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
"오늘 학교 가야 돼"
라는 엄마가 밖에서 동분서주를 할 때 나는 영혼은 없는 한량처럼 있었다. 그러나 그 전화 한 통에 룰루랄라 하면서 지금 생각을 해보면 정말 '엉터리'로 교복을 입고, 가방에 필통을 넣고 하는 행동 자체가 그나마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웃기게도 내가 <가해자>가 되어 있기에 그 누구도 나의 교과서를 가져올 수 없었기에 정말 필통하나를 넣고, '학교를 가겠다!'라고 하였다. 엄마는 나를 보며 쓴웃음 지으시며, 교복을 다시 입혀주셨고, 나는 오랜만에 등교하는 느낌을 느끼며, 학교에 도착하였다.
뭐랄까. 기분이 묘한 떨림. 그 느낌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 묘한 느낌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 촉이 맞았던 것일까?'
교실이 아닌 학생부실로 발걸음을 옮겨야 됐었다. 흔히 학생부실은 '잘못을 하였을 때 간다.'가 거의 학생들에게는 전제 조건이었기에 더 기분 좋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학생주임선생님 및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나쁜 아이로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문을 열고 뚜벅-뚜벅-들어가자 모두가 나를 보고 흠칫-하고 놀랐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주임선생님은 내 자리의 의자를 빼주시며 말씀하셨다.
"다슬아, 왜 교복 입고 왔어?"
"네?"
라고 되물으며,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교실은 언제 가지?'라는 생각도 슥-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교복 안 입어도 되는데. 오늘 수업 들어가는 게 아니야.. 편하게 입고 와도 되는데.."
라고 이야기를 하실 때 나를 보는 눈빛이 약간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내 기분 탓 일진 모르겠지만.
"오늘 그러면 뭐를 하나요?"
"오늘은 진술을 할 거야. 그냥 편하게 말하면 돼"
'진술.. 내가 아는 그 진술..?'이라고 생각하며 회피를 하고 싶었다. 그 생각도 짙게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지만, 현실을 마지못하여 보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하고 떨구게 되었다. 그 사이에 눈물이 또르륵 하고 나오기 시작하였다. 학생주임선생님은 나에게 티슈와 주스를 주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억울함의 눈물을 닦아냈다.
"... 몇 가지를 물을 거야."
라고 침묵을 깨신 것은 학생주임선생님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스를 열어주셨다.
"네.."
"다슬아 00 이를 때린 적이 있니?"
"아니오."
"00 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니?"
"네 있어요 00 이가 복도 끝에 있었는데 그 아이가 저를 '야!'라고 불러서 제가 가는 것보다 그냥 대답을 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저는 대답으로 '왜!'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그러면 혹시 고의가 아니더라도 물건을 00 이에게 놓쳤다던가 그런 적이 있니?"
"아뇨"
"00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니?"
"있어요."
"왜?"
"학교에 늦게 와서 같이 이동하는데 1교시 늦는 것도 눈치 보여서 좀 일찍 와라 또는 점심 같이 먹을 때 밥 먹으면서 딴짓을 해서 점심시간이 다 끝나서 늦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항상 혼나는 건 저예요."
"딴짓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
"밥을 숟가락으로 폈을 때, 입에 안 넣고 계속 입을 안 벌려요."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사실상 뭔가 하소연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 이야기 살짝 해주고 가"
라고 하셔서 일종에 진술로서 이야기를 했다.
'짜증을 냈다.'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게 폭력이라면 굉장히 어이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를 공처럼 모아 내게 던지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동안 비슷한 질문과 유도신문 같은 질문과 답변을 하였고, 교실에 한 발자국도 못 갔었다.
'대역죄인'이 된 기분.
그 기분을 선생님, 엄마와 나눈 채 진술이 끝났다.
나는 파김치가 된 채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교복을 보니 '찢어서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며칠 뒤, 또 학교를 가야 됐었다.
데자뷔 같은 느낌.
