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페이퍼티켓으로간 LA, 손가락 몇 번으로간오사카

21년 사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by 다루오

싱글맘이 벌인 아이 셋과 오사카 여행기

페이퍼 티켓 하나 들고 간 LA,

손가락 몇 번으로 간 오사카

21년 사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새벽이었다.

대책 없이 잠들었던 내가

새벽 미명에 눈을 떴다.

왜 깼는지 모르겠다.

본능이 먼저 알았는지도.


스마트폰을 켰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1.5일권. 검색, 선택,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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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룩 앱은 사랑입니데이 ㅎㅎㅎ 1.5일권 예약완료



호텔 조건은 심플했다.


항상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늘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망설임이 많지만

라스트 미닛엔 장사가 없다.

끝에 내몰리면

이상하리 만큼

명확하고 선명해진다.


결정장애가 무엇인가. 개나줘라.

아이셋과 함께

당장 노숙을 할게 아니라면 말이다. ㅎㅎ


유니버설에서 도보로 왕복 가능할 것.

조식 포함 일 것.

가격이 매력적이면 금상첨화.

아 그리고 우리 넷이

함께 투숙할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


당일 체크인을 하는 방이

가장 싸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건

심쫄함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특별 옵션 같은 거다.


훗. 역시 떴다.

기가막히게 싼 가격으로.

딱 우리 조건에 맞는 호텔은

거기에 있는게 국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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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 1박2일 숙박에 조식포함에 디럭스쿼드룸을 이가격에..절대로 불가능한가격임 ㅎㅎ


클릭. 예약 완료.

손가락 몇 번으로 끝났다.

화면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쉬운데.'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화면 속 글자가 자꾸 떠올랐다.


"Universal Studios"


그 순간, 21년 전이 떠올랐다.


2004년, LA.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

꽃다운 내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물론 스마트폰도 없었다.

블로그도,

제대로 된 커뮤니티 정보도 없었다.


지금처럼

손가락 몇 번으로 예약이 끝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비행기 티켓.

페이퍼로 발행 됐던

달랑 그것 하나 들고 LAX 공항으로 향했던 그때.


겨우 그 시절 유학을 하던 친구 몇 명을

위기 상황의 동아줄로 믿고

내 스스로 인터넷으로 예약을 걸어 다녔던

유스호스텔, 미국 국내선 비행기 노선.


지금 생각하면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모두를 녹여낸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무비자도 아니었던 그 때 그 시절이었다.

미국 관광비자를 내던 그 때를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광화문에 있던 미국 대사관까지 가서 인터뷰를 하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통장 잔고 증명.

대학생 신분을 철저히 증명해야 했던

그때의 떨림은

희대의 해프닝

타임슬립물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뭐 시대상의 그림자랄까


당시 미국여행이란 뭐 그런 거였다.


왜였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다만 그때의 나는

한 번쯤 가봐야 한다고

막연하게 믿고 있는

힘의 국가

미지의 국가

원더랜드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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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여권과 미비자 인증. 아세월이여. 뭔가 얼굴이 뾰족해진 느낌 ㅎㅎ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공항에 내려 혼자 길을 찾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걸었던 그 기억.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말도, 표정도, 공기도.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걸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지도 하나 들고

버스를 타고 길을 묻고

걷고 또 걸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는 혼자서도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나는 생각보다 작지 않다.


샌디에이고에서 유학 중이던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다.

애랑.

그리고

애랑의 유학 시절 친구, 조이.

애랑이가 나를 보러왔다.

조이도 함께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는

그들과 함께였다.

스물두 살의 우리 모두는

그냥 친구였다.



어트랙션을 타고,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드는 동안

그렇게 모두가 젊음을 함께하는

친구였다.

그때는 몰랐다.

에랑과 조이가 훗날 결혼하게 될 거라는 것도,

예쁜 아들딸을 낳고

샌디에이고에서 가정을 꾸리게 될 거라는 것도.

당시엔 그저 모두가

청춘을 함께했기에

마냥 즐거웠다.

그게 전부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오두의 주변은

온통 가족들이었다.

손잡고 웃는 아이들,

사진 찍어주는 엄마들,

아빠 어깨에 탄 아이.


나는 그때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의 가족과.'

막연한 상상이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지,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감지했을 뿐이랄까.

그래 그 someday라는 단어주는 어감.

'언젠가는.'


그 여행이 나를 바꿨다기보다는,

나는 그때 이미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확인한 것에 가까웠다.

겁이 없어졌던 게 아니다.


인생의 가장 기본 기술을

터득하게 된것이랄까


두려움이 있어도

그걸 안고 움직이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로

완전히 새로운 여행이

꾸려진다는 것.


또 그 여행의 여운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그것이 남은 여생을

지탱할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돌아와서의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일상은 이어졌고

나는 다시 평범한 하루로 돌아갔음을

인정한다.


허나 하나는 달라져 있었다.



나는 세상을 한 번

건너본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로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가도 된다.'

'별 일 없다.'

'큰 일 나지 않는다.'

그 생각.

이번 여행도 사실은

그 연장선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이 왔다.

체크아웃 시간.

짐을 챙겼다.


이번엔 우버 택시를 불렀다.

지금까지 고우 앱만 써봤지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왠걸.

저렴하고, 편안했다.


차가 항만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부둣가가 보였다.

물이, 배가, 항구 크레인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아이들이 차 창에 얼굴을 붙였다.


"엄마, 저기 배!"

"엄마, 바다야!"


내 고향 부산의 부산항이 떠올랐다.


닮았다.

하지만 달랐다.

일본어 간판들,

컨테이너 박스들,

이국적이면서도 생경한 풍경.


'내가 외국에 있구나.'

묘한 분위기였다.


아침.

해가 뜨는 아침의 바다가 주는 신선함.

그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아스라이 멀리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어트랙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알려줬다.

번역기를 통해.


"저게 유니버설."

아이들이 소리쳤다.

"와!!!" "엄마, 저기!!!"

그 흥분이란.


순간, 2004년의

스물두 살 나와 오버랩되는

기분이었다.


혼자 유니버설 입구를 바라보며

가슴 뛰던 그때의 내가

지금 옆에서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내 몸하나 건사하면 그만일

20대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글쎄

세 아이를

내몸보다 더 힘껏 껴안고 책임지고 있는..

아 그러니까

어쩌면 모정을 앞세워

세치염색을 신경쓰는 40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부담과 압박에도 결국은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결국은 그 길 위에 서 보이는 것.


그 길 위에서 오르는 여정에

받은 그 호의와 친절을


세월이 흘러

다시 누군가에게

그러니까 지금은 삼남매인

너희에게 무한히 흘려보낼 수 있는

알수 없는 잠재력이 있음을

엄마는 알고 있다.


혼자 걸었던

그 길을 이젠

너희와 함께 걷는다.


그리고 이 여정을 너희가 기억을 한다면

20년쯤 후엔

너희가

그 모든 친절과 호의를

다른 누군가 에게 흘려 보내기를.


엄마는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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