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릴 수 있는 관계

by 삐딱한 나선생

난 개그콘서트를 즐겨 본다.

그 안의 많은 방식이 놀리는 것이다.

놀림에 웃을 수 있으면 개그고 아니면 상처다.



예민함


피구 경기를 하다 한 아이의 머리에 맞았다.

그 아이는 던진 아이를 혼내주길 바랬다.

그러나 난 반대로 했다.


"피구 경기는 맞추기 위한 게임이야.

일부러 의도해서 얼굴을 노렸다면 문제가 있겠지.

하지만 맞을 수도 있다는 걸 합의하지 않으면 같이 할 수 없어."


맞추면 난리 치는 친구와 하는 피구경기.

말 한마디 하면 발끈해서 "빼액~~"하는 아이.

함께하기 부담스러운 지나치게 예민한 친구들.


대부분 놀리는 학생을 야단친다.

그러나 가끔은 놀림받은 학생을 조정해줘야 할 필요도 있다.

최소한 공은 주고받을 수 있는 학급을 위해서 말이다.



수용적


개그콘서트는 짜인 것이다.

웃기기 위해 돼지라고 놀려도, 뺨을 맞아도 웃는다.

그렇지만 교실에도 어느 정도 받아주는 스펀지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헛소리 한 번 했다고 정색하는 교사라고 생각해보라.

학생들은 주눅 들어서 말도 못 꺼낸다.

매번 받으면 엉망이 되지만, 가끔 위트 있게 받아주면 아주 밝은 수업 분위기가 된다.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장난이나 공격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도 좋지 않다.


물론 수업시간에 지켜야 할 기본이 있듯, 장난에도 정도가 있다.

부모님의 이혼, 신체적인 결함 등 치명적 상처는 건드리면 안 된다.

또한, 놀릴 수 있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상호적


간혹 평등하지 않은 놀림을 본다.

A는 B의 별명을 부르는데 B는 A에게 못 부르는 경우.

같이 자주 다니고 놀면서도 어딘가 위아래로 느껴지는 관계.


반면에 항상 투닥거리는 친구도 있다.

서로 틈만 나면 약 올리고 놀리는 일상의 반복.

좋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말은 장난도 장난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서로 놀릴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어.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야.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놀리는 건 옳지 않아.


그래도 우리 삶에 나를 놀려도 되는 존재로 인정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아.

너를 놀려도 화내지 않고, 나를 놀려도 기분 나쁘지 않은 그런 친구.

장난이 가능한 관계 속에 우린 좀 더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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