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셋과 여행하는 나만의 방식
싱글맘이 벌인 아이 셋과 오사카 여행기
— 아이 셋과 여행하는 나만의 방식
오사카성을 나왔을 때는 오후였다.
해는 아직 높은데,
다리는 이미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은 어디 갈까?"
클룩 앱을 열었다.
아 맞다
우리에겐
주유패스가 있다.
오사카 시내를 하루 동안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패스.
지하철도 공짜, 몇몇 관광지도 공짜.
"이거면 뽕을 뽑을 수 있겠는데."
전직 승무원에게 동선과 효율은
일종의 반사신경이었다.
아이 셋이 추가되었을 뿐,
머릿속 계산기는 또 그렇게
도록도록 굴러가는 중이었다.
우메다 공중정원,
도톤보리 크루즈.
이렇게만 돌아도 본전은 한다.
오케이 결정.
지하철을 탔는데, 이상했다.
이틀 전과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역을 바로 찾고,
구글 지도를 딱히 보지 않아도
느낌이 왔다.
출입을 책임지는
QR도 한 번에 찍혔다.
익숙하긴
아이들도 마찬가지.
개찰구에서 삐삐 울리던
그 머쓱함은 어디 가고
이제는 쓱쓱 잘도 통과했다.
가타카나, 히라가나도
제법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일본어 안내방송이 '소음'에서
'소리'가 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전,
개찰구 앞에서 땀을 닦으며
멀뚱히 서 있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특히 돌아갈 방법이
이미 결제되어 있을 때 더욱더
그러한 법.
우메다로 가는 길.
난바와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네온사인과
왁자지껄한 사람 목소리로
꽉 차 있던 난바와 다르게.
우메다는
큰 빌딩, 큰 도로, 큰 전광판이
주인인 동네였다.
그러다
근사하고 세련된
커다란 스타벅스 전광판이 보였다.
"엄마, 여기 스타벅스 있어!"
아이들이 반가워했다.
지구 어디를 가도 똑같은 초록 로고.
낯선 곳 한가운데에 박힌
익숙한 표식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생경한 이곳에서 만나는
글로벌 브랜드가 주는
반가움에 새삼 웃음이 났다.
세상은 생각보다 크고,
브랜드는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고,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 여기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헵파이브.
멀리서 빨간 관람차가 보인다.
"엄마, 저거 안 돌아가는데?"
가장 먼저 눈치를 챈 건
눈썰미 좋은 첫째, 다엘이었다.
다가설수록 멈추어 있는 그 관람열차가
선명해졌고, 우리는 임시 중단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엔 금세
실망의 기색이 퍼져나가고
이내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임시휴업이 내 탓도 아닌데
세상에 내가
대역 죄인으로 몰리는 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금방
쇼핑몰 안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귀여운 문구, 인형, 기념품들.
돌지 않는 건 관람차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 시선은
365일 돌고 또 돌아 다른 데로 옮겨가고 있었다
어른인 나의 고정관념은
"오늘 관람차 포함 루트"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아쉬워하지만,
아이들의 자유로운 관념은
"지금 눈앞에 있는 재미"를 향해
자연스럽게 방향을 튼다.
실망은 생각보다 짧고,
호기심은 생각보다 지구력이 좋다.
주유패스 활용을 위한
공짜 입장,
헵파이브를 놓쳤지만
3시 이전까지 들어가야 공짜 혜택이 있는
우메다 공중정원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어른 기준으로는
"조금만 걸으면 돼."
아이들 기준으로는
"왜 이렇게 멀어…"인 거리.
공중정원.
2시 50분 도착. 주유패스로 입장 가능한 마감 시간은 3시.
엘리베이터 줄이 길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겨우 올라갔더니, 레
오는 만 5세라 티켓을 따로 끊어야 했다.
줄, 시간, 규정.
여행지 입장문 앞은
언제나 일종의 작은 관문 같다.
간발의 차로 입장에 성공했다.
우메다 공중정원 안은
온통 핑크빛 장식이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는
프로모션 덕분이었다
때마침 그날 우리가 입은 옷도
우연히 분홍 계열이었다.
셀카 찍는 여러 장면
우연히 핑크 옷 맞춘 모습
누가 맞춘 것도 아닌데,
이렇게 색깔이 맞아떨어질 때면
"그래, 오늘은 이 정도는
누려도 될만하지"
싶어진다.
전망대에 올라가
오사카를 내려다봤다.
평지 위로 도로와
강이 이어지고
다리가 겹겹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전망대 너머를 보며
"저기 물 많다",
"차 진짜 많아"
많은 감상을 던졌다.
짧게
시원하게
진심을 담아
한 마디식 해보는 그 외침에
진심 어린
기억들이
각인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아이들의
다음 세대로 넘어갈
이야깃거리로 향유될
무형의 유산이 될 것이었다.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소리 없이
형체 없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하기에
가슴 벅찬 것이었다.
나도 덩달아
아이들의 외마디 탄성에
서울의 한강이 떠올랐다.
바다가 있어 부산도 떠올랐다.
내가 살아온 도시들의 풍경이
창 밖에 스치듯
겹쳐 지나갔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보러 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 안에 이미 있던 풍경을
다른 모양으로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저 아이들이
다른 도시의 어딘가 높은 곳에서
오늘의 이 장면을 떠올리게 될까.
