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3시, 엄마는 무너지지 않는다
싱글맘이 벌인 아이 셋과 오사카 여행기
— 새벽 3시, 엄마는 무너지지 않는다
새벽 3시.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 다리가 이상해."
루비의 허벅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종아리는 열이 올라 있었고,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루비는 과장하는 아이가 아니다.
아프면 아프다, 괜찮으면 괜찮다 말하는 아이다.
이렇게 울면서 깨웠다는 건, 진짜라는 뜻이었다.
나는 먼저 기도했다.
"하나님, 이 여정에 함께해 주세요.
우리 일정에 뜻이 없는 일이라면 멈추게 하시고,
치유가 필요하다면 지금 임하게 해주세요."
가방에서 판피린을 꺼냈다.
10년 넘은 독립육아의 노하우.
(나는 독박육아른 단어를 지양한다
독박이 아니라 독립이다)
신경통, 두통, 성장통.
혼자 감당해야 했던 밤들이 쌓여
이제는 반사신경처럼 손이 간다.
반 병 정도 먹이고,
등을 쓸어주며 재웠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이 걸었다.
방학 내내 집에 있다가
하루 만에 만 보 넘게 걸었으니
근육이 놀랐을 것이다.
원인을 알면, 두려움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엄마는 그걸 안다.
아침이 왔다.
"엄마, 괜찮아."
루비는 멀쩡했다.
아이의 회복은 때로 기적처럼 빠르다.
유니버설 오픈런은 접었다.
계획은 멋지게 세워지고,
늘 겸손하게 무너진다.
특히 P 엄마의 계획은.
아이의 컨디션 앞에서는
자존심도, 예약도, 일정표도 의미 없다.
아이들이 고른 곳은 오사카성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오사카성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넓은 성터.
옛 돌담길을 따라 고고하게 산책하며
역사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레오가
"우와~~ 뒈박 뒈박 뒈박!"을 외치며
한 발 한 발 무겁게 걷더니,
슬슬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봤다.
이내
장화 신은 고양이 눈,
다엘과 루비도 같은 눈빛이었다.
전날 70만 원짜리 와규에 털린 지갑 때문에
택시를 포기하고 걸었던 후유증.
아이들 다리는 이미 한계였다.
"엄마… 버스 없어?"
있긴 하다. 순환버스.
나의 고고한 옛 성터 산책의 꿈은
그렇게 고이 접혔다.
순환버스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또 여행이다.
멀리서 보이는 초록 지붕과 금빛 장식.
단단한 석축.
이 성은 한 번에 세워진 게 아니다.
무너지고, 불타고, 다시 세워졌다. 전쟁을 지나, 또 전쟁을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오사카성은 처음의 그 성이 아니다. 재건된 성이다.
문득 웃음이 났다.
재건된 성과 재건된 엄마.
무너졌다고 끝이 아니구나.
아이들은 전시관에서 갑옷을 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왜 전쟁을 해?"
"왜 그렇게 지키고 싶었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나도 몇 년 동안 싸웠다.
법원. 양육비. 면접교섭. 생
활비 계산기와 마음의 계산기를
번갈아 들고 버티던 시간.
"너희 엄마 안에도 전쟁통에
살아남은 도요토미 같은 피가 흐른다.
타이거맘의 피.
이것도 좀 기억해 주겠니?"
아이들은 "뭔 소리야~" 하며 웃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권력이 아니었다.
아이 셋의 오늘이었다.
그리고 그 오늘은
내가 지켜내는 만큼 아이들 안에 남는다.
성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지금을 수습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을 돌보면서 미래를 심는 일이다.
새벽 3시의 경련도
엄마가 기도하며 등을 쓸어준 기억도
계획을 내려놓고 방향을 바꾼 하루도
다 씨앗이다.
지금은 사소해 보여도 아이 안에 저장된다.
언젠가 루비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밤중에 아이가 아프면 당황하지 않고
등을 쓸어주며 말하겠지.
"괜찮아. 엄마가 있어."
왜냐하면 자기 엄마가 그렇게 했으니까.
오사카성은 무너졌었다.
그래서 지금 더 단단해 보인다.
판피린 한 병과,
새벽 기도와,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과,
재건된 성이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다.
새벽에 당황하고,
계획은 무너지고,
약에 의지하고, (마약이 아니다 ㅎㅎ)
기도에 매달리고,
고고한 산책의 꿈은 접어도.
무너진 적이 있으면
다시 세우면 된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