학교 가기 전에 엄마는 여전히 동분서주를 하시고 나는 여전히 영혼 없이 덩그러니 항상 있었다. 엄마는 집으로 들어오셔서 '교복 안 입어도 돼'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편한 옷을 입고,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학교를 가는 동안 엄마를 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오늘은 학교를 왜 가는 거예요."
"나도 몰라."
'모른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당시 우울증 약에 불안을 감소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지금 생각을 해보면 다행이다.
교실이 아닌 또 학생부실로 가게 되었다. 타의적으로 들어가서 꾸벅하고 인사를 하자 나를 자리로 안내를 해주셨다.
이 날은 그전과 다르게 종이와 볼펜이 있었다.
"진술서를 써야 되는데 그동안 있었던 일들 적어야 돼"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술서..'하고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있었던 일만 적으면 되는 거야. 솔직하게만 적어주면 돼."
"네, 그런데 양식 없나요?"
라고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옆에서 '진술서는 그런 것이 없다'라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 1회 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진술서 어떤 식으로 적어야 되는가.라고 고뇌에 빠지기 시작을 하였다. 그래서 그나마 생각을 한 것이 육하원칙이 생각이 나서 그렇게 적는다고 노력을 하였으나, '나는 뭘 한 것이 없는걸..' 하며 2시간 이상을 정말 끙끙거리면서 썼었다. 다 쓰고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였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쓰고 다시 집으로 가게 되었고, 급격한 스트레스로 발작 전조증상까지 보였다.
너무나 힘들었다.
다시는 반복하기 싫은 행위.
계속된 진술, 진술서, 증거를 기반한 진술 등등.
그렇게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저 무고한 아이.
그렇기에 중립적인 시선에서 보는 목격자들도 많았다.
몇 달이 좀 더 지나자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00 이와 악연.
친해져 보려고도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조선생님이 00 이와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매점에서 산 빵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도 좀 더 곱게 보시려고, 아이들이 매점에서 좋아하던 빵을 사서 몇 개를 사주곤 하셨다.
"이 빵 신상이래 너도 먹어봐"
라고 권유를 하였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엄마나 딸이나 똑같네 하는 짓거리가."
그뒤로 '악연'이라는 것을 각인 시켰고, 냉철해졌다.
3학년때도 같은 반이 되어서 '학교는 졸업은 해야지!'라는 나는 이 악물고 학교를 다니던 와중 '교육청'에서 00 이와 나를 보러 왔다고 또 학생부실로 가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교육청분들은 '화해는 했냐'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였는데 어이가 없었다.
"싸운 적 없어요. 이 아이가 일방적이였죠."
라고 나는 차갑게 말했다.
"때린 적은 없으신 거죠?"
라고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 저 걸어오는 모습 못 보셨나요? 제가 얘를 왜 때려요? 제가 중증장애인인데 00 이가 저를 때렸다면 말이 되겠죠."
라고 차갑게 이야기를 하였다.
"친하게 지내시는 건 어때요?"
정말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제가 이 아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어요. 그것보다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어요"
라고 약간은 격양되었지만, 똑바로 이야기를 하였다.
'친하게 지내는 건 어때요?'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였다.
친해져보려고 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뇨! 저는 이 아이와 친해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친해질 생각 없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교육청사람들도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이야기를 끝냈다.
롤러코스터 같이 '진학이냐', '자퇴냐'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하며 결국 학교를 다니다가 '홈스쿨링 졸업장'과 '학교졸업장'을 결국 다 다녀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 악물고 다닌 결과이다.
그 와중에 대학을 가겠다고 수시로 대학교를 넣고, 수시 넣은 곳이 두 군데 다 붙었다. 다행히 그나마 그전에 비해 고등학교 3학년이 2학년때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졸업한 대학교는 경쟁률이 굉장히 높았는데 <합격!>이라고 전교생이 볼 수 있는 종이책자에 내 이름이 써져 있었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정말 고생했다. 졸업 축하해'라는 축하도 많이 받았다.
빛나게 졸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