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의 진로, 즉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볼 거예요. 먼저 질문을 해볼게요. 난 이걸 하고 싶다고 결정한 친구 있나요?”
“네. 저요. 저는 군인이요.”
나의 첫 질문에 이렇게 망설임 없이 답하는 중학생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몰라요’나 ‘유튜버요’라는 흐릿한 대답을 한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항상 이런 대답을 듣는 나에게 그 학생의 대답은 생소함을 넘어 놀라웠다.
“우와~ 벌써 결정한 친구도 있네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친구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결정하지 못했다고 늦은 건 아니에요. 이제부터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되니까요.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제가 왔으니까요.”
확고한 꿈을 가진 아이가 있는 반의 수업은 흥미로웠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 적극적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열정적인 아이들이었다. 비록 자신의 결정하지 못한 친구들도 자신들을 돌아보는 활동에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이런 아이들과의 수업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나누어 주고 싶어지는 교실이다.
1교시가 끝난 후, 아까 그 당당한 대답을 했던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고민의 빛이 가득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부모님은 제가 군인 되는 걸 너무 반대하세요.”
“왜? 선생님이 보기에는 정말 멋진 일인데요.”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부모님들의 마음은 우리 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일하는 것을 모두 바라니까요. 그래도 친구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부모님을 설득해 봐야해요.”
“설득이 잘 안 돼요.”
“맞아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부터 다음 시간부터 자기들의 미래 로드 맵을 그려 볼 거에요. 그 시간에 꼼꼼하고 세밀하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보세요. 10대에는 어떤 준비를, 20대. 30대 이후의 모습까지 자세히 친구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세요.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세세하게 자신의 로드맵을 그려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조금은 친구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 거에요. 아마도 친구를 응원하는 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는 신나는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 시간에 그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군인이 되기 위한 방법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하나씩 꼼꼼하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10대에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와 운동 계획, 20대의 임관, 그 이후의 삶까지.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그 안에는 부모님의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소년의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신나서 펜을 움직이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보이지 않는 그 아이의 부모님과 우리 아이를 떠올렸다.
과연 나는 엄마로서 아이의 꿈을 얼마나 믿고 응원해주나?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부 강사인 나는 학부모를 직접 만나 ‘이 아이는 재능이 있으니 믿어주세요.’라고 말할 기회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의 손에 논리라는 무기를 쥐어 주고, 로드맵을 잘 설계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다. 부모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작정 떼쓰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증명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소통법을 가르쳐 주는 것, 그것이 내가 교실에서 해야 하는 또 다른 일이었다.
아이가 그린 로드맵이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돌려놓았을지는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학부모라는 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겠지만, 그날 아이의 진심이 담긴 세밀한 지도라면 그 벽에 작은 문 하나쯤은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곁에 조용히 선다. 아이들의 꿈 옆에,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작은 지도 한 장을 슬며시 끼워 넣으면서.
#강사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