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대학생

힙한 삶을 꿈꾸며 힙해지고 있습니다.

by 다슬

실습 때,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가 프로그램 회의 때에 이야기가 나왔었다. '결혼이라..'라고 생각을 하며 솔직하게 생각을 해서 '연애는 할 수 있어도 결혼은 아이를 낳아야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또 L팀장님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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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자녀를 낳고 싶나요?"

라는 공통적 질문에 나는 은근히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한 사람씩 아이를 몇 명 낳을 것인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으음.. 저는 딩크족으로 살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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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출산시대인데 왜 딩크족을 하고 싶어요? 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이야기를 하자 팀원들은 '2명 이상 낳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하는데 나 혼자서만 '딩크족으로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다둥이 팀장 입장에서는 조금은 어이가 없었나 보다.


"딩크로 살고 싶은 이유는 저 하나만으로도 살기 힘든데 사랑하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정-말 어쩌다가 자연적으로 생기면 1명만 키울 것이긴 한데, 그런 일 없게 철저히 딩크족으로 살고 싶어요."


"이러니까 저 출산인 거예요 다슬선생님-"


사회복지를 하면서 서로에게 '선생님'이나 직책을 이야기를 한다. 팀원들에게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갑자기 싫어졌다. 사실 듣기 싫었던 것일까.


"요즘은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되고, 인연이 되면 결혼해서 딩크족으로 살고 싶어요."


"MZ라서 그런가?"


'그놈의 MZ.. 내가 딩크족으로 살고 싶다는데 왜 핀잔을 주는지를 모르겠네'라고 속으로만 그랬다. 절대 입 밖으로는 나올 수 없는 소리 없는 아우성.


계속 자녀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 하니, '가족복지론'강의도 이 정도로 '자녀를 낳아 키워야 된다!'라고 하시진 않고 '결혼에서 자녀계획도 선택이 되는 시대가 왔다'라는 내용으로 강의를 들었다.


나는 L팀장에게 '왜 딩크족이냐. 여성으로 한 번은 출산을 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무한 도돌이표를 내게 이야기를 하였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을 하며 그냥 듣고 있었다. 이것이 사회생활인가.


다른 선생님이 약간은 급하게 와서 조심스럽게 오셔서 '선생님! 다른 업무가 있으세요. 0000 프로그램 있으셔서 이용인분이 기다리고 계세요.'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딱! 다른 프로그램이 될 것 같은 느낌.


"여러분 미안해요. 원래 하던 업무가 있었던 게 있어서 실습생이 있어도 이건 해야 되는 거라 미안해요. 다른 선생님이 대신 프로그램 하실 거예요."

라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이때 시기가 코로나가 있던 '펜데믹시대'라서 복지관을 반만 열었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하는 프로그램을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여 그 프로그램을 실습생인 우리가 하게 되었다.


어떤 선생님이 종이박스를 책상에 끙-차 하는 소리와 함께 놓으셨다. 그 안에는 비닐과 가격표스티커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해야 되었다. 스티커를 비닐에 붙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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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이 불편한 나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히 설명을 하셨을 때, 완벽하게 이해를 했고, 만약 설명을 하라 그러면 할 수도 있었다. 생각처럼 내 왼손은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친해진 다른 학교 동기가 본인 것을 하면서 내 분량도 도와줬다.


손이 안되어 살짝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럴 때는 내게 너무 버거웠다. 하나하나 붙이면서 집중을 하고 있었다.


"졸업을 하고 이렇게 단순노동이 내 미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머! 마음에 소리가 입으로 나왔네.."

라고 내 마음에 소리가 입으로 툭! 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팀원들도 살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무의식 속에 마음에 소리를 뱉은 내가 제일 놀랐다.


그 모습을 본 A라는 팀원이 내게 말을 하게 되었다.


"다슬아, 이게 왜 어려워?"


"왼손이 잘 안 돼서 어렵네"

라는 말을 하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나는 그녀가 웃든지 말든지 내 목표는 지금 주어진 일뿐.


"다슬아, 너는 졸업하면 뭐 할 거야? 솔직하게 말해봐"


"사회복지사 할 거 같은데? 적성에 맞거든."


"사회복지사 페이도 적게 주는데 이걸 한다고?"

라고 갸우뚱한 표정으로 한 번 더 물어보는 모습을 봤을 때 자기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응. 사회복지사 하고 싶은데?"

라고 대답을 하며 어쩌겠는가. 내가 사회복지가 적성인 것을.


"사회복지 힘들게 하지 말고 '닭 공장'에서 일해보는 건 어때? 이렇게 단순노동인데 짭짤해."


"엥? 내가?"


"응응 나도 방학에 00이랑 닭 공장에서 일했는데 꽤 많이 벌었어 졸업하면 거기로 취직해 봐."

라는 이야기하자 나는 생각했다.


'헛소리도 참 정성스럽게 한다. 갑자기 무슨 '닭 공장'이람.'


"흠.. 나는 가기 갈 생각이 없는걸?"


"일단 가보고 나서 이야기해. 사회복지사보다 나을 수 있어"

나에게 되게 무례한 말이었다. 나의 의견을 무시하는 발언이었기에.


"공장에서 일할 거였으면, 그냥 폴리텍대학 같은 곳 알아봤겠지. 굳-이 이렇게 공부하고 이러겠어요? 제가 우리 학교를 어떻게 갔는데 결괏값이 '닭 공장'이면 슬플 것 같은데요. 마음에 소리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야죠!"

라고 A의 말을 받아쳤다. 아주 여유롭게.


"그래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좋은 직장 소개해준 건데 네가 싫다니까 어쩔 수 없지."


'나의 대한 생각이라..'생각을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 미묘한 감정선을 나머지 팀원들도 느끼고 있어서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일을 하였다.


'나는 누가 봐도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생각했다. 순간 조금의 억울한 마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딩크족>을 생각하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장애 유무가 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힙한 삶을 꿈꾸며 능력 있게 힙해져야겠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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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나는 힙하게 <브런치스토리작가>가 되어 '힙한 삶이 목표입니다.'를 쓴 작가가 되었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write_da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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