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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룬 Dec 22. 2021

라이더의 꿈

롱아일랜드냐 발리냐


미국 물을 쬐~금 먹은 남편이 미국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영화 두사부일체의 정웅인 이야기를 하며 맞받아친다.

정웅인 캐릭터의 단골 대사는 "이건 LA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해외 나가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


남편의 미국, 특히 뉴욕 타령은 영종도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영종도에 들어왔을 때, 바다 건너 송도의 마천루가 보이지만 근처에는 허허벌판인 아파트에 살았다. 그때는 대중교통이 형편없었다. 자가용이 없이는 이동이 하도 어려워서 젖먹이 키우는 장롱면허 소지자였던 나는 '그놈의 운전 하고 만다.' 하고 카시트에 아이를 단단히 묶어 초보 운전을 시작했더랬다.

내 고군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생활이 맨하탄 근처에 살며 출퇴근하는 미국의 생활 같다나? 송도가 보이듯 거기선 저렇게 맨하탄이 보인다나?

그리고 미국이 그렇듯 우리나라도 워터프론트의 가치가 높아질 테니 영종도가 미국의 롱아일랜드처럼 고급 주택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예언대로 땅값이 쭉쭉 오르든 안 오르든 우리는 이 섬에 집을 지었고 계속 살 테니 그의 마음만은 이미 롱아일랜더이고도 남겠지.

여기가 롱아일랜드란다. 비..비교해도 될까? 출처 likumc.org


발리의 물을 쬐~금 먹은 나는 발리에 다녀온 후 로망이 생겼다. 스쿠터 라이더가 되는 것. 발리에서 운전경력 없음으로 인해 스쿠터를 빌리지 못했다. 발리 우붓은 로컬 택시기사들이 센터를 장악하고 있어서 탈 때마다 비싸게 부르는 택시비를 흥정해야 했고, 저렴한 그랩을 타려면 로컬 기사들의 눈을 피하는 007 작전을 거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스쿠터 못 가진 것이 서럽고 아쉽더니, 삼 년이 지난 아직도 스쿠터 라이더가 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발리에서 라이더로 일년을 지낸 콤부차 선생님의 위로



그렇게 갖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간간이 만나는 이들에게 그 마음을 드러냈는데, 얼마 전 갑자기 오토바이 전문가이신 친구 남편을 만나면서 모델을 정해버리고, 남편도 반대하지 않고, 물량이 딸린다기에 몇 달 기다리지 싶어 딜러에게 미리 전화했더니 바로 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스쿠터를 소유하게 되어버렸다.

난 항상 소유하기보다 존재하기를 바라왔거늘, 아직 라이더가 될 소양은 쌓지도 못했는데 스쿠터가 생겨버린 거다. 사용설명서를 보고 운전법을 익혀야 할 상황이다.


이제 내가 스쿠터를 타야 할 이유는 충분해졌다.

선 결제, 후 합리화의 법칙 때문이다.


하나, 새 학기부터 매일 아이를 5분 거리 학교에 등교시킬 텐데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도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 스쿠터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대략 5,000원으로 100km를 간다고 함)


둘, 주변의 이목은 신경 안 쓰는 40대 여성의 상징적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아무도 그런 거 안 시켜준다 해도 그냥 너무 멋지다!


셋, 영종 아일랜드에서 발리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와 아이는 그럴 거다. 오토바이 택시를 처음 탔을 때의 신나 하는 아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아이를 태우고 다닐 만큼의 운전 실력을 기르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느긋하게 안전하게 오래오래, 영종 아일랜드의 라이더가 되겠다.



발리든 롱아일랜드든, 삶의 흐름은 이 두 바퀴를 타고 이제 어디로 나를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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