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라는 한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에는 함장이라는 대통령이 있었고 그를 도와주는 몇 명의 승무원이라는 관료가 있었다. 그 안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많은 국민이 있었고 그중에 교사와 학생도 있었다. 교사와 학생은 객실이라는 교실 안에서 즐겁게 여행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안내방송'이라는 교육과정이 떨어진다. 교사는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은 교사를 믿고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가 일어났다. 대통령과 관료는 전부 생존하였으며 국민들 중 일부는 운, 위치, 나름의 방식 등으로 살아남았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중 교사와 학생은 가장 낮은 생존율을 보였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배’라는 나라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점검자들이 그 배에 타는 승객, 즉 국민을 위해 검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를 점검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부패하면 배가 썩어가도, 자질이 없는 함장이 배의 키를 잡아도 배는 물 위에 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관리, 감독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이다. ‘나라’의 기준으로 보자면 ‘큰 배’들 사이에 갇힌 ‘작은 배’인 우리나라는 지도층이 ‘큰 배’에 기대어 ‘작은 배’를 통치할 권리를 얻은 후 감독했다. ‘기업’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배의 감독권은 배의 운영자, 외부의 전문가가 아니라 기업의 총수가 갖고 있다. ‘기업’의 목적은 최소의 투자, 최대의 이익 창출이다. 즉, ‘승객’의 안전을 위한 점검보다는 1대의 배가 가장 많이 싣고, 가장 많이 운행할수록 이득이 된다. 이 ‘나라’와 ‘기업’이 서로 도와주기 위한 움직임을 우리는 ‘정경유착’이라 부른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가정과 학교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꺼리고 있다. 국가는 경제가 얼어가고 있어 교사와 학부모를 시켜 사전답사 두 번을 보내서 현장학습 추진 강화를 하라고 한다.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한번 가기 위해 결국 ‘강릉’에서 경주를 세 번 가야 되는 것이다. 교사와 국민은 1번의 현장학습을 위해 3번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교사라면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싶겠는가?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문제가 생기면 이 모든 책임은 학교와 교사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태에 대해 국가는 조금의 책임의식도 없는 것이다.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리더라면 국가 관료와 관련기관 공무원, 해당분야 전문가를 모아 점검시키겠다. 그리하여 그 안정성을 국가에서 보장해주어 현장체험학습을 강화시키겠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고 싶은가? 언제까지 우리나라의 리더들은 국민에게 바람을 불 것인가? 국민은 추워서 옷깃을 여미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가슴이 쓰라리고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썼던 글인데.. 지금 보니 엉성하고 유치하게 보이네요.. 하지만.. 아직 변화는 없습니다.
당신이 여행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하나요? 숙소를 잡고, 이동수단을 생각하고.. 맛집, 볼거리 등등 많은 것을 준비하겠지요? 교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가이지 시설, 안전 전문가는 아닙니다. 배가 가라앉을까봐 적재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점검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선원들은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권한도 능력도 없습니다.
당신은 매일 똑같은 여행장소, 똑같은 맛집을 가고 싶나요? 나도 매일 똑같은 현장학습 치가 떨립니다. 안전 보장은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의 몫입니까? 물론 위험한 곳을 찾아가 죽는 사람을 탓할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집 앞길도 두드려보고 다닙시다. 걸어가다가 길이 무너져 죽어도 당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국가 안전시스템이라면 이 나라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구체적 내용은 '정책의 본질'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