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죽음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더 격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창세기전3 part1 중-
죽음의 수용
내가 죽음을 깊게 생각했던 것은 중학교 시절 때였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니 죽음까지의 삶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학생의 방학처럼, 군인의 휴가처럼, 직장인의 주말처럼.
정해진 시간은 언제나 숨을 조여 온다.
누구나 한 번쯤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죽음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도, 아예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죽음에 직면해 본 사람은 삶의 분명한 목표를 갖곤 한다.
당신은 언제 죽음을 진정 받아들일 것인가.
모든 생명은 태어난 순간 죽음에 다가간다.
죽음은 끝이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한 삶을 위한 시작일뿐이다.
이별의 수용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
나와 아내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지만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마지막까지 함께하여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리라.
나는 오래전 아내에게 내가 죽거든 나를 보내기 위한 시간을 잠깐 갖고 꼭 다른 사람과 만나라고 얘기했다.
내 죽음이 내 삶의 끝이나,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이 끝나지는 않는다.
나에겐 더 이상의 행복이 올 수 없으나, 내 삶의 끝에도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도중에 서로를 미워하거나 믿음이 깨져 헤어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행복을 바라기는커녕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겠지.
결혼하여 살고 있으나 이혼이 없는 것처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제도의 장치 안에 우리가 묶여 있다고 생각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혼을 인정하고 나면 그리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세월의 수용
생명은 태어난 순간 나이 들어간다.
새싹과 아기가 예쁜 건, 사자의 새끼조차 예쁘게 보이는 건 자연의 섭리인가.
남은 시간이 보다 긴 어린 생명을 살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것일지 모른다.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은 아이를 위해 쓰자고 이야기 나누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하는 다짐 이리라.
추락하는 비행기의 낙하산을 누구에게 줄지, 가라앉는 배에서 누구를 먼저 살릴지.
아주 유치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얘기다.
마지막을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 사람은 다음을 준비한다.
그 세월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어진다.
졸업하는 학생이 후배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연수의 후기에도 누군가를 위해 개선점을 제안한다.
삶의 마지막에도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를 남긴다.
마지막, 그 이후..
모든 것은 시작과 함께 끝이 있다.
탄생과 죽음은 함께 하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만난 지 만 12년이 넘어가지만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올 것이다.
나와 아내는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함께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를 떠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며 늙어가고 죽어갈 것이다.
죽음을 진정 받아들이고 나면 이 삶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값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 마지막을 염려하고 준비하며 살아간다.
이별이 오지 않는 것은 계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래야 할 필요성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이별이 찾아올 때, 미래의 가치를 위해 마지막을 바치자.
그래야만 당신의 마지막, 그 이후에도 행복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