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66
클라이머 호소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클라이밍을 한 지 벌써 4개월이 훌쩍 넘었다. 한때 퇴근만 하면 암장으로 달려가 주 5일 출석 도장을 찍곤 했는데, 그때 그 열정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모르겠다. 100℃를 넘어 팔팔 끓어 넘치던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이 이제 식어버렸나? 열정의 불씨는 왜 꺼져버렸을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믿지 않았다. 몸이 멀어져도 내 마음만 굳건하다면 달라질 게 뭐람. 어른들이 내 마음의 단단함을 너무 얕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보낸 친한 친구들과 모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우리는 차츰 만남도 연락도 뜸해졌다. 정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구나, 진리인 듯 깨달았다.
비단 인간관계만 그런 건 아니었다. 공부나 취미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때까지 문학 관련 공부를 해오다가 회사 생활로 바쁘니 소설보다 당장 업무에 도움 되는 실용서 위주로 읽게 됐다. 한창 수영에 미쳐 있다가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이 문을 닫자 클라이밍으로 마음이 휙 옮겨갔다. 그러다가 만성 관절염을 달고 살면서 클라이밍을 자주 하기 어려워지자 마음은 또 조금씩 멀어졌다.
이상하게 암장에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만 잡으면 꼭 통증이 심해졌다. 벽을 오를 때는 도파민 때문인지 아픈 줄 몰랐다가 집에 돌아와 통증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암장에 가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100도를 넘었던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은 얼마쯤 줄어들었을까. 70도는 될까? 50도? 어쩌면 35도쯤 미지근한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미지근한 마음으로 클라이밍 뉴스레터를 만들며 여러 클라이머를 만날 때,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들은 정말 200도, 아니 1,000도 이상의 열정을 가진 듯했다. 마치 용광로에 들어간 듯 그들의 온도에 나도 함께 달아올랐다. 다만 내 안에서 끓는 건 열정이 아닌 열등감이었다. 그들의 재능에 질투를 느끼기보다, 무언가 깊이 있게 파고드는 열정과 집요함에 열등감을 느꼈다. 나는 왜 그들처럼 활활 타오르지 못할까. 왜 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쉬이 멀어져 버리는 걸까. 클라이머 호소인이 된 나에게 클라이밍 뉴스레터를 만들 자격이 있나?
열등감에 다 타버려 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클라이밍이 좋았다. 아니, 여전히 좋다. 미지근한 애정도 애정이리라. 그렇다면 다 타버려 그냥 숯이 되어야겠다. 겉은 식은 듯이 잿빛이지만, 부지깽이를 깊이 찔러 넣으면 속은 여전히 뜨거운. 살짝만 휘휘 저어도 다시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숯. 겉은 클라이머 호소인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언제나 클라이밍을 갈망하고, 애정하고, 응원하는. 미지근한 온도로 오래도록 클라이밍을 애정해야겠다.
이번 주말 슬스 팀원들과 오랜만에 센터에 가기로 했다. 부디, 좋은 컨디션으로 오를 수 있기를.
협업 문의 : slowstarter@slowstar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