 위로를 받고 맘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서,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상사분들도 본인들이 조금만 일찍 왔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미 끝난 일인데 누굴 탓하랴.

아니, 탓할 사람이 있긴 하지- 나한테 욕한 그 진상 손.



이 일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종종 떠오를 때면 제발 뒤로 넘어져서 머리와 코가 함께 깨지길 바라곤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일로, 이후 다시는 CS 업무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직무 선호도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고맙다는 맘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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