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하는 교육

by 삐딱한 나선생

교육했으나 교육되지 않았을 때, 생각해볼 이야기.


'얘기를 했는데도 또 제대로 안 되어있네..'

뒤집어지고, 새어 나오는 우유통들.

말했어도 지켜지지 않는 많은 것들.



입으로


대부분의 교육은 내 입을 통해 전달된다.

수업의 내용뿐만 아니라, 생활하는 모든 것들.

문제는 내 말이 아이들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다.


안내문, 일기장을 안 내는 아이들이 꼭 있다.

내일까지 가져오라면 며칠이 걸린다.

난 말했으나 되지 않는 결과를 보면 화가 난다.


물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이 바빠서, 내가 아파서.

이유가 있으면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건 내 말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은 시작의 알림일 뿐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입에서 말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눈으로


우유를 똑바로 넣으라고 해놓고 보지 않으면 던져 넣는다.

숙제를 하라 해놓고 검사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내가 말해놓고 지키지 못하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또 만드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확인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수업시간 지났는데 안 들어오고 뭐해!"

내 눈이 결과의 끝에만 머문다면 난 혼낼 준비를 하는 교사가 된다.


"우리 반 애들은 준비가 안돼."

아이들의 부족함을 푸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내가 가르쳐야 할 내용이다.


말 한마디로 되는 아이들은 이미 가르침이 필요 없다.

눈으로 확인만 해선 같은 결과가 반복될 뿐이다.

교육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어야 한다.



손으로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은 바로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익힘책, 방학숙제는 확인하기 어렵다.

말한 시간과 실행되는 시간의 차이 때문이다.


"우유 마시고 바르게 정리하세요."

아침엔 되고, 점심엔 될까, 오후엔 실패다.

내 입과 눈이 멀어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


"자리에 앉으세요."

이것도 1학년, 유치원 학생에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말로 되는 쉬운 것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간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이 너무 큰 부담인 걸 안다.

그러니 당신의 손이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을 가능한 만큼 하는 것, 그것이 100번의 말보다 어려운 1번의 실천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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