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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Jun 25. 2024

눈에 들어간 눈썹을 빼며

난 눈썹이 두껍고 긴 편이다.

송충이, 갈매기 눈썹 이런 놀림도 들어봤다.

속눈썹은 마스카라 했냐고 부러워하는 여자들(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정작 나는 불편한 적이 많았다.



제거


어릴 적, 눈에 눈썹이 들어가서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으로 그냥 빼면 긁혀서 따갑고, 물을 살짝 묻혀서 뺐다.

어떨 때는 두 개도 들어가고, 눈 뒤로 돌아가기도 했다.

화장실 가서 세수를 해도 안 되면, 눈알을 꺼내 씻고 싶었다.


누군가는 잘난 척인가, 눈썹 길고 눈 크다고 자랑하나 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자주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쌓였다.

차라리 눈썹이 없는 게 낫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눈썹을 뽑는 습관이 생겼다.

좀 피곤하고 눈이 뻑뻑하면 미리 잡아 뺀다.

지그시 눌러서 당기면, 많을 땐 30~40개도 뽑힌다.

내 눈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힘없는 놈을 없애버린다.


눈썹은 분명 눈을 보호하기 위해 있다고 배웠는데.

그 눈썹이 자꾸 나를 찔러댄다.

나이가 들수록 아예 방향이 눈 쪽으로 나는 눈썹도 보인다.


분명 처음엔 내 편이었다.

나에게서 떨어지고, 낡을수록 내 적이 된다.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포기


인사도 안 하고 복도를 쌩 지나간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이것도 나의 괜한 오지랖인가 싶다.


작은 학교에 9년을 근무했다.

인사를 해봐야 몇 되지 않았다.

이름은 못 외워도 얼굴은 다 알았다.

아이들도 내가 누군지 알고 가깝게 느꼈다.


올해는 학년에 2 학급씩이니 몇 배가 늘었다.

나는 인사를 건넸는데 그냥 쓱 쳐다보고 지나가는 걸 몇 번 겪었다.

"야~ 안녕!~", "아, 예~"

그냥 인사를 받기만 하는 건방도 있더라.


인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예의이고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이젠 그 싸한 눈빛을 받고 괜한 실랑이를 벌이느니 그만하고 싶다.

나도 상처받고 '말을 걸지나 말걸' 하느니 내 반이나 잘 챙겨보자 다짐한다.


저 친구는 누군가한테 인사를 건넬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학교 규모가 커질수록 모르는 어른한테 인사하지 않는다.

나도 나에게 인사를 하는 학생에게만 인사를 건네면 된다.

먼저 인사하고 마음여는 일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놓음


바로 이전 '삶을 바꾸는 5분의 규칙'이란 글을 썼다.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고 서로 반겨 인사하기 위한 방법.

이 글을 가족과 함께 읽었으나 이 교육도 나만의 것이었나 보다.


첫째는 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기 먹을 걸 찾으러 갔다.

둘째는 자기가 피곤한지 내가 건드니 짜증을 냈다.

아내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몰랐다.


나도 먼저 인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한다고 믿었으나, 나만 다가간 것이었다.

내가 멀어지고 나서야 아이들도 아내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교육에 부모의 역할이 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이들이 스스로 알고 올 때다.

나 혼자 한 것은 짝사랑처럼 공허하더라.


사실 시작은 집이 아니었다.

밖에서도 마음 쓰고 챙겨줬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가 상대를 사람으로 본다고, 상대도 나를 사람으로 보는 건 아니었다.


이제야 내 생각문장을 바꾸려 한다.
내가 마음을 열고 사는 건 좋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만큼이다.


이젠 이것도 틀린 문장인가 싶다.

아직도 상대가 원하면 주려고 했나 보다.

빠진 눈썹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날 찌르는 눈썹도 날 위해 빼고 싶다.

내가 잡고 있던 것들을 놓고 나니 이제야 보인다.


연애시절, 내가 놓으면 당신은 날 잡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누군가를 잡아주는 사람이 아니긴 했다.

그래도 내 가족은 나에게 오려고 한다.


이젠 나에게 오는 것들만 잡겠다.

내 눈이 멀어 좋은 줄만 알았던, 내 것인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을.

고작 눈썹 하나를 빼며, 눈썹을 뺐던 아픔들을 떠올리며, 벌게진 내 눈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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