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아내가 올해 1년을 휴직했다.
원래는 6개월을 하려던 것을.
아내는 왜 6개월을 하려고 했을까.
처음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옳은 것
왜 아내는 왜 6개월이 옳다고 여겼는가.
내가 했던 말이 중요했단다.
2학기에 복직하면 추석, 설 보너스도 받을 수 있다고.
둘째도 거의 두 돌이 되니까 어린이집도 잘 다닐 거라고.
아내도 어차피 해야 할 복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게 행복이라는 것도 안다.
아이도 별 문제없다면 돈도 중요한 것이다.
1년보다는 6개월이 옳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아내는 싫었다.
싫었다.
그뿐이다.
싫은 것
공부가 싫다고 괴롭지 않다.
안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싫은데도 버리지 못하는 것.
공부가 싫은데도 해야만 하는 것이라 여길 때 괴로워진다.
싫다고 하면, 차라리 싫다고 할 수 있으면 그래도 낫다.
싫은데도 옳은 것 같으면 죽을 맛이다.
마음은 싫어 미치겠는데 머리는 해야 된다고 하니까.
싫어하는 나 자신이 부정될 테니 말이다.
살아야 하는 삶도 있다.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옳다고 말했는가.
중요한 것은 결국 당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
원하는 것
아내가 원한 것이 휴직이었든, 복직이었든 상관없다.
원하지 않은 삶은 원망이 된다.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할 때 우리는 반대를 욕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복직을 했을 수도 있다.
내 월급이 적어서 남편 말고 내가 휴직을 했을 수도 있다.
돈 때문에 강제되었다면 자본주의를 탓한다.
내가 여자이기에 휴직을 해야 했다면 가부장제도를 탓하면 된다.
난 하마터면 자본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파렴치한 남편으로 남을 뻔했다.
난 내 아내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난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했으나 내 아이는 원하는 꿈을 선택하길 바란다.
물론 내가 지금 말하는 '원하는 삶'이라는 건 정말 사치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고, 상사에게 말하는 내 입은 인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싫어도 사는 삶을 옳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싫은데도 옳다고 여겨지는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삶을 다음 세대에 또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