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니까.
더욱이 그것이 우리만의 특별한 이름이라면.
당연하지
둘째의 담임선생님이 반 이름을 정하자고 하셨단다.
햇반, 양념반 후라이드반, 콩자반 등.
장난스러운 추천도 많았다.
과자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마실 게 필요했다.
"둘째야~ 너 초코우유 탄 거 먹어도 돼?"
"당연하지~~"
갑자기 이 말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들렸다.
'당연하지'는 게임으로 골탕 먹이는데나 썼는데.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준다는 마음이 멋졌다.
"당연하지반으로 의견 내면 어때?
네 지우개 써도 돼? 당연하지~
나도 보드게임 같이 해도 돼? 당연하지~
우리 반은 서로에게 당연하게 대하는 반이라고."
하지만 둘째는 용기반으로 의견을 냈다.
최종 결정은 오레오반으로 되었단다.
그래. 무슨 이름인들 뭐 어떤가.
그 이름의 특별함은 구성원 스스로가 쌓아가는 것인데.
금붕어
25년도부터 삼삼오오 모이던 조직이다.
관사에 남아 저녁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니까.
정해진 날짜는 없어도 누구 하나가 미끼를 던지면 됐다.
'금붕어'라는 이름은 25년도 말에 지어졌다.
"어제 3차 누가 계산했어요?"
"어제 마지막에 누구누구 있었지?"
아침에 만나면 기억의 퍼즐을 맞추느라 분주했으니.
올해 새로운 금붕어는 없나 얘기를 나눴다.
술도 좋아하면서 잘 어울릴 수 있는?
그 첫 손님은 교감선생님이었다.
처음엔 관리자가 이 모임에 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우리끼리의 편한 모임에 괜히 눈치 보게 될까 봐.
실질적 리더인 '모집책'은 테스트를 했다.
(모집책은 교감선생님보다 젊은 여자분이다)
농담에 가까운 그냥 술자리였다.
진짜 마지막 테스트는 다음 날에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술을 먹고 어떻게 했다느니.
전날의 일로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물론 최소한의 지킬 선은 넘지 말아야겠지만)
교무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최종 관문도 통과한 것 같았다.
어쩌면 너무 옛날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회식 문화가 싫은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함께할 이름이 필요하리라.
내가 부를 수 있고, 나를 불러주는, 나를 위한 이름이.
나를 부를 이름
학교는 교무실, 행정실, 학년군 등으로 구분된다.
회식에 자리를 앉아도 서로 챙겨서 모인다.
속한 곳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그것이 벽이 되기도 한다.
연관성이 없으면 말 한 번 나누지 않기도 한다.
이름도 모른 채 주무관님, 선생님이란 직책으로 끝난다.
"영상쌤~ 혹시 체육쌤 어디 있는지 아세요?"
수업 시간에 별 반응도 없던 남학생이었다.
'영어쌤'이 아니라 '영상쌤'이라니.
그 의미가 다르게 들려왔다.
아이들이 보통 담임선생님의 이름은 안다.
나머지는 옆반 쌤, 체육 쌤 정도로 부른다.
좀 봤으면 "어! 1학년 쌤이다"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이름을 알아준다는 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결국 내 이름은 내가 함께 보낸 사람들에게 남을 텐데.
그 이름의 의미를 좋게 가꾸어 가는 건 쉽지 않아서.
나에게 어릴 적 '아빠'는 무섭고 꺼려졌다.
내 딸이 부르는 '아빠'는 그런 느낌이 아니길 바란다.
가끔 딸들이 "아삐~"라고 부르면 삐약삐약 하는 느낌이 너무 좋다.
학생시절 별명이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정말 함부로 말하는 별명이 아니라면..)
다른 친구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나에게도 나를 불러주는 특별한 이름이 있기를 바랐다.
직장에서 너무 이상적인 걸 바라는 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직책으로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아동 학대, 갑질 등 가까이 가기엔 무서운 요즘 세상인 것도 같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따스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에게 당신의 이름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곳이 교실이건 같이 일하는 사무실이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기 위한 몸짓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하나의 꽃이 핀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오늘은 잠깐 시간을 내어 그 이름을 불러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