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나는 얼마인가

by 삐딱한 나선생

분명 우리는 같이 걷고 있는데.

왜 당신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을까.

함께 걷고 있는데, 왜 당신을 끌고 다니는 것 같을까.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당신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우리의 크기


나와 너의 만남은 '우리'라는 공간을 만든다.

좋으면 좋을수록 그 교집합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만나고, 밥을 먹고, 생활하는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큰가.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함께 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함께 밥을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허나 계속 맞춰서 먹을 수는 없다.


우리에 내가 없다면 나를 찾고자 나오게 된다.

그러다보면 따로 밥을 먹을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함께 계속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내 반찬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우리


안타깝게도 우린 '여우와 두루미'가 되곤 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요리했는데 맛있게 안 먹네.'

'내가 이렇게 공들여 데이트 준비했는데 감동이 없네.'

내가 원한 밥상을 차리고 우리의 밥상이라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아들 둘에 남편까지 끌고 다닌다는 그런 글을 봤다.

왜 제대로 구경하지 않냐는 한탄에 마음이 아프다.

박물관에 애들을 집어 넣으면 미쳐 날뛰지 않던가.


원하지도 않는 낚시터에 끌려가서.

물고기도 못 잡는다고 욕먹어가며.

당신은 버틸 수 있겠는가.

내가 원치 않은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우리의 내용


그렇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라는 건 아니다.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났는데 어떻게 다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살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 좋은 것, 너 좋은 것 사이의 균형이다.


난 게임을 좋아한다.

아내는 "나도 같이 해볼까?"

한 번의 실언으로 던젼에 7년을 갇혀 살았다.

아내는 즐거움 조금에 괴로움이 훨씬 컸다고 했다.


나도 아내의 던젼에 같이 간다.

그 안에는 옷과 가방, 명품이라는 몬스터들이 있다.

내가 원치 않는 곳은 던젼이다.

그곳에선 작든 크든 데미지를 입는다.


난 게임하고, 넌 백화점 가란 말은 아니다.

각자의 삶이 너무 커지면 따로 사는 삶과 다를바 없다.
함께 산다는 건 우리의 크기를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속


영화도, 카페도 난 싫어했다.

지금은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다.

아내가 95만큼 만족한다면 난 80정도랄까?


우리는 계속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갈 것이다.

대신 내 부족분을 아내도 이해해준다.

이젠 함께 갈 수 없는 던젼이지만, 나 혼자는 보내준다.


서로의 다른 부분을 어떻게 우리로 유지할 것인가.

그건 우리에 나와 너를 얼만큼 녹여내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다 녹지 않은 나의 알갱이도 몇 개는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부모님은 운동을 따로 가신다.

그저 집 근처를 한 시간 걷는 것인데도.

속도도 취향도 달라 걷는 것조차 함께 안 한다.


난 아내와 죽는 날까지 함께 걷고 싶다.

때로 뛰고 싶으면 당신의 앞을 돌고 또 돌겠다.

가능한 많은 부분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너와 내가 달달하게 녹아있는 우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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