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테이블엔 상추가 있었다.
고기반찬까지 나왔으니 쌈을 싸는 건 누구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상추는 어른은 먹어도 되고 학생은 안 됐다.
금지의 명분
안 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건 급식재료가 아닌 학교 텃밭에서 갖고 온 거란다.
물론 나도 급식에는 HACCP 인증을 받은 재료를 쓴다는 건 안다.
만약 그게 문제라면 다른 재료를 가져온 자체가 잘못 아닌가.
어른은 먹고 탈이 나도 자기 책임이지만 학생들은 문제가 된단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런다.
"전 튼튼해서 괜찮아요. 먹어볼래요."
옆 테이블에선 선생님이 설득 중이다.
"여긴 농약을 많이 쳐서 애들한테 안 좋데."
상추 하나를 올려놓고 구차하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난 마치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나눈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똑같은 인간을 멋대로 나누어 놓은 사회가 어찌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는데, 어떤 이유를 붙인 들 옳게 되겠는가.
책임의 문제
물론 학생들에게 그냥 먹이자는 건 아니다.
특히 위로 갈수록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들이 먹고 아무 일도 없으면 상관없지만 반대를 더 염려한다.
급식을 먹고 배탈 난 학생이 생기면 엄청난 민원 감이다.
그래도 그땐 납품한 업체나 HACCP 인증 기관을 탓할 수라도 있다.
만약 인증되지 않은 텃밭 재료를 썼다 문제가 생기면 그건 순전히 학교 책임이다.
그래서 어떤 학교는 밭에서 기른 채소를 가정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집에서 먹고 배탈이 나면 또 문제다.
이러다가는 텃밭 동의서라도 받아야 할지 모른다.
99번을 잘해도 1번을 잘못하면 뉴스가 된다.
99명의 조용한 학부모보다 1명의 민원인이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방향으로 가는 건 옳지 않다.
함께하는 길
작년에는 고구마를 쪄서 나누어 먹었다.
가을엔 벼를 같이 수확해서 떡도 해 먹었다.
텃밭은 분명 학교 구성원 모두를 위해 쓰이는 게 맞다.
같이 먹지 못할 음식이라면 아무도 안 먹는 게 낫다.
배탈이 걱정이면 차라리 같이 걸리는 게 낫겠다.
같이 먹지 못하는 이유를 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세월호 이후의 교육정책은 학교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현장체험 사전답사는 더 강화되었지만, 정말 안전한 지를 보장하는 쪽은 깜깜하다.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점검이나, 사고가 생겨도 반드시 구출한다는 믿음 말이다.
만약 텃밭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학교 안전 공제회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학교교육과정 안에 운영되는 텃밭이라면, 공제급여 지급 대상인 학교장의 관리 감독 업무다.
문제가 두려워 못하는 것이 아닌, 문제가 생겨도 보장이 되도록 발전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