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도 알려줘요

아직은 어려서, 아는 게 힘이더라.

by 지은

나도 이제 회사일이란 것을 해본 지 6년차가 되어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쌩신입에게 출근을 하자마자 일을 턱 던져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어쨌든 며칠을 더 다니면서 그제서야 일이란 걸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자사 이벤트 운영과 CS를 맡게 되었다.

원래는 상사B가 전부 다 맡아서 하고 계시던 일을 찔끔 덜어 받은 것이다.



이벤트를 열기 위해선 배너 디자인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AI가 발달하지가 않아 "이미지 만들어 줘"해도 나오는 게 없는, 100% 수동 시스템이었다.

당시 디자인과 일러스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던 나는 나름의 특기(ㅋ)를 살려 일러스트를 그리고, 그 일러스트를 활용해 배너를 제작했다.


물론 당연히 빠꾸먹었다.


다행히 일러스트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고, 디자인적인 요소가 부족해서였다.

작업했던 PSD 파일을 가져간 상사B는 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활용해 뚝딱뚝딱 배너를 만드셨고, 그 갭은....

나는 이제 막 일을 시작했으니 못 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때 나는 깔끔하게 이벤트 이미지 배너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무언가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처음 배운 것이다.

이 외에도 어떤 문장을 써야 유저들의 흥미와 사용성을 끌어낼 수 있는지 등 이벤트 진행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나의 상사들은 모두 유능했다.

비전공 개발자, 오랜 B2B/B2C 운영 경험 능력 등등 진짜 다재다능하셨다.

회사에 개발자가 있는데도, 개발자가 아니라 상사A에게 오류난다고 하면 찾아서 해결해주셨다.(;)

솔직하게 말해서, 왜 대기업이 아니라 이런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 하고 계신 건가 싶기도 했다.

그냥 봤을 때도 아는 게 많아 보이셨다.


그런데 사실은, 딱 한 가지가 부족하셨다.

인수인계.

입사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쪼렙임에도 그 정도는 확연하게 느껴졌었다.

두 분은 능력자임과 동시에 조별과제 팀장 같은 스타일이었다.

맡은 일은 열심히 하시고, 잘 처리하셨다.

그런데 아래직원이 잘 모르겠고 어려워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를 가르쳐주기 보다는, 본인들이 처리해버리셨다.

그게 더 확실하고, 명확하고, 아무래도 빠르니까.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질문을 했을 땐 아무래도 알려주는 것에 익숙치 않으셨던지,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어본 게 이해가 되지 않아 또 물어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치 내 스스로가 멍청하단 걸 인증하는 것 같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곳에 와서 배운 것도 있었지만, 배우는 데 꽤 오래 걸린 일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 힘든 게 더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다행히도 상사분들은 모두 좋으신 분들이었고, 복지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그렇게 1년을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회사에서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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