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사 Oct 29. 2022

“No habla español”

멕시코 여행기 - 저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릅니다. 





원래도 소화기계가 좋지 못한 사람이라, 멕시코에 가면서 음식이 제일 걱정이었다. ‘물을 갈아 먹는다’고 하는데, 음식이 잘 맞지 않아 탈이 날까봐서. 원래 여행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나도 그런 도전들을 아주 좋아하지만, 당시엔 몸도 돈도 축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한 달간의 멕시코 여행 내내, 외국인이 많은 음식점을 몇 번 이용하거나,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다 밥을 해먹었다.


월마트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사다 먹은 날 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팠다. 가장 우려하지 않은 브랜드, 가장 우려하지 않은 음식이었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보험회사에 전화하니 멕시코 병원의 응급실에 가도 되는데, 응급실 검사 중 일부는 보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검색을 하다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병원을 찾았고, 해가 뜨자 마자, 병원을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밖에 나가 아무리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았다. 출근 시간이었다. 눈 앞 도로에 차들이 늘어나는 동안, 도착 예정 시간도 자꾸 길어지기만 했다. 배를 부여잡고, 식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살려달라는 기도를 생각나는 신 모두에게 해보고 있었다. 그 때, 누가 내 오른쪽 어깨를 툭툭 쳤다. 짙고 검은 머리를 길게 묶은, 풍채가 좋은 아주머니셨다. 


양쪽으로 내려간 눈썹과 모인 미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알아듣지 못할 스페인어를 한참 하셨는데, 한 단어도 해석하지 못했지만 낯선 동양의 젊은이인 나를 걱정하고 계신다는 감정 하나는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스페인어 중에 가장 많이 써먹은 스페인어를 또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릅니다’ 를 뜻하는 “No habla español(노 아블라 에스빠뇰)” 이었다. 


그 말을 듣자 마자 아주머니가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배를 둥글게 쓱쓱 문지르시고는 눈을 크게 떠 나를 쳐다보셨는데, 아마 배가 아프냐는 물음이셨겠다 싶어 그렇다는 말로 Sí, 하니 두텁고 커다란, 조금은 주름졌고 나보다는 어두운 손으로 등을 한참 문질러주셨다. 따듯한 온기가 몸에 닿았다. 할 수 있는 건,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하며 제대로 맞지도 않을 발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연실 전달하는 것 뿐이었다. 한참을 등을 쓰다듬어 주시던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다 싶으셨는지, 나를 한 번 안아 다독여 주시고는 가던 방향으로 떠나셨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 계속, 나를 뒤돌아 보셨다.  


등과 품에 닿은 온기와 멀어지던 눈빛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전쟁과 범죄가 만연한 시대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이유, 그리고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와 인종, 국적을 초월한 다정함을 나누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그리고 어디에도 있다는 것. 결국은 그런 사소한 다정함이 모여 우리를 지탱하고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