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융통 사이

by 삐딱한 나선생

[열심히 '하지 않을' 권리]에서 가능한 학생이 하도록 주라고 했다.

[말로만 하는 교육]에서는 그것이 되도록 지켜보라 했다.

이젠 무엇을 지키라 할지에 대해 고민할 차례이다.



원칙을 깨는 융통


교사마다 지켜야 할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이 있다.

도덕, 철학적인 부분부터 아주 작은 행동, 규칙까지.

문제는 그런 원칙들이 깨지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이 있다.

'애들이 얼마나 뛰고 싶으면 그럴까.'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면 숙제하기 싫은 마음은.

공부보단 노는 게 좋고, 자유롭고 싶다면.

뛰고 싶은 마음으로 뛰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론 관리자의 지시로, 옆반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내 원칙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마음이 약해서, 확신이 없어 헤매는 건 위험하다.

학생들은 그 애매함을 쉽게 파고들 것이고, 원칙은 무너진다.



원칙을 위한 융통


학생들과 '복도에서 뛰어도 되는가'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다.

대부분 안 된다고 했지만 예외상황은 있다고 했다.

싸움이 났거나, 누가 다쳤거나 하는 다급한 일.


예외란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놀이터가 된 복도엔 융통성을 발휘할 기본이 없다.

모두가 신호를 지키고 있을 때, 응급차를 위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화장실을 간 친구가 예외일 수 있는 건 모두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못쓰는 예외가 있는 건 그날을 제외하고 '쓰기 위함'이다.

융통성은 원칙 위에 가능하고, 원칙을 위해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이 '일기 쓰기'같은 사소한 행동 하나에 있는 것은 너무 좁다.

부디 자신이 만든 작은 원칙 안에 갇히는 일은 없길 바란다.

내가 정한 원칙보다 더 큰 원칙이 융통이다.



융통을 위한 원칙


분명히 나는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시키려 하는데.

아무리 달래고 야단을 쳐도 학생은 따라오지 않을 때.

나의 원칙이 지금, 여기의 아이들에게 맞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원칙이 되는 건 그 구성원의 동의가 있을 때다.

일기를 억지로 쓰고 있다면 내 원칙일 뿐 우리의 원칙은 아니다.

'하고 있지만 싫은 것'과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은 강제와 능동에서 다르다.


고학년이 되면 보상이나 관계만으로 움직이긴 어렵다.

왜 이것이 옳은가, 필요한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은 당신의 원칙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원칙을 세워가는 교사는 훌륭하다.

나아가 원칙 안에서 학생들을 포용할 융통성을 발휘하는 교사는 따듯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신의 원칙을 점검하고 새로이 할 수 있는 교사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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