"나 어릴 때, 엄마랑 오사카에서 본 풍경이 있는데…"
그렇게 시작하는 기억의 바로미터가
오늘의 여행지이기를
가족과 함께 좌충우돌했던
이 짧은 기억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제 다시 이동.
고우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주유패스를 끝까지 활용하려면
지하철을 타는 게 맞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남는 건
삼 남매의 짜증을 받아낼
이중고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뽕 대신 체력을
체력이 국력이라 했다.
엄마의 경제학은 때로
숫자가 아니라 체력과 기분이 좌우하기도 한다.
도톤보리 근처
쿠로몬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시장 안은 생선과 튀김 냄새,
사람들 목소리로 가득했다.
역시 오사카 답다는 느낌이랄까
이제 제법 여행지에 젖어
여기저기
분위기 파악이 되는 나도
삼 남매도
왠지 웃음이 나는
저녁거리의
유쾌한 활보였다.
우리를 멈춰 서게 한
고소한 기름냄새.
강가에 노포 튀김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튀김집에서 재료를 고르면
주방에서 알아서 튀겨 주는 시스템이었다.
옆에서 '일본인 가족이 먹는 모습을
슬쩍 보며
"아, 이렇게 찍어 먹는구나"
커닝을 했다.
역시
처음 보는 음식은
설명서보다 옆 테이블을 보면 빠르다.
아 난 역시 튀긴 음식은
취향이 아니었기에
아이들에게 모든 음식을 양보해야 했고
사이드로 시킨 김치와 풋콩으로
연명했다
아,
그래 그 일본식 김치의
단맛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던 건
사족이다.
강가에 앉아 먹던 튀김의
운치 있는 낭만에
그저 잠시 앉았다가는
그런 휴식에 의미를 두고
다음 여행지로 발을 옮겨야 했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의
여행의 묘미이니까.
다음 코스는 도톤보리 크루즈!
물론, 주유패스로 공짜였다.
일본어 가이드의 가열찬 설명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물 위에서 바라보는 도톤보리는
지상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필수코스인
글리코상 앞에서 사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사진 속 네 사람 얼굴에
피곤과 흥분이 동시에 묻어났다.
계쏙 해서 펼쳐지는 선상 위에서 바라보는
도톤보리의 야경에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크루즈에서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같지만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던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을
글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크루즈가 끝나고
또다시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던
삼 남매에를 위해
타코야키를 사러 갔을 때,
구글 추천으로 뜬
유명한 집에는
이미 너무나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바로 옆에 줄 하나 없는 가게로 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맛집 인증"이 아니라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느냐"였다.
묘하게도,
우리가 이동하자
몇 명이 우리 쪽으로 따라왔다.
사람은 늘,
줄이 있는 쪽을 보다가
가끔은 줄이 빠지는 쪽을 따라간다.
10피스를 포장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잡은 택시.
나이 지긋한 기사 아저씨가
내 일본어 수준과,
내 번역기 사용을 못 알아듣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포기한 표정으로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거절.
아이 셋을 데리고 매우 허탈했지만,
한편 이해도 됐다.
서로의 언어가 이렇게 안 맞는데
한 차 안에서 같이 있는 것도 힘든 일이다.
길을 건너 다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이번엔 젊은 기사.
번역기를 같이 켜놓고
어색한 웃음을 섞어가며 호텔까지 왔다.
같은 도시, 같은 직업인데
새 시스템을 받아들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하루 난이도는 꽤 달라 보였다.
신구가 공존하는 이곳 오사카의 관광지가
서울 하늘아래 어느 관광지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하는
묘한 생각이 교차했다
호텔.
타코야키를 꺼내자
소스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아이들 눈망울이
터질 듯이 반짝였다.
저녁식사를 거나하게 드신 아이들이
설마 다 드시려나 하고
먼저 씻으러 들어갔던 건
내 실수였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의리는 개나 줘 버린 아이 셋은
타코야끼 10개를 순식간에
아주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오사카에 와서
타코야키를 한 입도 못 먹은 엄마'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애들 입 주변에 묻은 소스를 닦다 보니
갑자기 다시 와서 먹어야겠다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나의 입은 텅 비었지만,
나의 다음 계획이 꽉 찬 느낌이었다.
그날 밤 8시 반.
아이들을 빨리 재웠다.
다음 날 체크아웃인데,
체크아웃할 호텔도 예약 안 되어 있었고,
USJ 티켓도 안 사놨고,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다.
P엄마의 무계획이란 이토록 대책 없는 것이다.
더욱이 대책이 없는 것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그냥 꺼버렸다.
나도 같이 애들과 잠들어 버렸다.
대책 없지, 그렇지?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신기하리만큼 평안했다.
여기까지 올 때도
완벽한 계획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동선은 계속 꼬였고,
도전적인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때마다 다시 길을 찾았다.
나는 안다.
내일도 그러면 된다.
지도는 나중에 수정하면 되고,
중요한 건 오늘 여기까지 같이 걸어온
내 감각과 나의 동행,
한배를 탄우리 삼 남매였다.
동선은 꼬여도 우리는 적응한다.
아이들은
오늘 막힌 길에서 돌아 나오는 엄마와,
새 길을 찾아가는 하루를 봤다.
언젠가 자기 인생의 길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오늘을 떠올렸으면.
'그때도 길은 다시 찾았으니까.'
그 생각을 잠옷 주머니 어딘가에 넣어 둔 채,
그날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