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
댕. 댕. 댕
12시를 넘긴 시계는 새해를 맞이하여 똑같은 소리를 냈다.
창밖의 어스름한 달빛을 바라보며, 맞댄 손에 경건하고 나직한 희망을 읊조렸다.
“새해에는……”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넓지만 오래된 침대에서 작게 먼지가 인다.
마른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복도를 둘러보았다.
중세시대에나 지었을법한 오래된 건물 양식이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복도의 끝. 작은 문 속에는 파란 세로줄이 그어진 잠옷을 입은 내가 있다.
나는 소망이 가득 담긴 기도를 마치자마자 방문을 열고, 복도의 끝에 자리한 커다란 창을 바라봤다.
커다란 달에게서부터 쏟아지는 빛의 양이 심상찮다.
얼마간 창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스산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복도의 중앙에는 커다란 계단이 있다.
계단은 로비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계단에는 벨벳 질감의 채도가 낮은 레드와인빛 카펫이 깔려있다.
흡사 연회장의 화려한 플로어의 느낌이 나는 계단이었다.
보드라운 벨벳의 감촉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계단의 난간에 기대어 내려간다.
계단의 끝에는 작은 해태모양의 석상이 나란히 마주 본다.
사실 저 석상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말도 있다.
낮에는 출입구를, 밤에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으니.
하지만 석상이 움직이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달라진 위치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도 무사히…”
두 마리의 작은 해태에게 저택을 부탁한다는 듯 인사를 건네고 죽 뻗은 복도의 끝을 향해 걷는다.
서로를 보는지, 그 앞을 지나치는 나를 바라보는지 모를 두 마리의 작은 해태의 고개가 작게 숙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깜깜한 저택의 구조는 이제 눈감고도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두운 공간에 익숙해진 눈은 밤눈에 밝게 진화했고, 가끔은 안광이 서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택의 커다란 문 앞에 당도한 나는 물끄러미 문을 한 번 쳐다본다.
‘언제 봐도 참 커다란 것 같아.’ 문 옆에 달린 작은 사자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고리를 꽝꽝 세게 내려친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스산하다. 열린 문 앞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새카맣다.
몸을 웅크린 커다란 무언가가 고개를 드는 기척이 느껴져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덩치가 커다란 용의 비늘이 반짝인다. 푸르스름한 남색빛깔이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것 같다.
매일 밤 보던 모습인데도 오늘은 왜 인지 낯선 느낌이 든다. 새해라서 그런 걸까.
커다란 몸집은 언제 봐도 무서울 정도로 인간과의 괴리감이 든다.
그 앞에 선 나는 항상 인외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을 했었다.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몇백 년 된 바오밥 나무 같은 용의 목을 얼마간 바라보다가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푸른빛의 사방신에게 걸어간다. 물론 내가 그에게로 걸어가는 것을, 그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세로줄의 동공을 담은 구슬 같은 눈이 여기까지 번뜩이는 것 같다.
길게 늘어뜨린 줄의 가운데에는 플랜카드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2025. 청사의 지혜와 번영… 꿈에서 깨어나세요 “
[꿈에서 깨어나세요]는 앨리스의 병 라벨에 붙은 것 같이 아주 조그마한 글씨로 쓰여있었다.
발 밑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고개를 아래로 내린 사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커다란 몸집의 용은 오간데 없고,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와 뱃가죽의 비늘이 바닥을 슥슥 스치며 헤집는 소리만 정적 속에 흘렀다.
곧이어 또아리를 튼 굵은 몸체의 뱀이 머리를 들며 갈라진 긴 혓바닥을 내민다.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고개를 든 뱀은 익숙한 듯이 나를 내려다본다.
아까 전 그 용의 높이와 다시 비슷해졌다. 그러나 용에서 뱀.. 승천하려던 용이 이무기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즘에,
누군가 머리를 내려친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엄한 생각 하지 말라는 것일까.
방금 그 이무기가 내 머리통을 내려친 것이 틀림없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나는
익숙한 내 방의 천장에 한동안 눈만 꿈뻑였다.
방안을 울리는 알람소리와 블라인드가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창 밖의 여명.
새해를 맞이하는 것인지, 요상한 꿈을 꾼 밤이었다.
2025 청사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