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음식은 케밥밖에 없나요?
유학의 끝 무렵 친구가 가지안텝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저를 꼬드겼어요.
튀르키예서도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동부지역 여행이라니 망설임 없이 수업을 듣고 떠났습니다.
(네 맞아요 저는 K학생이랍니다.)
앙카라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출발해 약 8시간 뒤 가지안텝에 도착했어요.
가지안텝은 동부지역의 대표 미식 도시인데요.
특히 안텝 프스특(Antep Fıstık)이라고 하는 피스타치오가 유명한 지역입니다.
튀르키예어로 프스특(Fıstık)은 땅콩이나 피스타치오를 뜻하는데요.
튀르키예 내에서도 가지안텝 지역에서 생산되는 피스타치오는 튀르키예내에서도 제일로 쳐주는 피스타치오랍니다.
얼마나 안텝 프스특이 유명하냐면 가지안텝 입구에 피스타치오 동상이 있을 정도예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건조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도시의 뜨거운 열기에 덩달아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거닐다가
눈앞에 보이는 숙소를 잡고 전통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장에는 금속을 내리치는 소리가 가득했어요. 알고 보니 동부지역은 구리로 만든 제품들이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골목골목 상인과 시민들의 소리로 거리가 활기를 띠고 있었죠.
동부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 잘 말려진 토마토와 고추, 가지들을 보고 걷노라니 가지안텝 사람들의 삶에 들어간 거 같아서 더욱 신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골목길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미식의 도시답게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어요.
우연히 들어온 식당도 이렇게 맛있는데, 다른 곳은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어 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안텝에서 꼭 먹어야 하는 바클라바가게가 있나요?"
"음..바클라바도 맛있지만, 가지안텝에 카트메르(Katmer)라는게 있는데 내일 아침 이 집에 가서 꼭 한번 먹어보세요.
가지안텝 사람들은 카트메르를 아침으로 먹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 가게가 카트메르의 원조에요."
들어보지 못한 디저트에 추천받은 식당 이름을 구글맵에 저장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섰습니다.
내일 아침은 카트메르로 정해졌으니 이제 어딜 가도 좋다는 제 말에 음식에 관심 없는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이었죠.
그렇게 가지안텝에 유명한 모자이크 '집시 소녀'를 본 뒤 가지안텝에서의 첫날이 저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풍 가는 날처럼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카트메르를 먹어볼 생각에 들떠 빠른 발걸음으로 가게로 향했어요.
이른 아침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앞은 이미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테이블 위에는 카트메르에 우유를 함께 먹고 있었어요.
저도 눈치껏 카트메르와 우유를 주문했습니다.
주문과 동시에 이웃집에 우유를 가지러 간 직원과 통유리 안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위로 일사불란하게 카트메르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역시나 들어와서 보라며 손짓하는 직원들에 못 이기는 척 들어가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카트메르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했어요.
반죽과, 신선한 안텝 프스특, 카이막, 그리고 설탕이 끝입니다.
반죽을 아주 얇게 펴서 그 위로 피스타치오 가루와 설탕을 잘 흩뿌려주고 카이막을 조금씩 뜯어 넣어준 뒤 딱지 모양으로 반죽을 접어 화덕에 넣고 아주 빠르게 구워냅니다.
그런 뒤 구워진 카트메르를 잘 자른 후 피스타치오 가루를 또 한 번 가득 뿌려낸 뒤 접시에 담아내어주는데요.
갓 구운 카트메르 한 조각과 따듯한 우유 한 모금을 마셨더니, 검정 고무신에 기영이가 바나나를 처음 먹었을 때의 장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한데 고소하면서 따듯한 이 음식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음식만으로 저는 가지안텝에 또 올 합법적 이유가 생겼습니다.
이 글을 읽고 가지안텝에 가지 못하는데 카트메르를 맛보고 싶은 분들은
이전에 소개해 드린 Safa라는 가게에도 카트메르를 판매하고 있으니 먼 동부지역에 가지 못하더라도 튀르키예 여행을 가신다면 맛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